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 모녀 8주기 맞아 빈곤·복지 정책 및 공약 평가 토론회 열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한다더니… 문재인 정부 정책은 기만적인 공약 파기
대선후보 공약도 구체성 없고 현실성 떨어져
“문재인 정부의 ‘포용국가’는 실패했습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문재인 정부의 5년을 이렇게 평가했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부양의무자기준 완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같은 해 8월,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광화문 지하 농성장에 방문해 ‘2020년 8월에 발표될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아래 2차 종합계획)에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공약을 파기했다. 2020년 8월 발표된 2차 종합계획을 열어 보니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은 전면 폐지가 아니라 단계적 폐지 계획만 수립돼 있었다. 의료급여는 ‘개선방안 마련’ 정도로만 간단히 언급됐다. 넉 달 후인 2020년 12월, 방배동 김 씨의 주검이 발견됐다. 그는 부양의무자기준에 걸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받지 못했다. 12년간 체납한 건강보험료는 500여만 원이었다.
사람이 죽어도 제도는 그대로였다. 복지부는 지난해 10월,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60년 만에 폐지’라며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냈지만 폐지가 아닌 완화였다. 의료급여는 완화 계획조차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렇게 공약을 파기한 채 임기가 종료될 예정이다.
송파 세 모녀 사망 8주기를 맞아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는 25일 오후 3시, 조계사 템플스테이기념관에서 문재인 정부의 빈곤·복지 공약 이행과 대선후보 공약을 평가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활동가들은 대선후보들이 실현 가능성 없는 복지 공약을 남발했다고 비판했다.
-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문재인 정부
2010년, 일용직 노동자가 부양의무자인 자신으로 인해 장애가 있는 아들이 수급비를 받지 못한다며, 아들의 수급권을 보장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부양의무자기준에 걸려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한 김 씨 할머니가 거리에서 객사했다. 2012년, 사위의 소득 증가로 수급권이 박탈된 거제 이 씨 할머니가 시청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죽음을 막아야 했다. 2012년 8월 21일,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광화문역 지하에 농성장을 차린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장이었다. 5년 넘게 이어진 농성은 문재인 정부의 약속을 받고 2017년 9월에 중단됐다.
정부 출범 후 말이 바뀌었다. 2019년 9월, 배병준 보건복지부 전 사회복지정책실장은 한겨레가 연 좌담회에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병준 전 실장이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기 두 달 전, 관악구 모자가 아사했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상황이었다. 관악구 모자는 소득인정액이 0원이었지만, 아들의 부양의무자인 이혼한 남편 때문에 수급을 신청하지 못했다.
공약 파기를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시민사회단체는 2019년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에 문재인 정부에 질의서를 제출했다. 질의서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정부 답변을 기다리는 사이, 2019년 11월에 성북구에선 네 모녀가, 인천의 한 아파트에선 일가족과 딸의 친구가 빈곤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정부는 질의서 답변에 또 ‘사회적 합의’를 운운했다. 정성철 사무국장은 “빈곤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실체 없는 말 뒤에 숨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의료급여 수급자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도 줄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에 따르면, 2016년 의료급여 수급자 수는 약 152만 9천 명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에는 149만 8천 명으로 줄었다. 이후 소폭 상승해 2020년에는 150만 8천 명으로 집계됐다.
임기 막바지였던 지난해 10월, 정부는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을 소득 연 1억 원, 재산 9억 원으로 완화해 놓고 폐지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조치로 신규 수급자 23만 명을 발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생계급여 수급자 수는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전인 9월보다 1만 9천 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성철 사무국장은 “지난해 10월 정부 발표 이후 사무실에 전화가 많이 왔다. 부양의무자기준 없어졌다 해서 주민센터에 가서 신청했더니 아직 있다더라, 어떻게 된 거냐고들 물었다. 탈시설한 장애인은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다시 시설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정부는 자화자찬하며 보도자료를 냈지만 빈곤층에게는 비극이 되풀이됐다”고 말했다.
정 사무국장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아니다. 빈곤문제를 개인과 가족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시작에 불과하다”라고 강조했다.
- 긴급복지지원제도 신청하니 “건보료 6개월 이상 체납하셔야 가능하세요”
긴급복지지원제도도 문제가 많다. 이는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에 처해 생계유지가 어려운 저소득 가구에게 생계·의료·주거비 등을 긴급하게 지원하는 제도다. 송파 세 모녀 사망 당시에도 있었던 제도지만 홍보 부족, 까다로운 기준 등으로 송파 세 모녀가 지원했어도 탈락했을 거란 평가가 많았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소득기준은 기준중위소득 75% 이하다. 1인 가구의 경우 월 소득 145만 원(2022년 기준) 이하여야 한다. 부양의무자기준은 없지만 재산기준 대도시 2억 4천만 원, 중소도시 1억 5천만 원, 농어촌 1억 3천만 원 이하와 금융재산 기준 600만 원 이하 등을 충족해야 한다.
무엇보다 ‘위기상황’의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는 게 문제다. 월세를 체납해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신청할 경우 납부할 수 있는 보증금이 있으면 지원받을 수 없다. 김선미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공동대표는 “만약 보증금에서 월세가 차감된다면 현재 거처와 같은 수준의 주택을 구할 수 없을 텐데, 제도는 이를 위기로 보지 않는다”고 규탄했다.
김선미 대표는 지원 선정기준과 지원내용이 연결되지 않는 점 또한 비판했다. 수도요금, 가스요금 등을 ‘상당 기간’ 연체해야 긴급복지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이 경우 연체된 수도·가스요금을 지원해주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긴급복지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일 뿐이며, 체납액보다 적은 금액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연체 기간을 ‘상당 기간’이라고 추상적으로 규정해 주민센터 담당자 재량에 맡기고 있다.
건강보험료는 연체기간이 6개월 이상인 경우를 ‘위기상황’으로 본다. 체납기간이 6개월 미만이면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면 노숙기간은 6개월 미만이어야 한다. 6개월이 넘어가면 지원이 불가하다.
갑작스럽게 실직한 사람도 지원대상이지만 공공근로와 자활근로는 제외된다. 김선미 대표에 따르면 주민센터에서 ‘공공근로와 자활근로는 언제 실직될지 예측이 가능하니까 위기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선미 대표는 “긴급복지지원제도는 효율성보다 효과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기상황에 놓인 대상을 신속히 지원해야 하는데 이렇게 장벽을 다양하게 세우면 안 된다. 다양한 위기를 포괄해 극심한 빈곤상태를 대처하는 제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대선후보 공약,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반성도 비판도 없어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빈곤·복지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활동가들은 대선후보 공약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생계급여 선정기준을 기준중위소득 30%에서 50%로 단계적 확대할 것이라 공약했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더불어 전 국민 기본소득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성철 사무국장은 “공공부조를 비롯한 소득보장제도와 기본소득이 어떻게 관계할 것인지 구체적 내용이 없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생계급여 선정기준을 기준중위소득 35%로 상향하겠다고 약속했다. 근로소득 공제율을 50%로 확대하고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선정기준과 보장수준도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도덕적 해이’에 대비하겠다는 말도 했다. 정 사무국장은 “빈곤층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 발언이다. 사회보장제도의 신뢰도를 낮추고 제도 확대를 가로막아 온 전형적인 반복지 담론”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의료급여 선정기준 50% 상향,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근로능력평가 폐지, 자활 일자리 확대 등을 공약했다. 정 사무국장은 “기존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해결 방안이 담겼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기존 제도 개선보다 ‘시민최저소득 100만 원’, ‘전 국민 소득보험’ 등 새로운 제도 도입에 더 방점이 있다”며 유의해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정 사무국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경우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 공약은 ‘기준중위소득 결정 제도 개선 필요’ 등 모호한 말로 채워져 있다. 게다가 ‘(빈곤층이) 수급자 신분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발언하며 윤석열 후보처럼 빈곤층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문재인 대통령 빈곤·복지 공약은 대부분 이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선후보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 파기에 대한 반성과 비판 없이 이행 가능성이 없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송파 세 모녀의 사망 이후 달라진 게 없다”고 성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