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탈시설로드맵이 꺼낸 위험한 시설 소규모화①
탈시설로드맵은 거주시설 변환 계획
공동생활가정은 결코 집이 될 수 없다
공동생활가정 문제 해결책도 없이 대안으로 제시

[편집자 주] 2022년 신년을 맞아, 비마이너는 올 한 해 주목해야 할 이슈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 번째는 문재인 정부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파기입니다. 이가연 기자가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정말 불가능한지 짚어봅니다. 두 번째는 지난해 8월 발표된 정부의 탈시설로드맵입니다. 허현덕 기자가 탈시설로드맵이 가리키고 있는 시설 소규모화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는 동자동 쪽방촌에 도착한 부동산 투기 광풍입니다. 동자동 쪽방 공공개발을 둘러싼 소유주들의 반란을 하민지 기자가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 순 서 》 
①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정말 안 되는 걸까?
② 탈시설로드맵이 꺼낸 위험한 시설 소규모화
③ 부동산 투기꾼의 오래된 욕망, 쪽방촌 민간개발

정부는 지난해 8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KTV 유튜브 영상 캡처
정부는 지난해 8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KTV 유튜브 영상 캡처

정부는 지난해 8월 2일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아래 탈시설로드맵)’을 발표했다. 탈시설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거주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장애인의 온전한 자립을 뒷받침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선언은 40년간 이어져 온 장애인 수용시설 정책을 벗어나 지역사회 기반의 장애인 정책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탈시설로드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애인 수용시설 정책을 완전히 벗어나려는 정부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탈시설로드맵 곳곳에 장애인거주시설 개편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인공동생활가정 확대는 우려스럽다. 소규모 거주시설의 대표 격인 공동생활가정 확대 정책은 시설 소규모화 정책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시설에 남은 1만 7775명 중 5065명은 개별형주거지원으로 가고, 거주시설에는 2193명이 남는다. 개별형주거지원은 거주시설을 개편해 1인 1실로 변형된 형태를 말한다. 나머지 1만 517명은 공동형주거지원(현 공동생활가정)에서 살게 된다. 사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시설에 남은 1만 7775명 중 5065명은 개별형주거지원으로 가고, 거주시설에는 2193명이 남는다. 개별형주거지원은 거주시설을 개편해 1인 1실로 변형된 형태를 말한다. 나머지 1만 517명은 공동형주거지원(현 공동생활가정)에서 살게 된다. 사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캡처

- 탈시설로드맵은 거주시설 변환 계획?

시설 소규모화 방향은 탈시설로드맵 곳곳에 있다. 2020년 기준 거주시설은 총 1539곳이고, 거주인은 2만 9086명이다. 정부가 탈시설로드맵에서 정책 목표로 정한 2041년에도 이들 중 61%(1만 7775명)가 시설에 남는다. 보건복지부는 나머지 1만 1311명은 탈시설하거나 사망하여 거주인 수가 줄어든 것이라고 밝혔다. 탈시설로드맵에서는 탈시설 인원으로 2025년 740명, 2026년 610명, 2027년 500명, 2028년 450명 등 총 2300명에 대한 계획을 제시한다.  이후에는 ‘탈시설 지원이 점차 감소한다’라고만 밝힌다. 탈시설로드맵임에도 탈시설 목표가 확실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반쪽짜리 탈시설로드맵으로 불리는 이유다. 

시설에 남은 1만 7775명 중 5065명은 개별형주거지원으로 가고, 거주시설에는 2193명이 남는다. 개별형주거지원은 거주시설을 개편해 1인 1실로 변형된 형태를 말한다. 나머지 1만 517명은 공동형주거지원(현 공동생활가정)에서 살게 된다.

‘그룹홈’이라고도 불리는 공동생활가정은 엄연히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거주시설의 한 종류로, 2020년 말 기준 전국 754곳에 2872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정부 계산대로라면 향후 시설 거주 장애인의 59%가 공동생활가정으로 전원될 예정으로, 지금보다 네 배에 달하는 인원이 거주하게 된다.

2021년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아래 사업안내)에 따르면 공동생활가정은 ‘이용 장애인들의 사회통합과 사회적 자립을 목표로 이용자 개개인의 존엄이 유지됨과 동시에 독립적 생활이 최대한 보장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그룹홈 형태. 대형 사회복지법인을 중심으로 시설 쪼개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시설이 작게 쪼개어져 있을 뿐 그 안에서 사는 장애인의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사진 ㄱ 사회복지재단 홈페이지 캡처
서울의 한 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그룹홈 형태. 대형 사회복지법인을 중심으로 시설 쪼개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시설이 작게 쪼개어져 있을 뿐 그 안에서 사는 장애인의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사진 ㄱ 사회복지재단 홈페이지 캡처

- 공동생활가정은 결코 집이 될 수 없다

서울 소재 대형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공동생활가정에서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박혜영(28세, 가명) 씨는 “공동생활가정은 결코 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시설에서 살았던 박 씨는 스무 살이 되어 취직했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같은 사회복지법인의 공동생활가정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됐다. 이 과정에서 거주 이전에 대한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박 씨는 3년간의 공동생활가정 생활을 “마치 훈련생 같았다”라고 말했다. 공동생활가정 내 엄격한 규율로 주로 직장과 공동생활가정만 오가며 살 수밖에 없어서, 사실상 시설생활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방에 2~3명이 함께 살았고, 화장실도 1개로 나눠 썼어요. 같은 공간에 선생님(공동생활가정 생활재활교사)도 같이 살아야 해서 불편했어요. 직장에서 퇴근하면 친구를 만나거나 할 수 없고 곧바로 (공동생활가정으로) 돌아왔고, 돌아오면 휴대폰을 반납했어요. 텔레비전은 평일에는 8시까지밖에 못 봤어요. 그게 그곳의 규칙이었어요. 할 일이 없으니 저녁 8시 이후에는 잠을 자는 수밖에 없었죠.”

이따금 단체 활동을 강요받기도 했다. 박 씨가 거주했던 공동생활가정의 법인은 당시 23개의 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 공동생활가정 당 5~6명씩 거주했다. 박 씨는 대략 130여 명이 되는 거주인과 함께 단체영화 관람이나 해외여행을 가야 했다. 그는 “보기 싫은 영화도 같이 보러 가야 해서 싫었다. 휴가를 혼자 보내고 싶었지만, 단체로 해외여행을 가야 했다”라고 떠올렸다.

금전관리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박 씨는 “월급 중에서 100만 원가량을 사업비로 내야 했던 적도 있다. 그뿐 아니라 옷을 사든 무엇을 사든 선생님이 사진을 찍고 영수증을 찍어서 관리했다. 영수증이나 (증빙) 서류를 안 내면 ‘네가 (시설장의) 결재를 받을 거냐’라고 화를 내며 말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박혜영 씨가 살던 공동생활가정의 가구에는 비품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비품스티커는 기관의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붙여진다. 개인 물품에는 붙여지지 않는다. 사진은 한 복지관의 비품스티커 사진. 사진 송정민
박혜영 씨가 살던 공동생활가정의 가구에는 비품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비품스티커는 기관의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붙여진다. 개인 물품에는 붙여지지 않는다. 사진은 한 복지관의 비품스티커 사진. 사진 송정민

공동생활가정에 있는 가구마다 ‘딱지’가 붙어 있었다. 사회복지시설이나 공공기관에서 비품 관리를 위해 관리자를 적는 비품스티커다. 개인 물품이라면 비품스티커가 붙을 이유가 없다. 

이처럼 공동생활가정에서의 삶은 자립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대형 거주시설 장애인의 삶과 비슷하다.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박 씨는 자기결정권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답답함에 질려 23살 때 그곳을 나왔다. 

공동생활가정 또한 시설의 한 종류이지만, 현재는 공동생활가정에서 탈시설한 경우 대규모 시설에서 탈시설할 때 받을 수 있는 탈시설자립정착금이나 활동지원 추가시간 등을 받을 수 없다. 설립 취지와 달리 거주인의 자립을 목표로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거주인이 탈시설-자립생활 정보도 얻기 힘든 구조다. 

- 되풀이 되는 시설 소규모화 정책… 공동생활가정 문제 해결책도 없어

정부도 공동생활가정의 현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한영규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통합돌봄연계TF팀장은 “현재 (공동생활가정의 설립)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게 맞다”라며 “탈시설로드맵에는 거주시설을 벗어나 자립생활 구조를 만드는 것과 현재의 시설을 변환하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공동생활가정으로 시설 개편을 한다는 방향성만 제시하고, 추후 ‘시설 정상화’를 추진하려는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탈시설로드맵에 제시된 내용 외에 공동생활가정 개선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없다고 밝혔다. 

탈시설로드맵에서는 공동생활가정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자립경험이 축적되어 독립생활이 가능한 경우(독립형/표준형), 두 번째는 자립경험 축적 중으로 훈련이 필요한 경우(간접 지원), 세 번째는 중증·도전적 행동 등으로 집중 지원이 필요한 경우(집중 지원)다. 이에 따라 지원기준, 지원서비스, 지원형태, 인력기준 등을 차별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탈시설로드맵 캡처
탈시설로드맵에서는 공동생활가정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자립경험이 축적되어 독립생활이 가능한 경우(독립형/표준형), 두 번째는 자립경험 축적 중으로 훈련이 필요한 경우(간접 지원), 세 번째는 중증·도전적 행동 등으로 집중 지원이 필요한 경우(집중 지원)다. 이에 따라 지원기준, 지원서비스, 지원형태, 인력기준 등을 차별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탈시설로드맵 캡처

탈시설로드맵에서는 공동생활가정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자립경험이 축적되어 독립생활이 가능한 경우(독립형/표준형), 두 번째는 자립경험 축적 중으로 훈련이 필요한 경우(간접 지원), 세 번째는 중증·도전적 행동 등으로 집중 지원이 필요한 경우(집중 지원)다. 이에 따라 지원기준, 지원서비스, 지원형태, 인력기준 등을 차별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거주자 중심으로 운영을 개선해 대규모 거주시설과 다른 운영기준을 적용한다는 계획도 있다. 세부적으로는 기초생활수급비를 시설이 아닌 장애인 거주인에게 직접 지급하고, 주간보호서비스,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델은 이미 지난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인 공동생활가정 인권상황 실태조사(아래 실태조사)’에서 제시된 바 있다. 당시 실태조사에서는 공동생활가정의 설립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열악한 운영환경 탓이라고 지적하며, 그 원인은 공동생활가정이 지방이양 사업으로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방이양 사업으로 편성된 공동생활가정은 지방정부 예산으로만 운영된다. 대형 거주시설과 다르게 지자체마다 사회재활교사 등의 인원 배치와 처우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운영의 열악함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인권침해  발생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문제도 크다. 실제 중앙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거주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에서도 정부는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2015년 실태조사에서 지적됐던 공동생활가정의 문제점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한영규 팀장 또한 수년간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는 요인 중 하나는 “지방이양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에 ‘정부가 공동생활가정을 확대하는 이유는 거주시설의 관리·감독을 회피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라는 물음에 복지부는 즉각 부정했다. 그러나 지방이양 사업에 따른 한계를 극복할 대안은 없다고 밝혔다. 

한영규 팀장은 “지방정부에 거주시설 관리·감독 책임을 미루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시설을 모조리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탈시설로드맵에는 시설을 쪼개어 ‘정상화’해서 단체거주의 틀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거주시설 지역사회 전환 컨설팅(아래 컨설팅)’을 시범사업으로 탈시설로드맵을 수정 보완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컨설팅은 3년에 걸쳐 지역사회 전환 의지가 있는 거주시설 네 곳의 기능을 전환하고, 거주인의 탈시설을 지원하며 종사자의 고용 승계를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컨설팅 공고에 따르면 ‘향후 거주시설 전환 추진 모델 개발’을 도모한다. 

이처럼 탈시설로드맵과 정부 입장을 종합하면 시설 소규모화 방향은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탈시설로드맵은 장애인의 삶의 변화보다 (시설) 서비스 공급자 중심으로 짜여 있다. 공급자에게 정책 변화에 따른 퇴로를 마련해주기 위한 로드맵이다”라며 “소규모 시설도 3~4명의 장애인이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그룹 서비스를 받게 되고, 이러한 서비스의 선택과 변경에서 장애인 당사자는 배제된다. 정작 장애인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은 2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로드맵 수립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했다. 손피켓에는 “거주시설 개편은 탈시설이 아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로드맵 수립하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라는 문구가 써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난해 7월 장애운동 활동가들이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로드맵 수립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했다. 손피켓에는 “거주시설 개편은 탈시설이 아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탈시설로드맵 수립하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라는 문구가 써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이어서) ②작은 시설도 결국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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