기준중위소득, 예산에 끼워 맞춰 얼렁뚱땅 정해
문 정부, 가난한 사람들 목소리 끝내 외면… 역대 정부 중 최저 인상률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열리는 30일, 오전부터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모였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열리는 30일, 오전부터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모였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중생보위 위원님, 가난한 사람들과 그 가족의 존엄을 보장해야 합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팻말이 보건복지부 담벼락에 붙어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중생보위 위원님, 가난한 사람들과 그 가족의 존엄을 보장해야 합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팻말이 보건복지부 담벼락에 붙어 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가 열리는 30일, 오전부터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모였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건강하고 문화적인 수준으로 생계급여를 ‘대폭’ 인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끝내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는 전달되지 못했다. 제64차 중생보위에서는 내년 기준중위소득을 4인 가구 기준으로 5.02% 올린다고 결정했다. 기본인상률은 3.02%이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의 기준중위소득 기본인상률은 평균 2.37%. 역대 정권 기본인상률 3.9%에 크게 못 미친다. ‘포용적 복지 국가’를 내건 문 정부의 포부에 비해 매우 초라한 수치다.  

내년 기준중위소득은 △1인 가구 194만 4812원 △2인 가구 326만 85원 △3인 가구 419만 4701원 △4인 가구 512만 1080원이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내년 기준중위소득은 △1인 가구 194만 4812원 △2인 가구 326만 85원 △3인 가구 419만 4701원 △4인 가구 512만 1080원이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이번에 결정된 내년 기준중위소득은 △1인 가구 194만 4,812원 △2인 가구 326만 85원 △3인 가구 419만 4,701원 △4인 가구 512만 1,080원이다. 기준중위소득의 30%에 해당하는 생계급여는 58만 3,444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한 달 기준 3만 5000원가량이 올랐다. 

그동안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아래 기초법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가 제시한 현실적인 기준중위소득 기본인상률은 7%. 기준중위소득의 인상이 중요한 것은, 기준중위소득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해 77개 복지제도의 기준이 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기초법공동행동은 “낮은 기준중위소득이 복지접근성을 낮추고, 수급비를 낮추어 빈곤 가구에 절망을 안긴다”고 비판해왔다. 

기준중위소득이 턱없이 낮게 책정되는 이유는 정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명시된 대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 당국의 상황에 맞게 제멋대로 셈을 하기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6조의2에 따르면, 기준중위소득은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간값에 최근 가구소득 평균 증가율, 가구규모에 따른 소득수준의 차이 등을 반영하여 가구규모별로 산정한다. 그런데 중생보위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수치를 자의적으로 정해서 반영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가계금융복지조사 3년 평균인상률은 4.32%인데, 중생보위는 인상률의 70%만 반영했다. 70%만 반영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여기에 추가인상률 1.94%가 더해져 기본인상률이 정해졌다.  

지난해, 기준중위소득 기초 통계가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바뀌면서 12.2%의 기본인상률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복지부는 2026년까지 6년간 쪼개어 단계적으로 인상률을 메꾸겠다며 올해는 추가인상률 1.94%만 반영했다. 

이러한 제멋대로 셈법에는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복지부는 기본인상률을 6%대로 제시했고, 기재부는 열악한 재정상황을 근거로 1.4%의 턱없이 낮은 기본인상률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좁힐 수 없는 입장 차이로 지난 28일 중생보위 회의는 한차례 불발됐다. 복지부도 보도자료에서 “논의 과정에서 다수의 의원이 합의된 산출원칙을 준수할 것을 요청했고, 향후 기준중위소득 결정은 작년도 위원회에서 합의한 원칙을 존중해 결정하기로 했다”며 기재부와의 의견 차이를 간접적으로 표명했다. 

내년 기준중위소득이 4인 가구 기준 512만 원으로 결정됨으로써, 2019년 가계금융복지조사 4인 가구 기준보다 무려 124만 원이나 적다.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자료 캡처
내년 기준중위소득이 4인 가구 기준 512만 원으로 결정됨으로써, 2019년 가계금융복지조사 4인 가구 기준보다 무려 124만 원이나 적다.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자료 캡처

2022년 기준중위소득의 기준이 되는 통계는 2019년 가계금융복지조사다. 그런데 ‘제멋대로 셈법’으로 기준중위소득은 3년 전 중간값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9년 가계금융복지조사 1인가구 중간값은 254만 원이나, 내년도 중위소득은 194만 원으로 60만 원 차이 난다. 4인 가구의 경우, 중간값은 636만 원이지만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은 512만 원으로 124만 원이나 차이 난다. 

기초법공동행동은 “올해도 유래도, 논리도 없는 막무가내 ‘고무줄 산식’이 등장했다”라며 “정부는 ‘그간 취약계층 지원을 강화하면서 많은 재정을 투입했다’라고 했다. 기가 막힌다.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깊어지는 불평등의 책임은 기준중위소득을 억지로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며 복지확대를 회피해온 정부에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4.3%, 물가성장률은 1.8%로 명목경제성장률이 6% 이상에 달할 전망이다. 이번 결정은 복지제도가 필요한 가난한 이들과 수급권자를 기만하고 삶의 질을 후퇴시켰다.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고 병원이용을 단념하며, 값이 오른 식료품 사기를 포기하고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삶을 정부가 용인한 것이다”라며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은 OECD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 기준중위소득 인상률 결정은 문재인 정부가 빈곤문제 해결에 의지 없음을 표명한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명단.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명단.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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