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정말 안 되는 걸까?①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한다던 대통령의 거짓말을 믿었다
의료급여 못 받는 빈곤층 약 73만 명, ‘3%’로 관리되는 수급률

[편집자 주] 2022년 신년을 맞아, 비마이너는 올 한 해 주목해야 할 이슈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 번째는 문재인 정부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파기입니다. 이가연 기자가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정말 불가능한지 짚어봅니다. 두 번째는 지난해 8월 발표된 정부의 탈시설로드맵입니다. 허현덕 기자가 탈시설로드맵이 가리키고 있는 시설 소규모화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는 동자동 쪽방촌에 도착한 부동산 투기 광풍입니다. 동자동 쪽방 공공개발을 둘러싼 소유주들의 반란을 하민지 기자가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 순 서 》 
①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정말 안 되는 걸까?   
② 탈시설로드맵이 꺼낸 위험한 시설 소규모화
③ 부동산 투기꾼의 오래된 욕망, 쪽방촌 민간개발

지난 2021년 12월, 박진 씨가 주민센터에서 '가족관계 해체증명서'를 작성하고 있다. 천장에 '기초수급'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달려 있다. 사진 이가연 
지난 2021년 12월, 박진 씨가 주민센터에서 '가족관계 해체증명서'를 작성하고 있다. 천장에 '기초수급'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달려 있다. 사진 이가연 

“굶어 죽겠네, 굶어 죽겠네” 

중증 지적장애인 박진(가명) 씨는 요즘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노래방 사장으로부터 명의도용을 당한 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을 통해 자립을 준비하게 된 박 씨는 가구공장에 취직해 70만 원의 월급과 월 40여만 원의 생계급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박 씨가 치과에서 사랑니를 뽑고 충치치료를 받았더니 14만 원의 진료비가 청구됐다. 그의 진료비는 한 달 약 110만 원의 생계비에서 고스란히 빠져나가게 됐다. 

박 씨는 의료급여 지원을 받지 못한다. 부양의무자(1촌 이내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기준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허들을 넘어야 한다. 나의 빈곤(가구의 소득인정액)을 증명하고, 나의 부양의무자가 나를 부양할 능력이 없음(부양의무자기준)을 증명해야 한다.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의 30% 이하여야 한다. 기준중위소득이란 전국의 모든 가구소득을 1에서 100까지 줄 세웠을 때 한 가운데인 50을 뜻하는 것으로, 50의 30%(여기서는 15) 이하면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다. 박 씨가 생계급여 수급자라는 것은 이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반면 의료급여는 기준중위소득 40%(여기서는 20) 이하로 생계급여보다 기준점이 높다. 

기준중위소득과 급여별 소득인정액 비율. 박진 씨는 이미 빈곤이 증명되어 생계급여는 받고 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의료급여는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작 이가연
기준중위소득과 급여별 소득인정액 비율. 박진 씨는 이미 빈곤이 증명되어 생계급여는 받고 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의료급여는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작 이가연

즉, 박 씨는 이미 생계급여 수급으로 빈곤이 증명되었음에도,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급여를 신청하려고 주민센터에 갔더니 부모님의 동의서가 없다고 해서 신청도 못 했어요. 아버지는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서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어머니는 연락도 안 되는데 어떻게 동의서를 받아와요?” 

주민센터는 부모의 재산을 파악하기 위한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를 박 씨에게 요구했고, 박 씨는 이에 수차례 항의했다. 그제야 주민센터 직원은 ‘가족관계 해체증명서’를 제출하면 의료급여 심사를 받을 수 있다고 뒤늦게 알려줬다.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 지침에 따르면 부양의무자와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 지방생활보장위원회(아래 지생보위)를 통해 가족관계 해체를 증명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생보위 활성화를 통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비수급 빈곤층을 구제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정작 빈곤층이 가장 먼저 만나는 주민센터는 지생보위에 관한 안내조차 하지 않는다. 

박 씨는 지난해 12월 16일, 주민센터에 방문해 마침내 가족관계 해체증명서를 제출했지만, 주민센터 직원은 연신 ‘정말로 어머니랑 연락 끊겼어요?’라고 되물었다. 이제 박 씨는 3개월 동안 의료급여 수급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한다던 대통령의 거짓말을 믿었다

지난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전 복지부 장관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지난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전 복지부 장관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빈곤 예방과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부양의무자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갈 것입니다. 복지부는 이미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물론,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더 가야 할 길이 남아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빈곤이 근절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입니다.” -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 장관

지난 2017년 8월, 박능후 전 장관은 광화문 지하보도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 찾아와 의료급여를 포함해 기초생활보장제도 내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야심 차게 선포했다. 대통령을 대신해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는 말을 전하러 온 그날, 박 전 장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차 있었다. 장애계 활동가들은 박 전 장관과 함께 손을 붙잡고 환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3년만인 2020년 8월 10일, 제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2021~2023)(아래 제2차 종합계획) 브리핑에서 박 전 장관은 이렇게 거짓말했다. 

2020년 8월 10일, 박능후 전 복지부 장관이 제2차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출처 복지부

“제가 참고로 더 말씀드리면, 대통령께서 부양의무자 조건을 완화하겠다는, 철폐하겠다는 것은 생계급여에 초점이 있는 말씀이셨지, 그것이 의료급여를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실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은 장애인들의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이 공약사항이었고 직접적으로 부양의무자 조건을 폐지하겠다는 것을 직접 언급하신 바는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공약으로 삼았지만, 거짓말까지 해가며 끝내 폐지하지 않았다. 작년 10월 1일에는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실상은 폐지가 아닌 ‘완화’에 불과했다. 의료급여 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제2차 종합계획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올해부터 기초연금 수급 노인이 포함된 부양의무자 가구에 부양의무자기준 적용을 제외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로 인한 신규 의료급여 수급자는 11만 명에 불과해, 여전히 3%대의 수급률을 유지하게 된다. 

- 의료급여 못 받는 빈곤층 약 73만 명, ‘3%’로 관리되는 수급률

정부는 지난 10년(2011~2020년) 동안 의료급여 수급률을 전체 인구의 3%(2020년 기준 152만 명) 내외로 맞춰 ‘관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물론, 다수의 정부 산하 연구기관조차 한국의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빈곤인구 규모보다 적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17년 유엔사회권규약위원회도 저조한 의료급여 수급률을 지적하며 한국 정부에 완전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10년동안 의료급여 수급률은 3%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급여통계. 재구성 이가연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10년동안 의료급여 수급률은 3%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자료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의료급여통계. 재구성 이가연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년 11월 12일 열린 ‘2021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에서 나영균 건강보험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 씨와 같이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 40% 이하에 해당하더라도 부양의무자기준 등의 이유로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비수급 빈곤층은 약 73만 명에 달한다. 만일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게 된다면 비수급 빈곤층 약 73만 명이 의료급여 대상자로 전환될 것이며, 연 약 3조 원의 재정을 더 필요로 하게 된다. 지난해 의료급여 예산 7조 6800억 원의 약 39% 수준이다. 그러나 국비가 늘어나는 대신, 건강보험 가입자가 의료급여 수급자로 전환되어 건강보험 예산은 약 1조 4천억 원 줄어들게 된다.

혹자에게는 연 3조 원의 재정이 어마어마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난하면 제때 치료받지 못해 건강이 악화하고, 건강이 악화하면 노동을 못하니 가난해진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될 경우, 사회적 비용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의료급여 수급자를 성별, 연령, 장애 정도별로 구분한 결과, 노인과 중증장애인, 중증만성질환자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즉, 의료적 지원이 필요하나 빈곤으로 인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들이 의료급여 수급자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비수급 빈곤층 73만 명을 의료급여 수급자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3조 원의 예산은 향후 더욱 커질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비용일지도 모른다. 

지난 10년간 한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OECD 가입국 중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기준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비율)은 16.7%로, 4번째로 높다(2018~2019년 기준). 경제성장의 빛은 빈곤에 닿지 않고 그 어둠의 사각지대에서 어떤 사람들은 병원 언저리에서 맴돌다 사망한다. 그들을 구할 비용은 연 3조 원. 이 돈을 아끼기 위해, 정부는 그동안 수급자를 탓하거나 공약을 파기하며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문 정부가 내세우던 ‘포용적 복지국가’ 정책은 실패했고,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이제 다음 정부의 손에 넘어갔다. 

▶ (이어서) ② 수급자에 덧씌워진 낙인, 현실은 높은 자살률에 미충족 의료도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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