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 가구가 직접 쓴 가계부 결과 발표
식비·주거비 전체 지출의 55.7%… 하루 평균 식비 8618원
수급비로는 빠듯한 생활, 점점 사회적 고립으로
수급비 현실화… 기준중위소득 산출방식 지켜야

턱없이 낮은 기초생활수급비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있을까. 월세보다 낮은 주거급여로 인해 사람들은 생계급여의 일부를 주거비로 써야 한다. 주거비를 내고 나면 통장이 바닥을 드러내니 사람들은 가장 먼저 식비를 줄이게 된다. 제대로 된 영양소 섭취를 못한 몸은 점점 쇠약해지지만 돈이 없으니 제때 병원에 갈 수 없고, 그러다 보면 노동을 통해 수급에서 벗어나기보다 가난한 현실에 주저앉고 만다. 사람 만나는 것도 돈이고, 이동하는 것도 돈이니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타인과의 만남도 피하게 된다. 가난은 헤어 나오기 힘든 굴레가 되어 사람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 

최옥란 열사 20주기를 맞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아래 기초생활보장)의 올바른 개선을 위한 콘퍼런스가 열렸다. 최옥란 열사는 20년 전, 한 달에 26만 원이던 생계급여를 반납하고 기초생활보장의 폐해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그러나 제도는 개선되지 않았고, 그는 끝내 음독자살했다. 

지난 1일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국회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의 눈으로 보는 2022년 한국의 오늘’ 콘퍼런스를 열었다. 콘퍼런스에서는 ‘2022년 기초생활수급자 가계부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7월 1일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국회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의 눈으로 보는 2022년 한국의 오늘’ 콘퍼런스를 열었다. 콘퍼런스에서는 ‘2022년 기초생활수급자 가계부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사진 허현덕

- 전체 지출에서 식비·주거비 비율 55.7%

가계부조사는 61일간(2022년 2월 18일~4월 19일) 기초생활 수급을 받는 25가구를 대상으로 시행됐다. 참여 가구는 매일 수입과 지출내역, 식단 및 식사방법 등을 기록했다. 참여자들은 서울(15가구), 대구(5가구), 부산(3가구), 충북(2가구) 등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이 중 1인 가구가 88%(22가구)였고, 2인·3인·4인 가구가 각 1가구씩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대부분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 수입은 대부분 생계·주거급여이며, 그 외로 장애수당, 장애인연금, 기초연금 등이 있었다. 수입을 초과해서 지출한 가구는 총 11가구로 월평균 최소 3만 2699원부터 최대 244만 7102원까지 초과 지출했다. 가장 많은 금액을 지출한 가구는 조사 기간에 이사로 특별히 많은 지출을 한 경우였다. 이 가구를 제외한 1인 가구의 평균 수입은 월평균 86만 5858원이었고, 지출은 81만 7844원이다. 한 달 동안 4만 8015원 정도만 저축할 수 있다. 

지출 중에서 식비와 주거비가 55.7%를 차지했다. 가장 많이 지출한 항목 1순위가 식비인 가구는 10가구, 주거비(임대료·관리비·수도광열비)는 10가구였다. 2순위가 식비인 가구는 10가구, 주거비는 7가구로 조사됐다. 

조사대상 가구 모두 생계급여와 별도로 주거급여를 받고 있다. 서울 거주 1인 가구의 경우, 최대 32만 7000원까지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주거급여는 임대료만 겨우 낼 수 있을 뿐, 관리비·수도광열비까지 내고 나면 오히려 적자다. 부족한 돈은 생계급여에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주거급여로 주거비(임대료+관리비+수도광열비) 납부가 가능하다고 밝힌 가구는 3가구에 불과했다. 반면, 다른 3가구는 주거급여로 임대료조차 낼 수 없다고 답했다. 사람들은 턱없이 낮은 주거급여로 인해 최소 8850원부터 최대 35만 5원까지 별도의 주거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그 결과, 소득에서 주거비 비율이 30% 이상을 차지하는 가구는 무려 11가구나 되었다.

- 하루 평균 8618원 식비로 지출… 건강유지 어려워

“반찬 사기도 너무 힘들어요. 반찬값이 작년보다 너무 많이 올라 가지고. 수급비 받으면 김치 10kg 사는데 그걸로 다음 수급비 나올 때까지 한 달을 버티거든요. 반찬 4팩에 1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4팩에 2만 원 받아요. 종류는 장아찌나 멸치, 보통 시장에서 파는 거. 2만 원어치 사도 양이 얼마 안 되죠. 김치만 먹고 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구입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사람이니까 먹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니에요.” (가계부조사 참여자 ㄱ 씨)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이 ‘가계부조사 결과 분석’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이 ‘가계부조사 결과 분석’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사람들은 의료비, 이사, 의료기기 구입 등 갑작스러운 지출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식비를 가장 먼저 줄인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주거급여를 제외한 소득에서 식비 비율이 30% 이상을 차지하는 가구가 14가구에 달했다. 그러나 식사의 질이 좋은 건 아니었다.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2개월간 육류 구입을 한 번도 안 한 가구는 9가구, 생선 등 수산물을 한 번도 구입하지 않은 가구는 14가구, 과일을 한 번도 구입하지 않은 가구는 9가구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수급비로 건강한 식단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이는 식비에서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1인 가구의 월평균 식비는 25만 8556원으로, 하루 평균 8618원을 식비로 지출했다.

김 연구원은 “당뇨가 있어 식단관리가 꼭 필요함에도 식사비를 줄이기 위해 식사를 거르거나 우유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다. 이분은 조사 기간 중 23회 식사를 거르고, 47회를 우유로 대체했으며, 34회는 라면으로 식사했다”라며 “모야모야병이 있어 손과 몸의 떨림이 심해 칼을 이용한 조리를 하기 어렵지만 별도의 반찬 지원은 없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2018년과 2022년 가계부조사에 참여했던 6가구를 비교할 때 가장 안 좋아졌던 것은 식생활이었다”라며 “2018년에는 취미 활동을 하셨던 분은 이제 더 이상 취미 활동은 하지 못하고 식비 지출만 급격히 늘었다”라고 설명했다. 수급비는 물가상승과 비례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주거비, 식재료비 등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조사 참가자 ㄴ 씨의 메모에는 그냥 하루를 보냈다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사진 ‘가계부조사 결과 분석’ 자료집 캡처
가계부조사 참가자 ㄴ 씨의 메모에는 그냥 하루를 보냈다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사진 ‘가계부조사 결과 분석’ 자료집 캡처

- 수급비로는 빠듯한 생활, 점점 사회적 고립으로

“오늘은 왠지 쓸쓸한 하루가 멍하니 하루가 지나갔군요 / 오늘 하루도 의미없이 하루가 지나가는군요 / 오늘 하루도 방에서 지내기만 했고, 하루가 지루했습니다 / 시간이 너무 안 가는 의미 없는 하루였다 / 오늘은 하루가 의미 없이 시간만 흐르는 마음이 우울한 하루였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으니 무료하군요 / 하루종일 방에만 있어요. 사람이 맹해지면서 아무 생각이 없군요. 밖에 나가서 운동도 해야되는데 모든 게 그러하네요 / 외출을 안 하니 심심하군요. TV시청만 하루종일 했더니 눈이 침침해지는 군요.” (가계부조사 참가자 ㄴ 씨 가계부에 적힌 메모)

낮은 수급비 탓에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할 수 없어 건강을 잃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사회적인 고립도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 ㄷ 씨의 경우 수급자가 되어서도 한동안 지인들과의 관계를 유지했지만, 생활수준이 달라지고 생활 격차가 벌어지면서 연락을 끊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기초생활보장의 목적은 가난에 처한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1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는 고작 58만 원이다. 낮게 유지되는 급여가 얼마큼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지 이 금액만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 사무국장은 “조사에 참여한 분들이 고립감과 관계단절에 대해 말했다. 이들에게 다양한 돌봄사회서비스도 중요하지만, 낮은 수급비에서 오는 박탈감과 사회적 관계 포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수급비 현실화가 필요하다”라며 “또한 가용한 재산이 없어져야 수급으로 진입할 수 있는 탓에 수급자가 되는 과정에서 이미 관계단절이 되는 경우도 많으므로 수급자 선정기준의 상향화가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 수급비 현실화… 기준중위소득 산출방식 지켜야 

정 사무국장은 실제 급여수준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수급비 지급의 기준이 되는 기준중위소득 산출방식을 법에서 명시한 대로 지켜야 한다고 제시했다. 

2015년 최저생계비(통합급여)에서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등 개별급여로 나눠지면서 ‘기준중위소득’이 도입됐다. 기준중위소득은 국민을 가구소득에 따라 1에서 100으로 줄 세웠을 때 50에 해당하는 중간값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한 12개 부처 73개 복지사업의 선정기준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개별급여별 기준중위소득의 기준은 각기 다르다. 올해 생계급여는 30%,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6%, 교육급여는 50%가 기준이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가계부조사 참여자 인터뷰 및 활동가 FGI를 토대로 본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가계부조사 참여자 인터뷰 및 활동가 FGI를 토대로 본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정 사무국장은 “기준중위소득 도입 목표는 전체 인구의 상대적 경제수준을 반영하는 것이었으나 도입 이후 급여 인상률은 오히려 더 낮아졌다”라며 “1999년도부터 2015년 6월까지 최저생계비 평균 인상률은 3.9%였으나,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2.8%였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년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통계청에서 공표하는 최근 3개년도 통계자료의 경상소득의 중앙값에 최근 가구소득의 평균증가율, 가구규모에 따른 소득수준의 차이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매년 결정되는 기준중위소득은 최근 3개년도 통계자료의 평균 증가율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정 사무국장은 “기준중위소득은 수급자 삶의 질 하락과 직결된다”라며 “현실적인 기준중위소득 증가율을 책정하고, 선정·보장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 또한 까다로운 소득인정액으로 약간의 저축이라도 갖고 있으면 급여수급에 진입할 수 없는 점도 개선되어야 한다”라고 제시했다. 또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 근로소득 공제 확대, 수도광열비·관리비 지원 등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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