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시정기구 인권위, 되레 장애인차별 앞장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편의 제공 의무 없다’ 판단에 이어, 차별 발언까지
장애계 “인권감수성 수준 낮은 인권위, 시정기구 역할 가능한가?” 규탄

인권위는 드라이브스루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을 장애인 개인의 문제라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해 파장이 일고 있다. 진정인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6일, 인권위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인권위가 행정심판 과정에서 ‘드라이브스루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장애인 개인의 문제’라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해 파장이 예상된다. 진정인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6일, 인권위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인권위가 행정심판 과정에서 ‘드라이브스루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장애인 개인의 문제’라는 취지의 답변서를 제출해 파장이 예상된다. 장애인차별시정기구인 인권위의 인권감수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 어떻게든 주문할 수 있으면, 차별 아니라는 인권위  

지난해 2월 청각·언어장애인 당사자들은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차에 탄 채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매장에서 차별을 당했다고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대구사무소에 차별을 진정했다. 드라이브스루는 음성언어로만 주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청각·언어장애인은 이용이 힘들다. 따라서 화상수어채팅 또는 장애인 편의가 마련된 키오스크 방식으로 제공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인권위는 이를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스타벅스 측이 청각·언어장애인에게 △주차 후 매장에 들어가서 주문하는 방식 △운전 시작 전 스마트폰으로 미리 주문하는 방식 △부기보드(휴대용 전자노트 브랜드)를 이용한 필담으로 주문하는 방식 등의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는 답을 듣고서다. 또한 인권위는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진정인 김시형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사람센터) 권익옹호팀장은 지난해 11월 인권위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그런데 행정심판 과정에서 지난 12월 인권위는 ‘뇌병변 장애인은 운전을 못해 드라이브스루 이용을 못한다’는 등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담긴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에 진정인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은 6일, 인권위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뇌병변장애인은 운전 못해, 드라이브스루 이용 못한다?

인권위는 행정심판 답변서에서 진정인은 실질적인 피해자가 아니며, ‘권익옹호 활동’의 하나라고 단정 짓고 있다. 또한 중증 뇌병변장애인은 운전을 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드라이브스루 이용을 할 수 없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현행법에서는 운전면허 취득 시 시각장애인을 제외한 모든 장애유형에 대한 제약을 두지 않는다. 

김시형 사람센터 권익옹호팀장은 “왜 인권위는 내가 운전을 못한다고 판단을 하는가? 권익옹호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만으로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라고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나?”라며 ”행정심판 청구에 대한 답변이라기보다 인권위는 개인에 대한 판단과 장애에 대한 무능함을 나타내는 데 주력했다. 진짜 인권위 답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답변서를 인권위에 장애인 차별로 진정해야 할까도 고민된다”라며 규탄했다. 

이어 “세계적인 기업인 스타벅스는 왜 한국에서만 장애인 차별 기업이 될까. 최근 통신기기를 파는 기업이 경사로 설치를 하라는 인권위 권고를 불수용했다는 기사를 봤다. 세계적인 기업조차 한국에서는 장애인을 차별해도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 애플제품을 판매하는 프리스비 대구지점에 인권위가 휠체어 경사로를 설치하라고 권고했지만 불수용한 것에 대한 지적이다. 

진정인 김시형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팀장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진정인 김시형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팀장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인권위는 중증 뇌병변장애인이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데 드라이브스루까지 이용할 수 있겠냐며,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논리적인 내용이 전혀 없다”라며 “결국 스타벅스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라고 비판했다. 

- 인권위 “수어 이용자 3.8%” 사기업 수어 제공 의무 없다

답변서에는 소수 장애인에 대한 편의제공이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내용도 있다. 

인권위는 답변서에서 청각·언어장애인은 주문할 때마다 어려움이 있으니 특별히 드라이브스루만 개선할 필요성이 없다는 입장도 보였다. 인권위는 답변서에 “청각·언어장애인은 드라이브스루 이용뿐 아니라 운전, 스타벅스 매장 내에서의 주문, 앱을 통한 주문 또한 어려워보이지만, 드라이브스루 이용에 대한 차별 사건에서 그러한 경우까지 판단하는 것은 범위를 넘어섰다”라고 밝혔다. 

또한 인권위는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를 근거로 ‘청각장애인 중 주된 의사소통이 수어인 비율은 3.8%에 불과하다’며, ‘상정할 수 없는 피해자 집단에게는 필담이 적절한 편의 제공으로 판단된다’라며 수어 제공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더불어 공공기관에서조차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는데 사기업인 스타벅스에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 2020년부터 시행된 한국수화언어법에는 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로 규정하고 하고 있다. 소수일지라도 수어 이용자에 맞는 의사소통 방법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편의제공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나동환 장추련 상근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모든 영역에서의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고,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 제공에 대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임의적으로 사기업 책임의 정도를 인권위에서 판단했다. 이는 법의 취지를 몰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행정심판 청구 답변서라면 장애인차별 쟁점사항에 대한 행정처의 고민이 합리적인 근거와 자료에 기초해 담겨야 한다. 그러나 인권위는 자신들의 위법부당을 방어하려는 데 급급해 차별을 용인해도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차별시정기구인 인권위의 장애인 차별인식이 매우 우려스럽다. 인권위 행정심판위원회가 바로잡아줄 것을 촉구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인권위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과 계획을 촉구했다. 

한편, 기자회견 직후 열린 면담에서 염형국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국장은 답변서 내용에 대해 사과하고 구조적 문제파악 및 대책수립을 약속했다. 이번 답변서는 인권위 본부를 거치지 않고 나온 것으로 지역사무소 및 신규 조사관에 대한 교육을 시행하고, 지역사무소 측에 사과문 게시 등 공식적인 사과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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