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이동조차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의 현실
장애계, 월 1회 ‘수도권 이동 보장’ 요구하며 지하철 선전전 예고
휠체어 탑승 불가능한 시외·고속버스, 제한적 장콜 운행으로 발 묶인 장애인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정부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해야
“어머니가 경기도 안성에 사는데 이번 설날에도 차가 없어서 가지 못했습니다. 만약 장애인콜택시가 서울에서 안성까지 간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갈 수 있는데… 비장애인은 기차, 고속버스 타고 다른 지역 다닙니다. 장애인도 저상버스 타고 지방까지 편하고 저렴하게 이동하고 싶습니다.” (서기현 서울장차연 공동대표)
장애인은 수도권 이동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22일 오후,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에 사는 장애인들이 수도권을 잇는 대규모 지하철 선전 캠페인을 진행한 이유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경기장차연),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오후 2시부터 수도권 전역에서 지하철을 타며 기획재정부에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했다.
경기도 수원에서부터 지하철을 타고 세 시간에 걸쳐 서울시청역에 도착한 백여 명의 장애인 활동가들은 오후 5시 20분, 시청역 환승 통로에서 ‘지하철 캠페인 수도권 행동’을 선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지난해 12월 31일, 장애계의 오랜 투쟁으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개정됐다. 법 개정으로 올해 1월 18일부터 대·폐차되는 시내버스는 저상버스로 반드시 도입해야 하며, 도지사는 특별교통수단의 시·군간 원활한 환승·연계를 위해 광역이동지원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광역이동지원센터 운영비에 대해 ‘국가가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국가 책임이 불분명하다. 애초에 ‘하여야 한다’로 되어 있던 원안이 ‘할 수 있다’로 수정된 데에는 돈줄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 이 때문에 장애계는 54일째(22일 기준) 혜화역 승강장에서 기획재정부를 규탄하는 아침 선전전을 진행 중이다.
이날 경기장차연은 수원역에서부터 서울시청역까지, 서울장차연은 시청역에서 시작해 2·5호선을 돌며 지하철 연착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하면서 함께 살고 싶다”고 외쳤다.
이 중에서도 가장 힘주어 외친 부분은 ‘장벽 없는 수도권 이동 보장’이다. 특별교통수단과 관련해 서울장차연 등은 2023년부터 특별교통수단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전역 확대 운행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 특별교통수단은 평균 한두 시간 걸리는 긴 대기시간도 문제지만 서울시 관내와 인접한 경기도 12개 시, 인천국제공항까지만 운행하고 있다. 그 외의 수도권 지역은 운행하지 않는다.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시외·고속버스도 없어서 이동을 포기하거나, 여러번에 걸쳐 특별교통수단을 갈아타는 수밖에 없다.
31개 시·군으로 쪼개져 있는 경기도의 상황은 더 끔찍하다. 현재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운영은 통일된 운영기준안 없이 각 지자체에 맡겨져 있어 운행시간과 운행지역, 요금이 제각각이다.
정기열 경기장차연 공동대표는 경기도 이천에 산다. 이천시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주일 전에 특별교통수단을 예약해야 한다. 예약 없이 즉시콜로 나갈 수 있는 차는 단 한 대뿐이나 이마저도 장애인단체 방문, 병원 진료 등으로 운행을 제한한다.
정 대표는 “이천시 특별교통수단은 24대인데 운전사도 24명이어서 동일 시간에 많은 대수가 다니지 못한다. 24시간 운행도 안 하고 야간에는 한 대만 운행한다”고 전했다.
정 대표에 따르면 올해 경기도는 광역이동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운영을 준비 중이다. 경기도는 운영비의 20%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에 떠넘겼다. 정 대표는 “만약 중앙정부에서 운영비 50%를 지원한다면 장애인도 경기도 31개 시·군 중 가지 못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중앙정부에 책임 있는 예산을 요구하며 한 달에 한 번 지하철을 타자. 이동권에서만큼은 차별 없는 경기도 만들어 보자”고 외쳤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서울에서 특별교통수단 타고 인천뿐만 아니라 경기도 포천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포천에서 내려 인천도 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전 지역을 잇는 투쟁을 하자”면서 “수도권 전역에서 통일된 요금을 적용하고 즉시콜 운행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보조금법 시행령 별표 1, 2를 개정하여 기획재정부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국비로 지원하도록 하면 가능하다. 운영비는 서울은 5:5, 지방은 3:7(정부가 7) 비율로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이들은 오전 8시 혜화역 선전전과 함께 오전 7시 30분에는 대선 후보들에게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약속을 요구하는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진행 중이다. 그 결과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21일 방영된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언급했으며, 오는 23일에는 서울역에서 있을 장애인 이동권 투쟁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박 이사장은 “모든 대선 후보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예산 보장을 요구해서 기획재정부가 중앙정부 예산을 보장할 구체적 방법을 만들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강도 높은 투쟁을 이어갈 것을 예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