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후, 지원받기 위해 보건소와 구청에 연락 또 연락
병원이송도 못 한 채 아무 지원 없이 열흘간 집에 격리
배달음식으로 끼니 때워, 장애인은 코로나와 상생할 수 있을까

- 청천벽력, 뇌병변장애인 코로나 확진 판정받다

“23일에 코로나 검사받으셨죠? 검사 결과 ‘양성’ 나오셨습니다.”

11월 24일 오전 10시,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 검사를 받은 이유는 24일에 팔꿈치 염증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코로나 증상도 없었기에 음성일 것이라는 생각에 입원할 때 필요한 물품을 챙기고 있었다. 보통 9시이면 ‘음성’이라고 보건소에서 문자가 오는데 이날은 9시가 됐는데도 문자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량이 많아 연결이 안 됐다. 한 시간 뒤 보건소에서 코로나에 확진됐다는 연락이 왔다. 그 순간 나는 나의 건강상태보다 앞으로의 ‘재택치료’에 대해 걱정되기 시작했다. 입원하려고 챙겨두었던 짐들, 텅텅 빈 냉장고, 일어서야 사용 가능한 싱크대와 전자레인지가 눈에 들어왔다.

‘2주 동안 집에서, 혹은 병원에서 지낼 텐데 끼니는 어떻게 때우고, 빨래는 어떻게 하며, 집 안 소독은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에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것은 팔꿈치 염증이었다. 매일 아침에 병원 가서 소독하고, 링거형 항생제를 맞고 있는데 2주 동안 못 맞을 생각을 하니 아득해졌다. 이렇게 중증 뇌병변장애인의 재택치료는 시작되었다.

유진우 활동가의 모습. 전동휠체어를 탄 유진우 활동가가 무지개로 된 가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유진우 
유진우 활동가의 모습. 전동휠체어를 탄 유진우 활동가가 무지개로 된 가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제공 유진우 

- 지원받기 위해 연락 또 연락… 그러나 아무 지원도 받지 못했다

나는 뇌병변장애인이고,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청소, 빨래, 식사, 이동지원에 대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 달에 월 180시간 받는 활동지원서비스로는 시간이 부족해서 평일에 6시간 정도만 이용할 뿐, 주말에는 급한 용무 말고는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센터) 상근활동가로 일하면서 주중 업무 시간에는 근로지원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서, 큰 무리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확진이 되면서 모든 지원이 중단되었고, 일상생활에 큰 타격을 입었다.

나는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내가 활동하고 있는 센터에 알렸다. 최근 이동 경로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왔고, 천천히 생각나는 대로 이동 경로를 적었다. 그러나 나의 이동 경로를 봐도 어디서 어떻게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동 경로를 다 적고 난 뒤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혹시 병원이송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재택치료를 원하시나요?” 나는 병원이송을 원한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하루 이틀이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겠거니 생각을 하고 병원이송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센터 소장님은 그동안 내게 서울시사회서비스원(아래 서사원)에 전화해서 빨리 긴급돌봄을 신청하고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라고 권유하셨다.

난 두 곳에 계속 연락했다. 병원이송을 빨리해 달라고 보건소에 재촉하는 연락과 코로나에 확진되었으니 긴급돌봄을 지원하라는 연락 말이다. 처음 전화가 온 곳은 보건소였다. 나의 인적사항을 알려달라는 전화였다.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등을 알려주고, 마지막에 장애 유무를 알려달라고 했다.

보건소 직원 : 선생님 장애 유무가 어떻게 되실까요?

나 : (장애) 있습니다.

보건소 직원 : 어떤 장애일까요?

나 : 뇌병변 장애입니다.

보건소 직원 : 뇌병변 때문에 장애가 있는 거예요?

나 : 아니요. 장애 유형 중 뇌병변장애라고요. 그래서 휠체어를 이용합니다.

보건소 직원 : 그럼 지체장애인거에요?

나 : 아뇨, 뇌병변장애라는 장애 유형이 있고, 장애 특성상 휠체어를 이용한다고요.

장애에 대한 이해도 없이 상담을 진행해도 되는 걸까. 최소한 보건소 직원이라면 장애에 대한 선이해가 있고,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 거 아닐까. 너무 답답했다. 코로나 확진에 대한 막막함 속에서 필요한 지원은커녕 기 빨리는 대화를 한 뒤, 그다음으로 전화가 온 곳은 보건소에서 병원이송을 담당한 곳이었다. 여기서도 나의 인적사항을 가져간 뒤 병원에는 순차적으로 이송되니 이틀 정도 걸릴 것이라는 말과 함께 몸에 이상 신호가 오면 알려달라는 말뿐이었다.

이제 남은 곳은 서사원이다. 서사원에 전화해서 코로나 확진자이고, 중증 뇌병변장애인인데 긴급돌봄 신청 때문에 연락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서사원에서는 확진자에 대한 긴급돌봄은 하지 않고, 자가격리자에 대한 긴급돌봄만 한다고 했다. 하지만 2021년 1월 20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공백없는 돌봄 지원을 위한 ‘2021년 사회서비스원 긴급돌봄사업’ 시행” 자료를 보면,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긴급돌봄도 서사원의 담당이다. 서사원에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자 서사원 담당자는 “제가 아는 것은 확진자 미포함이지만 포함된다고 해도 대기자가 많아서 어렵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담당자는 본인의 업무인 긴급돌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전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결국 병원이송은 되지 않았고 긴급돌봄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지자체의 지원 없이 6평 남짓 되는 원룸에서 열흘간의 재택치료가 시작됐다.

마스크 그림 아래에 코비드-19라고 쓰여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마스크 그림 아래에 코비드-19라고 쓰여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 혼자 밥 못 하는 뇌병변장애인, 매일 배달음식으로 끼니 때우다

끼니 때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텅텅 빈 냉장고와 다 떨어진 햇반, 2리터짜리 생수 두 통이 전부였다. 앞이 캄캄했다. 이 식량으로 어떻게 10일을 버틸 수 있을지, 과연 밥은 잘 먹을 수 있을지 등의 고민이 시작됐다.

결국 끼니는 매일 배달음식으로 해결했다. 3인분 음식을 아침에 주문해서 1인분씩 소분하여 아침, 점심, 저녁 나눠서 먹었다. 하루 식비로만 3~5만 원이 나갔다. 다행히 동료 활동가들이 보내준 기프티콘과 부모님의 용돈, 나의 한 달 생활비를 써서 해결했다. 그러나 재택치료 나흘째 되는 날인 27일, 더는 생활비를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구청과 보건소에 물품 지원을 문의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병상 대기 중인데, 장애인이라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에 맞는 도시락이나 물, 생활용품 같은 건 지원이 안 되나”라고 문의하자, 구청과 보건소에서는 “체온계, 감기약, 산소포화측정기 말고는 지원되는 게 없다. 예산 문제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먹어야 하며, 어느 곳에 지원해 달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결국 매일 아침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하루를 버티는 방식으로 열흘을 살았다.

장애인 활동가가 하얀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 장애인 안전대책 마련하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장애인 활동가가 하얀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 장애인 안전대책 마련하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 10일간의 비상 상황, 재택치료 아닌 방치였다

난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일어서거나 서 있을 때 잡을 것이 없다. 매번 화장실을 가거나 수동휠체어에 오를 때마다 책상이나 벽을 잡고 일어난다. 뇌병변장애 특성상 경직이 심하고, 뻗치는 힘이 강해서 일어설 때 조심하지 않으면 뒤로 콰당 넘어지고 만다. 이렇게 한 번 일어서고 나면 온몸에 힘이 풀려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10일간 혼자 화장실에서 중심을 잃어 넘어질 뻔한 적이 수십 번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순발력을 발휘해 벽을 잡는다든지, 중심을 앞으로 이동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이 아찔한 순간이 오면 심장이 쪼그라들어 거친 숨을 몰아쉰다. 다행히 열흘간 넘어진 적은 없었다.

지난 3일 오후 5시경, 격리가 해제됐다는 연락으로 열흘간의 재택치료는 끝났다. 그러나 나는 재택치료라는 말 대신 ‘방치’로 바꿔서 쓰고 싶다. 중증장애인 혼자서 재택치료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정말로 방치된 채로 지자체의 지원 없이, 홀로 덩그러니 열흘간 지냈다. 왜 병원이송이 미뤄졌는지, 왜 병원이송이 안 되었는지, 왜 긴급돌봄은 안 된 것인지, 왜 물품 지원은 안 나오는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치솟았다.

정부는 ‘위드코로나’라며 상생의 효과를 기대한다고 하지만 ‘위드코로나’가 만든 건 상생이 아니라 방치이며, 중증장애인에겐 각자도생의 시간이었다. 이는 혼자 끼니를 때우는 것도, 혼자 눕는 것도, 혼자 화장실 가는 것도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에게는 ‘생명을 앗아가는 상황’이며, 정부가 국민을 감염병으로부터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고 연일 하루 확진자가 4,000~5,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국립재활원에 장애인 병상은 16개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와 함께 활동하는 사지마비 장애인 활동가가 어제(6일)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염병의 시대, 장애인은 과연 상생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필자 소개

유진우. 해방의 길을 향해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은 ‘장판(장애인운동판의 준말)’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겪은 차별과 억압을 장판에서 마음껏 털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해방을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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