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폐쇄 기한, 신규시설 설치 금지 등 반영 안 돼
시범사업 1년 국비 예산 21억 5000만 원에 그쳐
“지역사회에서 24시간 지원 보장 담겨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운동단체는 15일 오후 2시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탈시설 정책 의지를 비판했다. 사진 허현덕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운동단체는 15일 오후 2시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탈시설 정책 의지를 비판했다. 사진 허현덕

지난 1월 24일, 보건복지부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시범사업(아래 시범사업)’에 참여할 지자체 공모를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자체에 예산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장애계가 규탄에 나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운동단체는 15일 오후 2시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탈시설 정책 의지를 비판했다. 

시범사업은 지난해 8월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아래 탈시설로드맵)’ 이후 처음으로 시행되는 국가차원의 사업이다. 그러나 시범사업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지자체의 의지에만 맡기고 있다. 

- 1년에 200명 탈시설, 국비 지원은 21억 5000만 원

시범사업에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장애인 600명의 탈시설 계획이 담겼다. 광역·기초 지자체 10곳에서 1년에 20명씩 지원할 예정이다. 시범사업 총 예산은 43억 800만 원에 그친다. 국비와 지방비 비율은 5:5로, 국비는 21억 5000만 원에 불과하다. 지방비는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 예산으로 나뉜다. 광역, 기초 지자체 간 비율이 불균형한 기초지자체는 참여가 어려운 구조다. 

시범사업에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장애인 600명의 탈시설 계획이 담겼다. 광역·기초 지자체 10곳에서 1년에 200명씩 지원한다. 그러나 한 해 국비 예산은 21억 5000만 원에 그친다. 사진 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시범사업에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장애인 600명의 탈시설 계획이 담겼다. 광역·기초 지자체 10곳에서 1년에 200명씩 지원한다. 그러나 한 해 국비 예산은 21억 5000만 원에 그친다. 사진 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시범사업에는 인권침해가 발생한 문제시설이나 재난·위기로 인해 위험에 처한 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가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다. 경기도 성심동원의 경우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었고, 시설폐쇄가 결정됐음에도 3년째 거주인의 탈시설-자립지원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 

정기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성심동원이라는 문제시설은 시설폐쇄가 결정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 15명만 탈시설하고 35명은 여전히 시설에 남아 있다. 시설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예산이 없어서다”라며 “탈시설-자립생활 시범사업을 한다면서 또 지자체에 예산 책임을 떠넘긴다면 대체 어떤 곳이 지원신청을 할지 의문이다. 모든 장애인의 탈시설을 위한 예산을 책정하라”라고 복지부를 향해 외쳤다. 

탈시설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다. 그러나 문 정부 임기 1년을 남겨두고 발표된 탈시설로드맵은 시설 소규모화가 골자다. 올해 시범사업 예산을 포함한 탈시설 예산은 24억 원에 불과하다. 반면 거주시설 운영 예산은 국비만 6224억 원이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는 ”더 화가 나고 분노스러운 것은 탈시설로드맵을 발표하고도 탈시설 예산이 고작 24억 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거주시설 예산은 국비만 6224억 원이라고 한다. 이게 문 정부가 말하는 탈시설인가“라며 ”엉터리 시범사업을 할 게 아니라 시설 예산과 비슷한 수준으로 탈시설 예산을 책정하면 해결될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운동단체는 15일 오후 2시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탈시설 정책 의지를 비판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운동단체는 15일 오후 2시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탈시설 정책 의지를 비판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도 “탈시설-자립지원 예산이 거주시설 예산의 0.4%밖에 안 된다”라고 짚으며 “매일 아침에 일어나 먹기 싫은 밥을 먹고 누워 있다가 똑같은 일상을 보낼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원하는 지원을 받으며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 그것이 국가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시범사업 공모에는 시설의 폐쇄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 또한 단기·공동생활가정 등이 포함된 신규시설 설치 금지, 다른 시설로의 전원이나 신규입소 금지 등에 대해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는 “정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 전략을 다시 들여다보길 바란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근본적인 시설화 구조를 지속하는 것 또한 인권침해라고 말한다. 시설의 폐쇄구조, 신규 시설 설치 금지, 전원·신규 입소를 금지하지 않고서는 시설화의 구조를 절대 바꿀 수 없다”라며 “시범사업에서는 시설 권한을 제한하고 탈시설-자립생활에 기반한 내용이 담겨야 한다”라고 제시했다.   

- 탈시설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 보장돼야

기자회견에서는 국가차원의 시범사업이라면 개인별 주거 및 24시간 지원체계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지원 종합조사 내 최중증장애인에 해당하는 1~6구간의 수급자는 전체 수급자 중 1.67%에 불과하고, 85.2%의 수급자가 하루 5시간 이하인 12~15구간에 밀집되어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활동지원시간을 하루 4시간 정도밖에 받을 수 없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시설에 갇힌 중증장애인은 3만 명이고, 그중 대부분이 발달장애인이다. 정부는 이들이 보호받아야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시설에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처럼 24시간을 지원해야 할 사람이라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살 때도 24시간을 지원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라며 “시설 거주인 80%에 해당하는 발달장애인이 종합서비스 종합조사로는 하루에 4시간 지원밖에는 받을 수 없다. 이들이 지역사회에서도 24시간 지원받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손팻말에는 '탈시설 시범사업은 탈시설 시험사업인가? 탈시설 장애인 떠보지 말고 탈시설권리 보장하라!'라고 써 있다.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손팻말에는 '탈시설 시범사업은 탈시설 시험사업인가? 탈시설 장애인 떠보지 말고 탈시설권리 보장하라!'라고 써 있다. 사진 허현덕

전장연은 정부에 내년도 탈시설 예산으로 788억 원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탈시설 지원 대상 1000명에 대한 탈시설 자립정착금 1인당 2000만 원, 활동지원 추가시간 하루 8시간(월 240시간)을 비롯해 주거서비스유지제공기관 인건비 및 운영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박경석 이사장은 “2009년 마로니에 8인의 투쟁으로 서울시에 탈시설 정책이 수립됐다. 그런데 13년이 지나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문재인 대통령은) 5년 전 약속을 지킨답시고 200명만 지원한다는 말도 안 되는 시범사업을 내밀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탈시설 사업보다 더 못한 사업이다”라며 규탄했다. 

기자회견 직후 장애계는 복지부 최봉근 장애인정책과장, 염민섭 장애인정책국장과 면담했다. 복지부 측은 장애계의 요구에 대해 취지는 이해하지만 예산 책정에 관해서는 확답할 수 없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애계와 복지부는 오는 3월 25일 다시 면담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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