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중심의 지원 위한 탈시설 전략 마련해야
유럽연합, 국가 차원의 아동 탈시설 전략 수립
정부의 시설수용 정책 반성부터 이뤄져야 

쉼터 등 시설에서 아동·청소년이 느꼈던 감정. ‘혼자 있고 싶어’, ‘아, 답답해’, ‘해라,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 ‘같이 자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어’ 등이 있다. 사진 강혜민
쉼터 등 시설에서 아동·청소년이 느꼈던 감정. ‘혼자 있고 싶어’, ‘아, 답답해’, ‘해라,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 ‘같이 자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어’ 등이 있다. 사진 강혜민

“처음 보호시설에 거주했을 때, 다수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동체 인원이 자주 교체되는 것 때문에 저는 생활의 불안정함을 느꼈습니다. (…)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취침 시간, 기상 시간, 식사 시간, 청소 시간, 귀가 시간, 하루 일과 등이 이미 정해져 있고, 이러한 많은 규칙을 지켜야 했습니다. 불안정한 공간에서 보호받기 위해 개인의 개별성과 존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폭력적인 보호입니다.” (곰곰 탈시설 청소년 당사자)

곰곰은 탈가정 청소년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 가족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정에서 거리로 탈출했다. 그러나 거리는 안전하지 못했다. 생존과 범죄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호시설에 입소했으나 그곳 또한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동복지계에서도 탈시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등은 27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아동의 시설보호를 넘어, 변화를 위한 모색’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김상희TV 유튜브 영상 갈무리
아동복지계에서도 탈시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등은 27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아동의 시설보호를 넘어, 변화를 위한 모색’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김상희TV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처럼 많은 아동과 청소년이 원가정과의 불화, 유기, 아동학대 등으로 원가정에서 분리되곤 한다. 또는 미혼부·모나 혼외자인 경우, 부모의 빈곤·실직, 사망, 질병, 교정시설 입소, 이혼 등의 사유로 ‘보호대상아동’이 되기도 한다. 아동복지법 제15조에 따라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관할 구역에서 보호대상아동을 발견하거나 보호자의 의뢰를 받으면 ‘아동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령에 따라 보호조치 해야 한다.

아동의 보호조치에는 시설수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9년 기준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하는 아동은 1만 1665명, 그중 90%에 달하는 1만 585명은 전국 240곳의 아동양육시설에서 살고 있다. 아동양육시설은 보호대상아동을 입소시켜 보호, 양육 및 취업훈련, 자립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시설당 평균 44명이 거주하는 꼴로, 단체생활로 인해 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힘들다. 

시설보호 외 다른 대안은 없는 걸까? 아동복지계에서도 탈시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등은 27일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아동의 시설보호를 넘어, 변화를 위한 모색’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 아동 중심의 지원 위한 탈시설 전략 마련해야 

정선욱 덕성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호대상아동의 욕구와 최상의 이익에 맞춘 아동 중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중심의 지원을 위해서는 그의 욕구를 살펴야 하는데, 이때 보편적 욕구와 특별한 욕구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정선욱 덕성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호대상아동의 욕구와 최상의 이익에 맞춘 아동 중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김상희TV 유튜브 영상 갈무리
정선욱 덕성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호대상아동의 욕구와 최상의 이익에 맞춘 아동 중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김상희TV 유튜브 영상 갈무리

정 교수에 따르면, 보호대상아동에게는 안정과 사랑에 대한 영속성과 함께 자신의 원가정을 알고 싶은 정체성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는 보편적 욕구다. 따라서 원가정과 분리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 교수는 “원가정에서 지원받는 것을 고려하되, 원가정 지원이 어렵다면 가정과 같이 보편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보호대상아동 중 원가정과 연락이 가능한 아동의 비율은 양육시설의 경우 약 80%, 공동생활가정 80%, 위탁가정 약 78%로 나타나고 있다. 

보호대상아동 중에는 학대피해아동, 장애아동, 경계선 지적장애아동 등 대상의 상태에 따라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아동도 있다. 이들에겐 보편적 욕구에 더해 정서 지원 등 '특별한 욕구'가 필요할 수 있다. 특별한 욕구에 대한 보호조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학대로 인한 보호조치는 2020년에 전년보다 19.1%가 증가했고, 보호조치한 아동 4120명 중 42.9%에 달하는 1767명이 학대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아동도 2020년 기준 전년보다 21.1%가 증가했다.

베이비박스에서 시설로 전원된 아이들도 특별한 욕구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의 증가로 보호아동의 시설 입소가 늘어나는 영향도 나타났다. 정 교수는 “2012년 이전에는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이 57명이었다면 2012년 8월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이후 2013년부터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베이비박스 아동이 시설로 전원되면서, 시설이 자연스럽게 존속되는 상황이 전개됐다”라고 지적했다. 

특별한 욕구를 가진 보호대상아동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나라 아동보호 정책도 이에 초점이 맞춰지는 추세다. 그러나 이마저도 예산이 적어 지원받는 아동의 수는 적다. 

정 교수는 “보편적 욕구 충족 없이 특별한 욕구에 대한 지원만 늘리는 것은 사상누각과 같다. 특별한 욕구 또한 다수의 아동이 모여서 생활하는 형태에서는 충족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하며, “보편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탈시설의 관점에서 정부 전략과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라고 제시했다. 

보편적 욕구 충족을 위한 탈시설 전략 수립을 위해 2009년 유엔총회에서 결의한 ‘아동의 대안양육에 관한 지침’을 기본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지침에서는 시설양육을 제한하고, 대규모 양육시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탈시설 맥락에서 양육기준을 세워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 유럽연합, 국가 차원의 아동 탈시설 전략 수립

국제사회에서도 아동 탈시설에 대한 논의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찍이 1989년 유엔에선 ‘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됐으며, 2009년 ‘아동의 대안양육에 관한 지침’ 결의에 이어 2020년 12월에는 원가정 보호와 가정형 대안양육을 촉진해야 한다는 ‘아동보호 원칙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됐다. 

이러한 흐름 속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 Commission)는 2020년 ‘27개 유럽연합 국가의 시설에서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전환에 관한 보고서(아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장애아동을 포함한 아동의 탈시설 및 지역사회 돌봄에 대한 상황과 대안 및 경향을 제시한다. 또한 아동 탈시설 전략을 선택했거나 시설보호를 하지 않는다고 밝힌 국가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불가리아(2010~2025), 크로아티아(2018~2020), 체코(2012~2015), 라트비아(2015~2023), 루마니아(2014~2020) 등에서 아동 탈시설 전략을 세웠으며, 점진적으로 아동의 시설 수용을 줄여나가고 있다. 

김희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유럽연합의 아동 탈시설 사례를 소개했다. 사진 김상희TV 유튜브 영상 갈무리
김희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유럽연합의 아동 탈시설 사례를 소개했다. 사진 김상희TV 유튜브 영상 갈무리

김희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아동 탈시설 전략을 세운 나라 중 한 곳인 스웨덴은 가능한 한 친인척 위탁 또는 가정위탁, 전문직원이 있는 집 같은 곳에서 아동을 보호하며, 시설은 5명 이하의 소규모 그룹홈만 가능하다”라며 “그러나 일부 아동이 사회복지 관련 법규에 따라 여전히 시설수용이 가능한 현실에 대해선 여전히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라고 소개했다. 

김희진 변호사는 “보고서에서는 아동 탈시설 정책에서 국가의 중장기 정책과 전략이 필수적이고, 무엇보다 아동·청소년 개인의 삶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라며 “시설에서 개별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권리보장을 위한 탈시설 정책 수립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과제다”라고 말했다.

- 정부의 시설수용 정책, 반성부터 이뤄져야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2019년 대한민국 아동권리협약 제5·6차 국가보고서 심의 결과에서 아동 탈시설 전략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에 걸맞은 아동 탈시설 정책은 시행되고 있지 않다.

그러는 사이 대규모 시설에서는 아동의 학대와 폭행이 지속되기도 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서울시립 아동보육시설 ‘꿈나무마을’에서 벌어진 아동학대 사건이 보도됐다. 이 시설에는 170명의 아동이 살았고, 국가에서 1년에 100억 원을 지원받았다. 꿈나무마을을 운영했던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는 처음에는 발뺌했지만, 추가 학대 피해가 빗발치자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설에서 벌어진 학대와 폭행 사건에서 시설수용 정책을 수십 년간 지속해온 정부의 반성이나 사과는 없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정부의 시설수용 정책에 대한 반성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김상희TV 유튜브 영상 갈무리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정부의 시설수용 정책에 대한 반성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김상희TV 유튜브 영상 갈무리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정부의 시설수용 정책에 대한 반성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활동가는 “꿈나무마을에는 ‘투명인간’이라는 벌칙이 있다. 이 벌칙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말을 시키지 않고 못 본 척했다. 바로 그게 우리 사회가, 정부가 시설에 사는 사람들에게 내린 형벌과 같다. 시설에 사는 사람을 그동안 투명인간 취급했던 것에 대해 국가는 제대로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라며 “뉴질랜드의 경우 국가가 운영한 병원과 시설에서 아동과 성인에게 자행한 학대에 관한 국가보고서 제목을 ‘시설은 학대의 공간이다’라고 지었다. 국가가 그동안 학대의 공간을 운영했다는 반성의 뜻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캐슬린 윈 총리는 2013년 발달장애인에 대한 수용 정책을 공식사과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애인의 탈시설은 시설에 있는 사람에 대한 정책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기반을 어떻게 마련하는지가 중요하다. 아동 탈시설도 우선 원가정을 지원하는 정책, 위계에 처한 아동이 사회적 보호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내용부터 충실하게 담겨야 한다”라며 “정부는 공급자 중심으로 (아동 탈시설)로드맵을 짤 것이 아니라, 아동 중심으로 체계를 새로 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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