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한국, 코로나19로 시설 내 화학적 감금 드러나
탈시설 막는 ‘감금의 회로망’, ‘시설화’ 그 자체가 인권침해

10일, 오후 1시 강릉세인트존스 호텔에서 강원도가 주최하고 2018 평창기념재단이 주관하는 2021 평창 장애포럼이 진행되었으며,  ‘누구도 시설에 남겨두지 않는다-탈시설’을 주제로 한 세션이 열렸다. 사진 제공 한국장애포럼
10일, 오후 1시 강릉세인트존스 호텔에서 강원도가 주최하고 2018 평창기념재단이 주관하는 2021 평창 장애포럼이 진행되었으며,  ‘누구도 시설에 남겨두지 않는다-탈시설’을 주제로 한 세션이 열렸다. 사진 제공 한국장애포럼

코로나19는 전 세계 집단거주시설을 뒤덮었다. 국제장기돌봄정책네트워크의 ‘케어홈 코로나19 관련 사망률 통계(2020년 6월)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 중 집단거주시설 사망자가 약 47%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오히려 집단거주시설을 봉쇄하고 코호트격리 시키면서 지역사회로부터 시설 거주인들을 철저히 분리시켰다. 

이 가운데, 누구도 배제하지 않겠다(Leave No One Behind!)는 국제사회의 오랜 외침이 지속될 수 있도록, 국제 장애계가 모여 ‘누구도 시설에 남겨두지 않는’ 탈시설 전략을 함께 논의했다. 

10일, 오후 1시 강원도가 주최하고 2018 평창기념재단이 주관하는 2021 평창장애포럼에서 ‘누구도 시설에 남겨두지 않는다-탈시설’을 주제로 한 세션이 열렸다. 강릉세인트존스 호텔에서 진행됐으며, 유튜브로 온라인 생중계됐다.

탈시설 위한 국제 정치·법률적 옹호활동 전략 필요해

발제를 맡은 핀란드의 유카 쿰푸부오리(Jukka KUMPUVUORI) 쿰푸부오리 로펌 대표는 장애인과 장애인단체들이 정치-법률적 옹호(Polegal Advocacy)의 투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8년, 장애인 활동지원 인권침해 사례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유엔 및 유럽연합과 같은 국제기구 소송을 적극 다루고 있다. 핀란드와는 달리 한국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아 위원회에 개인 진정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핀란드도 장애인이 처한 상황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쿰푸부오리 대표는 “핀란드 정부는 장애인 시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라며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며 장애와 관련해 모범적인 법체계를 갖추고 있다고들 하지만, 현실은 이에 전혀 못 미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저 또한 손을 다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시설에 살 게 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회의감을 내비쳤다.

이어 “쿰푸부오리 로펌만 해도 핀란드 전역에서 제기된 수천 건의 장애 관련한 소송을 다루고 있다. 장애인들은 필요한 지원을 받으려면 결국 법의 힘을 빌려야 한다. 여전히 투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쿰푸부오리 대표는 정치적·법적 옹호활동이 시설 문제를 해결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핀란드 국민의 친정부적 정서로 인해, 정부 상대 제소가 어려웠으나 유럽연합, NGO, 유럽의 자립생활네트워크와 같이, 전국·지역·국제적 차원의 연대를 통한 법적 옹호 활동을 꾸준히 개진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도 “과거에 시설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나오고 싶었지만, 지역에서는 탈시설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에 사문화되어있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명시한 법조문을 근거로 탈시설 소송이 진행한 적이 있다”라며 이러한 사례들을 참고하여 앞으로도 법적 옹호활동을 놓치지 않고 장애계와 연대할 것을 밝혔다. 

유카 쿰푸부오리 대표가 '유럽 탈시설 운동의 현황 및 시민 사회의 전략'을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캡쳐 유튜브 강원도 채널
유카 쿰푸부오리 대표가 '유럽 탈시설 운동의 현황 및 시민 사회의 전략'을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캡쳐 유튜브 강원도 채널

핀란드·한국, 코로나19로 시설 내 화학적 감금 등 인권침해 드러나

코로나19가 발생하자 핀란드에서도 장애인이 시설에 고립되면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게다가 시설에서는 관리와 통제를 쉽게 하려고 많은 약을 장애인에게 투여했다. 따라서 시설 거주 장애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고, 물리치료나 병원 방문 치료 등의 외부 접촉 자체가 중단됐다.  

쿰푸부오리 대표는 “시설 봉쇄에 반기를 들어 핀란드 정부에 법적근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제법을 비롯해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라며 “정부는 법적근거 없이 시설을 쉽게 봉쇄했으며, 시설 밖 사람들은 자유롭게 일상을 살았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대체 얼마나 쉽게 시설을 봉쇄하려고 하나”라고 우려를 표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시설에서 흔히 자행되는 ‘화학적 감금’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2월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신아원 내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재활원(아래 신아원)에서 ‘탈출’한 강 아무개 씨도 화학적 구속이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신아원 측은 강 씨를 매일 찾아와 약을 전해주었다. 이를 비롯한 시설 내 인권침해가 제보되자 현재 서울시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조사 중이다.

이진희 대표가 '신아재활원 긴급탈시설 투쟁: 시설사회를 부수는 연대의 회로망 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긴급탈시설 막는 감금의 회로망'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캡쳐 유튜브 강원도 채널
이진희 대표가 '신아재활원 긴급탈시설 투쟁: 시설사회를 부수는 연대의 회로망 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긴급탈시설 막는 감금의 회로망'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캡쳐 유튜브 강원도 채널

탈시설 막는 감금의 회로망, ‘시설화’ 그 자체가 인권침해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는 ‘탈시설은 최종 종착지가 아닌, 다른 삶을 살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강조했다. 그는 “신아원에서는 거주인에게 ‘장애여성공감과 통화하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라며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휴대폰을 압수했다”라며 “코로나19로 오히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의 인권침해 상황이 역설적으로 폭로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시설 내 인권침해는 심각한 착취와 폭력,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야만 가시화됐다. 이번 강 씨의 사례도 단순한 인권침해로 해석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대표는 “한국사회는 인권침해의 강도로만 사건을 판단하고, ‘시설화’ 자체에서 기인하는 인권침해에는 둔감하다”라며 “시설은 ‘훈육과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거주인을 일상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러한 통제 속에서 어떤 구조와 맥락으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발견하기 어렵다. 이미 시설에 감금된 상태가 동등한 시민의 자격을 박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탈시설을 막는 사회적 연결망을 ‘감금의 회로망’이라고 표현했다. 즉, 복지부, 서울시, 종교기관, 송파구, 신아원, 장애인복지법 등으로 구성된 ‘감금의 회로망’이 거주인을 둘러싸 시설에서 나올 수 없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모든 사회적 네트워크가 시설 거주인을 감금하는 데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거주인이 감금 구조를 벗어나도록 긴급탈시설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작년 12월에 발의된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아래 탈시설지원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탈시설지원법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시설화’와 ‘감금의 회로망’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다. 탈시설지원법 제정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 이행을 위한 기본 조건이고, 장애인을 시설에 감금했던 역사와 국가의 과오에 대한 반성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은 “사회적으로 국민들이 긴급탈시설 의제를 인식하기 어렵고, 장애인정책이 앞선 서울에 비해, 타 지역에서는 긴급탈시설 이야기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탈시설은 대통령 국정과제인데도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긴급탈시설도 정부가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 앞으로 탈시설 관련 정책 이행과 예산 반영이 시급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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