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한별의 못다 한 이야기
지난 11월 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카린 엘하라 이스라엘 에너지부 장관이 회담장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행사 주최 측에서 엘하라 장관이 타고 온 차량이 행사장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걸어가거나 셔틀버스로 갈아탈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엘하라 장관은 2시간여 동안 행사장 밖에서 대기하다 참여를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황당한데, 더 황당한 것은 이 일에 관한 영국 환경부 장관의 발언이었다. 조지 유스티스 영국 환경부 장관은 “이스라엘이 엘하라 장관에게 필요한 특별한 조치(particular need)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는 게 통상적”이라며 “행사장의 다른 출입구들은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데 엘하라 장관이 접근 불가능한 입구로 온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논의 테이블에 접근하는 것조차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을 전 세계가 목격했다. 이는 현재 기후위기 대응 논의에서 장애인이 위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유엔 “기후위기는 장애인에게 더 큰 영향 미친다”면서 논의에서 장애인 배제
지난 2020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 OHCHR)이 ‘기후변화에 따른 장애인 권리 증진 및 보호에 관한 분석 연구(Analytical study on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in the context of climate change)’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기후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인권적 측면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하며, 특히 장애인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전한다. 보고서는 장애인은 위기 시 지원에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나 느린 재난(slow-onset events)이 장애인의 영양 섭취, 안전한 식수 및 위생시설, 의료 서비스 및 의약품, 교육과 훈련, 적절한 주거 및 양질의 일자리 접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의 문제의식에 대해 우리 사회도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다. 매해 더욱 심해져 가는 폭염과 폭한,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나 폭설에, 보장구를 이용하거나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 빈곤한 장애인이 가장 취약한 집단 중 하나임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다. 지진 등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장애인이 어떻게 대피할지, 대피한 이후 접근성은 얼마나 보장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를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은 많은 기후위기 대응 논의에서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한국장애포럼은 국제장애인권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코로나19와 국내외 사회 불안 등으로 인한 난민이나 강제 이주 등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장애포괄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컨퍼런스의 취지였고, 당연히 기후위기도 주제에 포함되었다. 야심차게 기후위기 주제를 선정해놓고 보니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와 장애를 한 테이블에 놓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너무 적다는, 아니 거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기후위기가 장애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진 것이 없고, 이미 도래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을 어떻게 장애포괄적으로 만들지에 관한 논의도 제대로 시작된 적이 없다. 당장 정부에서 지난 5월 구성한 ‘탄소중립위원회’만 보더라도 장애인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위원은 없다. 물론 탄소중립위원회는 ‘기후위기 대응 구색 맞추기’라고 비판받고 있으나, 장애인은 이 ‘구색’에서마저도 빠져있는 것이다.
- “기후위기가 장애인에게 미치는 단기·장기적 영향 연구 확장되어야"
국제컨퍼런스에서 기후위기를 주제로 발제한 알렉산드라 코사닉(Alexandra Kosanic) 박사 역시 이러한 현실을 꼬집었다. 장애인 당사자이자 생태학 연구자인 코사닉 박사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기여(Nature’s contributions for people, 아래 NCP)’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NCP는 자연이 공동체의 문화·경제·사회 구성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하며, NCP를 기후 연구에 포함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를 더욱 폭넓게 인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코사닉 박사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진행한 NCP 연구 사례를 공유했다. 코사닉 박사를 비롯한 연구팀은 마다가스카르의 한 원주민 공동체에 자연환경이 미치는 물질적, 비물질적, 순환적 영향을 확인하고, 기후변화가 이러한 영향에 따른 인간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코사닉 박사는 이 연구에 장애인의 접근 자체가 저조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체 연구 대상자 112명 중 장애인은 3명에 불과했다. 코사닉 박사는 “마을에서 만난 장애인이 연구를 위한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았기에 확인했더니,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어 ‘혹시 대답을 잘못할까 봐’ 아예 오지 않았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코사닉 박사는 “기후위기로 인한 급격한 자연 재난뿐만 아니라, 기후위기가 장기적으로, 느리게 변화시키는 자연이 장애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반드시 연구하여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배제되어온 장애인을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이 우리 과학자들의 역할이라면,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논의 테이블에 앉히고 이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정치인과 정부의 역할”이라며 기후위기 대응에 장애인의 적극적 참여 보장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 ‘에코-에이블리즘(Eco-ableism)’ 끝장내기
기후위기 대응이 장애인을 배제하는 현상을 해외 장애계는 ‘에코-에이블리즘(Eco-ableism, 친환경-장애차별주의)’이라고 부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정책이 꼽힌다. 미국·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플라스틱 빨대 금지’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식당, 술집, 카페 등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대형 프랜차이즈들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빨대 사용하지 않기’가 새로운 기후위기 대응 실천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장애 특성상 구부러지지 않는 종이빨대나 단단한 스테인리스 빨대 등을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매번 자기 돈으로 빨대를 구매하여 가지고 다니거나 불편하고 위험하게 음료를 마셔야 하는 걸까?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빨대를 모조리 없애버리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신체와 특성을 가진 사람은 고려되지 못했다.
또한, 차량 운행량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 시 세제 혜택 등의 유인책을 부여하는 정책들도 점점 더 많이 도입되고 있다. 그리고 ‘탄소세’ 등 자가용 이용에 대한 비용을 점점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은 얼마나 제한적인가. 지역에 따라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너무나 많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환경 파괴적 생활 양식을 유지할 ‘권리’가 장애인에게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장애인은 기후위기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기에, 장애인 역시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노력이 여전히 어떤 이들을 배제하고 있다면, 그 미래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배제된 채일 것이다.
호주의 장애인권활동가이자 패럴림픽 수영 메달리스트인 엘리자베스 라이트(Elizabeth Wright)는 “기후변화를 최소화하고,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방법으로 습관이나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제안되는데, 대부분 장애인에겐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전에 나는 비장애인들이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데 있어서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문제 해결 방법을 고안해내기 위해 우리 자신에게 도전해야 한다”라며 장애포괄적 기후위기 대응 방안 모색을 촉구했다.
자, 이제 우리는 어떤 ‘상상’을 발휘할 것인가. 기후위기라는 긴급한 공동의 과제에 모든 인류가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 보자. 그러려면 우선 다양한 목소리를 기후위기 논의 테이블로 초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유튜브] [한국장애포럼]기후위기는 곧 장애인의 이슈, 그런데 기후위기 테이블에 장애인이 있는가?
최한별의 못다 한 이야기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 국내외 장애계를 연결하는 단단한 다리가 되고 싶어 한국장애포럼(Korean Disability Forum, KDF)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계 국제 연대 활동을 하며 못다 한 말을 여기에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