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에 이어 부부 확진으로 2주 격리, 약 하나 지원 못 받아
“의료공공성 없는 방역 완화는 생명에 대한 방치” 장애계 분노
오미크론 증상 가벼워 방역 완화? 공공의료가 못 견디기 때문 아닌가

어린 자녀가 있는 중증장애인 부부가 코로나에 걸려 14일간 집에서 격리됐다. 현 정부 지침에 따르면 이들은 ‘재택치료’를 한 셈이지만 정부로부터 약 하나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이는 새삼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2020년 1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유사한 위기가 반복되고 있으나 현재에도 장애인 감염에 대한 정부 대책은 부재하다. 그런데도 오미크론 확산으로 공공의료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자 최근 정부는 방역 체계만 완화하고 있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계는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더는 생명을 방치하지 말라”고 규탄하며 재난 상황에서 촘촘한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요구안을 정부에 전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는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더는 생명을 방치하지 말라”고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장애인 코로나 감염 대책 수립을 위한 요구안을 전달했다. 사진 강혜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는 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더는 생명을 방치하지 말라”고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장애인 코로나 감염 대책 수립을 위한 요구안을 전달했다. 사진 강혜민

- 어린 자녀에 이어 부부 확진으로 2주 격리, 약 하나 지원 못 받아

박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조직실장은 중증지체장애인이며 그의 아내도 중증뇌병변장애인이다. 둘 사이엔 이제 막 29개월 된 어린 자녀가 있다. 그 아이가 지난 2월 15일 확진됐다. 부부는 고민 끝에 함께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다행히 일주일은 큰 탈 없이 흘러갔다.

그런데 격리해제가 끝날 무렵 아이에게 열이 나고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21일, 아내가 확진 판정받았다. 부부는 ‘자녀는 격리해제됐는데 엄마는 확진받은 경우 어떠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기 위해 종일 보건소에 전화했다. 그러나 연락은 닿지 않고 그날 저녁에야 전화가 왔다. 박 실장은 “보건소 전화가 개인 핸드폰 번호였는데 연락을 돌리는 아르바이트생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부부는 보건소로부터 ‘아이는 보균자이니 같이 있어도 상관없다’는 답을 들었다.

이틀 후인 23일에는 박 실장이 확진됐다. 부부는 평소 활동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었지만 아이가 확진된 후 활동지원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집에 확진자가 두 명이나 있고 보균자도 있는데 어떤 활동지원사가 들어오려고 하겠어요? 이 상황에서 아이까지 돌봐야 하는데.”

박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조직실장. 어린 자녀에 이어 부부도 확진되어 14일간 어떠한 지원도 없이 집에서 방치되었다. 사진 강혜민
박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조직실장. 어린 자녀에 이어 부부도 확진되어 14일간 어떠한 지원도 없이 집에서 방치되었다. 사진 강혜민

서울시사회서비스원도 긴급돌봄지원에 대해 확답하지 못했다. 부부는 그저 버티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보건소는 여전히 ‘아무 문제 없다’는 입장이었다.

코로나로 아내는 몸살이 나고 박 실장도 고열에 시달렸지만 무엇보다 겁이 났던 것은 어린 자녀의 열이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티비에선 코로나로 인해 영유아 환자가 숨졌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망한 아이도 처음엔 괜찮다가 열이 나기 시작하고 갑자기 혼수상태가 되었는데 응급실이 없어 사망했다고 하더라고요. 증상이 우리 아이와 비슷했어요. 어떤 부모가 긴장하지 않겠어요?”

아내는 평소 다니는 어린이전문병원에 전화해서 비대면 진료를 요청했으나 병원은 비대면진료병원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심평원 홈페이지 목록에 따르면 해당 병원은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었다. 다시 전화하니 부모가 확진자여도 아이는 자가격리가 해제되었기에 비대면 진료 대상이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아내는 탄식했다. “부모가 확진되어서 진료를 못 받는구나. 부모 때문에 아이가 죽겠구나.”

뒤늦게 처제가 아이가 먹는 해열제를 비롯한 몇 가지 약을 긴급택배로 보냈다. 그리고 다행히 아이는 열이 떨어졌다.

“14일간의 격리기간 동안 감염 통보받은 첫날, 그리고 격리해제되는 날 전화하고 문자 보낸 게 보건당국이 한 전부예요. 확진자에 대한 기본적인 조치도 없어요. 심지어 약도 안 줘요. 저도 열이 38도까지 올랐는데 아이는 얼마나 아팠을까요. 아이는 자기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도 못 하는데… 아이가 잘못되면 아이 엄마 말대로 부모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지금 장애인 코로나 대책은 활동지원시간 늘려주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어요. 활동지원 못 받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거죠? 제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박 실장에 따르면, 확진 당일에 신청하지 않으면 병원 입원도 불가능하여 입원도 하지 못했다. 박 실장은 주변에 어린 자녀가 있는 장애인가정에서 연달아 코로나 확진이 발생하고 있는 이야기를 전하며 “3차 백신까지 맞았지만 백신도 별 소용이 없다. 이 소나기를 어떻게 피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갑갑함을 토했다.

지난 2월 4일에도 인천 계양구에 사는 최중증장애인 부부와 여덟 살 난 자녀가 코로나 확진 판정받았으나 어떠한 정부 대책도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은 활동지원사를 통해 감염되었는데, 장애인 확진자를 지원할 활동지원사가 없어서 확진된 활동지원사가 이들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들 부부는 장애인단체의 강력한 문제제기로 다음날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병원에서도 확진된 활동지원사들이 부부의 병원 생활을 지원해야 했다. (참고 : 최중증장애인 부부와 8세 자녀, 일가족 코로나 확진)

- “의료공공성 없는 방역 완화는 생명에 대한 방치” 장애계 분노

2020년 2월 코로나 1차 대유행 이후 장애계는 줄곧 장애인 감염병 대책 마련을 정부에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 대책은 매우 더뎠다. 2021년 4월 발표된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개정판)’에 따르면 지자체는 장애인이 선별진료소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을 지원하고, 특히 시각장애인에겐 목적지까지 이동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자체별 지원체계가 다르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 부재로 이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지난달 22일에는 중증시각장애인이 유전자증폭검사(PCR)를 받으러 가는 길에 쓰러져 사망했다. 사망 후 그는 양성 판정을 받았다.

2021년 4월 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개정판)’. 이동서비스 지원 주요 대상을 명시한 부분에 “시각장애인은 보호자 동행 또는 이동지원 인력을 지원하여 차량 탑승 전-후 목적지까지 이동 지원”을 한다고 명시했다.
2021년 4월 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개정판)’. 이동서비스 지원 주요 대상을 명시한 부분에 “시각장애인은 보호자 동행 또는 이동지원 인력을 지원하여 차량 탑승 전-후 목적지까지 이동 지원”을 한다고 명시했다.

코로나 초기 때부터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활동지원도 지속해서 요구해왔지만 이 또한 제공되지 않는다. 장애계는 공적서비스기관인 사회서비스원에서 인력풀을 확보하여 필요시 즉시 파견할 것을 요구해왔으나 사회서비스원은 활동지원사 안전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활동지원사 개인의 선의에 기대거나,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하는 비장애인활동가들이 ‘결의’를 해서 지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혹은 가족이 지원하기도 한다.

확진/자가격리된 장애인의 활동지원을 하는 경우, 추가수당 지급에 대한 요구도 올해 2월 추경예산을 통해서야 마련됐다. 그러나 시간당 2000원(1일 48000원, 최대 33만 6000원)으로 위험수당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낮다. 전장연은 “이는 지난 2월 15일 대구시가 발표한 ‘재가 취약계층(독거노인·장애인) 돌봄 등 지원계획’에서 제시한 위험보상비 일 10만 원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비판했다.

최근엔 오미크론 확산으로 방역 체계가 고위험군 중심으로 바뀌었으나 변화된 방역체계에도 장애인의 자리는 없다. 장애인은 고위험군에 속하지 않아 선별진료소 PCR 우선검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3월 1일, 정부는 방역체계를 한 단계 더 완화했다. ‘방역패스’를 중단하고, 확진자의 동거인에 대해서도 예방접종과 관계없이 수동감시로 전환한다고 알렸다. 수동감시란 보건소가 제시한 권고와 주의사항을 자율적으로 준수하며 알아서 스스로 감염 방지에 애쓰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전장연은 “의료접근성과 서비스지원의 공공성이 해결되지 않은 방역 완화는 생명에 대한 방치”라면서 “장애인에겐 자가검사키트가 아니라 인력지원이 필요하다. 자가진단키트를 판매하는 약국을 찾아 키트를 구매하고 사용하는 일까지 혼자서 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 있다. 재택치료, 수동감시는 장애인에겐 방역에 대한 포기”라고 규탄했다.

- 오미크론 증상 가벼워 방역 완화? 공공의료가 못 견디기 때문 아닌가

정부 대책엔 재가장애인에 대한 고려도, 발달장애인에 대한 고려도 없다. 그저 민간이 알아서 해야 한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산소호흡기를 사용하는 한 최중증장애인은 외출이 어려워 백신 1차 접종도 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최근 활동지원사가 확진됐다. PCR 검사를 하고 싶지만 이 상태에서는 보건소 이동이 더 위험해서 검사도 못 받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복지부와 질병청은 알아서 하라고만 한다”고 규탄했다.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시지부장은 “최근 가족 없이 고시원에 혼자 사는 발달장애인분이 확진됐다. 그런데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서 우리 단체에서 이 분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부 대책이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노했다.

박주석 전장연 건강권위원회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주석 전장연 건강권위원회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주석 전장연 건강권위원회 간사는 “평소 의료체계에서 배제되고 차별받던 장애인에 대한 불평등이 코로나 상황에서 더욱 심화됐다”면서 “정부는 오미크론 증상이 가벼워서 방역체계를 완화한다고 하나, 실은 공공의료기관이 못 견디기 때문이 아닌가. 장애계의 끊임없는 요구로 만들어진 매뉴얼조차 현재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공공의료 확충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장애계는 정부에 △감염병 및 응급상황 시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 시스템 구축 △PCR 및 재택치료 고위험군 대상에 장애인·돌봄종사자 포함 △지자체별 진단·치료·사후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 △중증장애인 자가격리·확진 시, 24시간 긴급지원 및 원스톱 행정체계 구축 △장애인 가족 혹은 동거인 확진으로 재택치료 시, 장애인 지원 계획 수립 △사회서비스원을 통한 의료접근성 확대 및 공공돌봄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긴 요구안을 전달했다.

박주석 간사는 “이처럼 많은 요구안은 그만큼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동안 장애계가 계속 요구했지만 복지부와 질병청은 듣지 않았다. 응답받을 때까지 계속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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