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대남병원, 라파엘의집, 신아원 등 무수히 일어난 집단감염
해외 코로나19 사망자 중 절반이 시설 거주인
“긴급탈시설은 격리가 아닌 공존의 시스템 만드는 일”

긴급탈시설 개념이 주목받은 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였다. 장애인을 ‘보호’하고 있다던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이 되레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의 경우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코로나19 감염률은 전체 인구 감염률의 4.1배에 달한다.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밀집해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거주시설의 구조. 시설은 장애인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있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27일 오후 4시 20분, 한국장애포럼이 연 ‘2021 국제장애인권 콘퍼런스’에서 긴급탈시설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다시 한번 논의됐다. 이네스 불릭 유럽자립생활네트워크 사무총장과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팬데믹 상황에서의 긴급탈시설은 “공존을 위한 인프라 구축의 기회”라고 말했다.

이네스 불릭 사무총장이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유튜브 캡처
이네스 불릭 사무총장이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유튜브 캡처

- 집단감염에 취약한 거주시설… 정부는 긴급탈시설 아닌 ‘코호트 격리’만

지난해 2월,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던 정신장애인 104명 중 102명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의 코로나19 첫 사망자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이후에도 장애인을 수용하는 시설 내 코로나19 집단감염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지난해 2월 경상북도 칠곡군 밀알사랑의집, 3월 대구시 북구 성보재활원, 10월 경기도 여주시 라파엘의집, 12월 서울시 송파구 신아원, 올해 1월 경기도 안산시 안산평화의집 등 수많은 장애인이 시설 내에 격리된 채 감염병에 노출돼야 했다.

정부는 거주시설 집단감염이 일어날 때마다 ‘코호트 격리’ 조치를 취했다. 시설을 완전 봉쇄해 감염병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겠다는 취지였다. 장혜영 의원은 “이는 매우 인권 침해적이고 방역적으로도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이 결정이 외려 시설 내 집단감염을 구조적으로 촉진했다. 정부가 시설을 코호트 격리해도 집단감염은 계속 일어났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애초에 시설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기본적 방역지침을 지키기 어려운 구조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자유 등이 보장되지 않고 여러 사람이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 시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 시설은 감염병 차단을 이유로 시설의 문을 걸어 잠갔다. 그 결과 외부에선 시설 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더욱 알기 어려워졌고, 그만큼 장애인 인권침해는 심화했다.   

장혜영 의원은 “시설 내 장애인의 외출은 금지됐지만 직원은 여전히 시설 출입이 가능했다. 직원이 전파한 바이러스로 시설 내 감염이 시작되자 장애인은 코호트 격리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감염병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현장. 참가자가 눈을 맞고 있다. 그의 옆에는 신아원 코로나19 확진자를 의미하는 텐트가 놓여있다. 텐트에는 '지금 당장! 긴급탈시설 이행!'이라는 피켓이 붙어있다. 사진 하민지
지난 1월,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현장. 참가자가 눈을 맞고 있다. 그의 옆에는 신아원 코로나19 확진자를 의미하는 텐트가 놓여있다. 텐트에는 '지금 당장! 긴급탈시설 이행!'이라는 피켓이 붙어있다. 사진 하민지

장혜영 의원은 올해 2월, 긴급탈시설을 의무화하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시설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시설 거주인 전원을 의무적으로 분산시키고, 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긴급탈시설의 근거가 담겨 있다.

장혜영 의원은 “감염병 위기를 탈시설에 필요한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긴급한 기회로 이용하자는 취지의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장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 국회에서 논의된 적 없다.

이네스 불릭 총장 또한 긴급탈시설을 “팬데믹과 같은 긴급 상황에서 지체 없이 탈시설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불릭 총장은 “팬데믹이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에게 더욱 악영향을 미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작년 4월 발표한 ‘장애인 권리와 코로나19’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의 절반이 시설 거주인이다.

불릭 총장은 팬데믹 시대의 시설 문제를 설명하며 “팬데믹 동안 거주인을 시설 밖으로 내보내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또한 시설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직원을 배치하는 것에 사회의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시설은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는 더 많은 금전적 지원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불릭 총장은 “이 때문에 시설 거주인은 사망했고, 외부와 단절됐으며, 건강관리에 대한 요청을 거부당하는 등 인권침해를 겪었다. 시설 내 장애인 중에서도 특히 아동, 여성, 소녀, 시골 출신 등이 더 많은 문제를 겪었다”라고 설명했다.

해외 일정을 소화 중이었던 장혜영 의원은 영상으로 발제를 대신했다. 사진 하민지
해외 일정을 소화 중이었던 장혜영 의원은 영상으로 발제를 대신했다. 사진 하민지

- 긴급탈시설 반론에 “사회를 개선해야지 장애인을 격리해서는 안 돼”

이처럼 시설은 집단감염의 주요 발생지가 되기 때문에 긴급탈시설로 장애인의 생명권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재도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가기 어려운데 긴급탈시설은 무책임한 조치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이에 불릭 총장은 지난 8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와 함께 ‘탈시설 실무그룹’을 설립했다. 탈시설 실무그룹은 다음 해 3월까지 긴급탈시설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만들기로 했다.

장혜영 의원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울 게 걱정된다면 사회를 개선해야지 장애인을 격리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온 사회에 장애인이 잘 적응하지 못할 때, 우리는 불행히도 사회를 개선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을 격리하는 방식으로 잘못 대처했다. 긴급탈시설은 격리가 아니라 공존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적 인프라를 장애인도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팬데믹 시대를 맞이해 분명히 드러난 건, 가장 취약한 사람이 그 취약성을 차별하는 사회로부터 격리당하다가, 전 세계를 덮친 전염병으로 인해 제일 많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차별과 배제가 시설 내 장애인을 죽게 만들었다. 일단 차별 해소부터 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시설에 격리된 장애인을 데리고 나오는 일이다.

장혜영 의원은 “취약한 사람이 안전하지 않다면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 팬데믹을 통해 확인했다. 코로나19 긴급탈시설은 함께 살아가기를 다시 연습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시설 내 장애인의 죽음은 사회의 책임이며 정치는 그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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