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청소년 수다‘집’

《 기획의도 》

2019년부터 현재까지 청소년 “탈시설”과 “주거권”을 키워드로 활동하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아래 청주넷)는 청소년 당사자, 청소년자립지원현장 활동가, 인권활동가, 법률활동가 등이 연대해 청소년 주거권 서사를 발굴하고, 담론을 확장하며, 정책 변화를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청주넷에서는 청소년 당사자 활동가 6명이 경험한 주거 약자로서의 삶을 강연 내용으로 정리했습니다. 올해는 청소년 활동가와 비청소년 활동가들이 함께 이 강연 원고를 다시 읽어보고 청소년 주거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수다회’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기획연재를 통해 ‘소소한 일상’, ‘퀴어한 삶’, ‘청소년 인권’, ‘시설’, ‘가족’이라는 주제로 수다회에서 나눈 통찰력과 영감이 넘치는 이야기들을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희의 글들이 청소년의 집다운 집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상상과 시도들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연재순서 ]

[서문] 청소년 수다‘집’, 그 다섯 개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① 소소한 일상은 누구에게나

② 오롯이 퀴어한 나의 집을 찾아

③ 내가 떠나온 건 집이지 일상이 아냐

④ 시설은 그들의 ‘집’이 될 수 있는가?

흔히 사람들에게 ‘청소년시설’은 탈 가정 후 주거를 잃은 청소년을 보호하고 돌봐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 개최한 수다회에서 들었던 청소년들의 ‘시설’에 대한 경험담은 이 같은 세간의 인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실제로 시설 안에서 청소년들은 시설의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스스로 그들의 주체성을 희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수다회에 참석한 계기에 대해 한 청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미성년자가 집을 나오는 이유를 쉽게만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게 답답했다. 당신들이 뭘 아냐고 말할 수도 없고… 다만 무엇 때문에 어렵고 힘든지 알려주고 싶었다. 집을 나오는 것도 쉽지 않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들이 있고, 그렇다고 보육원이나 쉼터와 같은 시설에서 살고 싶지도 않다. 시스템이 바뀌어서 내가 겪은 일들이 대물림되지 않길 바라며 이곳에 나오게 되었다.”

2020년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 진행한 ‘청소년 말하기 워크샵’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발췌해 만든 카드뉴스. 청소년들이 집을 나오게 되는 과정의 어려움과 탈가정 이후 위험한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이 나타난다. 청소년 주거경험 인터뷰. 보육원 보호 종료한 B는 “원하는 사람과 살 수 없고 친구도 초대하지 못하고 보육원에 산다고 말할 수도 없는 완벽한 거짓말 인생이 돼요.”, 가정폭력으로 시설을 옮겨 다닌 청소년 A는 “아빠의 폭력 때문에 쉼터에 갔는데, 아빠에게 돌려보내졌어요.” 여러 쉼터를 전전한 C는 “기본적으로 5, 6명이 한 방을 쓰다 보니 옷도 화장실에서 갈아입었어요. 여러 불편한 일들 때문에 같이 사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제공.
2020년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 진행한 ‘청소년 말하기 워크샵’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발췌해 만든 카드뉴스. 청소년들이 집을 나오게 되는 과정의 어려움과 탈가정 이후 위험한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이 나타난다. 청소년 주거경험 인터뷰. 보육원 보호 종료한 B는 “원하는 사람과 살 수 없고 친구도 초대하지 못하고 보육원에 산다고 말할 수도 없는 완벽한 거짓말 인생이 돼요.”, 가정폭력으로 시설을 옮겨 다닌 청소년 A는 “아빠의 폭력 때문에 쉼터에 갔는데, 아빠에게 돌려보내졌어요.” 여러 쉼터를 전전한 C는 “기본적으로 5, 6명이 한 방을 쓰다 보니 옷도 화장실에서 갈아입었어요. 여러 불편한 일들 때문에 같이 사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제공.

수다회에 참여한 청소년은 공동체의 규칙 때문에 그들의 취향과 취미를 포기하거나, 시설 내의 권력 구조에서 눈치를 살피거나, 때론 성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 글은 시설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본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받지 못하고 시설화된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삶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 누가 시설 부적응자가 되는가?

“식사 시간에 군만두가 안 익었을 때, 짜장이 젤리 같아서 먹지 못할 때 이야기할 수 있잖아, 말할 수 있는 건데 애들은 그냥 버리거나 아예 안 받거나… 이런 게 저는 너무 마음에 안 들었어요. 오히려 말하면 ‘넌 왜 적응을 못 해?’ 이런 식으로 말할까 봐 약간 불안해서…….”

“방귀를 뀌면 벌점을 받아요. […] 무단외출, 무단외박들 다 적어 놓고 벌칙금을 만들어 놨어요. 용돈도 2만 원밖에 안 주는데 이렇게 뺏어가는 것도 솔직히 말이 안 되고…….”

시설에는 다양한 청소년들이 모인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집을 잃은 청소년들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 시설은 획일화된 규칙으로 개성을 삭제한다. 그런 공간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는 청소년은 ‘유별난 사람’, ‘부적응자’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청소년들은 ‘트집 잡는 사람’으로 문제화되어 의사 표현과 행동을 멈춘 채 수많은 강제를 참고 살아간다.

또한, 시설 내의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상하 관계에서 비롯된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 속에서 청소년들은 양질의 식사를 건의하는 등의 기본적인 요구를 할 때조차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시설 안의 청소년들은 그들에게 씌워진 ‘규칙’의 정당성과 그들이 가진 고유한 권리 사이에서 저울질해 볼 의지조차 없이, 그 안의 논리에 순응했다. 그렇게 시설은 청소년들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내몰아간 ‘집’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시설에서는 생리 현상인 ‘방귀’조차 트지 못하고 긴장을 유지하며 살아야 하고, 국가에서 청소년을 지원하고자 지급한 돈을 자신들이 관리하며 용돈 주듯 위세를 부린다. 이처럼 일상이 편안할 수 없고, 전적으로 시설이 돈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청소년은 ‘을’이 되어 눈치를 보며, 언제든지 퇴소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지내야 한다.

시설은 집이 아니야. ‘집다운 집’, ‘진짜 집’을 내놔라! 집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필요한 공간, 그런 집이 청소년에게도 필요하다. 둥근 언덕과 꼭대기가 하얀 산 뒤로는 해가 떠오르고 하늘이 반짝인다. 그 앞에는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 색깔의 다양한 집이 있고, 각기 다른 사람들이 지붕에 서거나 앉아 있고, 한 사람은 현관문 근처의 벽에 손을 짚고 고개를 내민다. 지붕에 앉아 컵을 든 사람도, 다른 집 지붕으로 건너가는 사람도, 산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청소년주거권 네트워크 제공.

- 내가 문제인가, 규칙이 문제인가?

“시설 입소할 때 특정한 사람들, ‘말을 잘 듣는 청소년’만 너무 가려 받는 게 있으니까 문제를 제기할 때면 ‘여기는 이미 만들어진 규칙이니까, 너는 이대로 따라와야 해. 어차피 쉼터는 청소년이 많이 오고, 너도 몇 달 있다가 나가잖아.’ 답답하면 내가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경우가 되게 많았어요. […] 다른 시설에 갈 때도 이게 (적응을 못 해서 나온 것으로 이야기가 실무자끼리 전달되어) 좀 지장이 있더라고요. 자리가 있어도 안 받는 경우가 두루두루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선택지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거기서 버텨야 하는 쪽… 그렇습니다.”

시설은 공동체 생활과 보호의 명목하에 규칙을 정한다. 이러한 규칙은 시설 안에서의 삶에 대한 불안을 오히려 키우고, 청소년의 지향과 맞지 않을 때는 그 규칙 때문에 실무자와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이미 정해진 규칙, 규율에 순응하지 않을 때나 부당함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 시설에서 불편한 존재는 ‘규칙’이 아닌, ‘나’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상황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결국 청소년은 시설 안에서 겪는 문제의 원인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그러나 원인을 따져 책임을 묻는 일은 개인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시설로 향해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다양성이 고려되지 않으면 마땅히 누구든 불편하다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CCTV 속 삶 : ‘집’이 나를 평가하는 기분

“방문에 유리가 이렇게 있는 거예요. 남자 공익 요원이 막 돌아다니니까, 애들 확인하려고. 나는 여잔데 옷을 갈아입을지, 누워있을지 […] 한번은 너무 불편해서 남자 공익 요원 안 돌아다니게 할 수 없냐고 하니 ‘네가 그냥 유리를 가려라. 근데 그것도 옷을 입을 때 잠깐이다.’ 이런 말이 돌아왔어요.”

“내 방인데 내 방 아닌 느낌. 내 방인데 자꾸 다른 사람들이 청소하러 와요. 내 옷이나 이런 것들을 내가 편한 곳, 정리하고 싶은 곳에 넣고 싶기도 하고 이랬는데. 만약에 가방을 찾는다고 쳐봐요. 그러면은 가방이 어딨는지부터를 옷장을 다 뒤져야지 나오는 거예요.”

시설 안 청소년은 주거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시설화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시설은 쾌적하고 위생적인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 시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청소년은 자신의 결정과 상관없이 관리자들이 방을 정리하는 아주 일상적인 개입에서부터 불안을 느낀다.

시설을 경험한 청소년들은 시설이 ‘집’이 될 수 없다는 데 가장 공감한다. 시설은 보호와 관리라는 명목으로 유리문을 설치하거나 방문을 제거하여 가장 기본적인 사생활마저 보장하지 않는다. 거주인들은 방 구조를 자기에게 편리하게 바꿀 수도 없다. 이처럼 시설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이 사는 공간과 삶을 결정할 권한, 즉 주도권을 박탈당한다.

이는 시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은 원가정에서 마음대로 문을 잠그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 보호자가 방문을 떼어내기도 한다.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만 여겨져서 자신의 방문에 대한 선택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청소년들은 사실상 원가정에서조차 시설처럼 감시당한다. 따라서 청소년 주거권은 집을 나온 청소년뿐 아니라, 원가정에서 자신의 삶을 존중받지 못하는 청소년의 삶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청소년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고, 원하는 사람도 부를 수 있고, 친구든 가족이든 제한 없이 초대할 수 있고, 나만의 아지트가 될 수 있는 집다운 집을 원한다.”

청소년들은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집을 나왔지만, 살아남기 위해 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모가 없는 청소년이나 비행 청소년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시설 생활을 숨겨야 한다. 게다가 시설의 목표는 가정 및 학업으로의 복귀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문제의 원인이 가정이나 사회가 아니라 탈가정 청소년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카드뉴스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잘 모르는 건 자취해서 살면서 배우면 되고,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들이 있으면 되잖아.” 즉, “돌봄은 나이로 정해지지 않는다. 청소년 주거지원에는 집과 지원서비스가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그 옆에는 팔짱을 끼고 한 손은 턱에 엄지와 검지를 펼쳐 폼을 잡은, 의기양양한 표정의 사람이 “밥 못하는 50대에게서 집 뺏을래?”라고 묻고 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제공.
카드뉴스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잘 모르는 건 자취해서 살면서 배우면 되고,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들이 있으면 되잖아.” 즉, “돌봄은 나이로 정해지지 않는다. 청소년 주거지원에는 집과 지원서비스가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그 옆에는 팔짱을 끼고 한 손은 턱에 엄지와 검지를 펼쳐 폼을 잡은, 의기양양한 표정의 사람이 “밥 못하는 50대에게서 집 뺏을래?”라고 묻고 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제공.

집을 잃은 청소년에게 시설은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다. 청소년의 주거 문제는 청소년의 독립생활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나아가 청소년에게 필요한 집을 제공해줄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를 통해 논의되어야 한다. 청소년은 혼자 살면 위험하다는 등의 ‘걱정’으로 시설만 고집한다거나, 집을 줄 테니 혼자 잘살아 보라고 하는 것은 청소년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발판은 ‘함께하는 자립’을 만들어 갈 방법을 찾고, 그런 대안들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비로소 마련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고민은 청소년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네트워크 안에서 살아갈 기반을 확보하고, 시설이 아닌 안전한 공간에서 삶의 주도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일 것이다.

2021 세계 주거의 날 기념

[청소년 주거권 말하기 확산을 위한 캠페인]

“우리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집!”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2021 세계 주거의 날’을 기념하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집다운 집’에 대한 이야기가 멈추지 않도록 청소년 주거권 운동에 힘을 보태주세요. ▷ http://bitly.ws/hqP5

필자 소개

박연주. 관악들꽃청소년자립지원관 자립지원요원. 최근 독립하여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개척자. 청소년의 주거 독립을 위한 그날을 지지하며 함께 나아가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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