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도,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도 예산에 가로막혀
지자체 의지에 맡기는 기재부·복지부 등 정부 규탄
특별교통수단 국비지원, 성심재활원 탈시설 지원 등 요구
1호선 수원역에서 서울역까지 2시간 지하철 타기 투쟁
경기도 장애인들이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타기 투쟁을 진행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경기장차연) 등 장애운동단체는 22일 오후 2시, 1호선 수원역 2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국비 지원 △오산시 성심재활원 거주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지원 등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는 1호선 청량리 급행열차를 천천히 타고 내리며 2시간 동안 이동해 서울시청역에 도착했다.
- 기재부에 가로막힌 이동권… 수원·금정·안양역 21분간 정차
경기도 장애인 이동권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현재 경기도 시내버스에 도입된 저상버스는 약 14%뿐이다. 마을버스는 한 대도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경기도지사였을 때 저상버스 도입률 40%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도 심각하다. 한국인권진흥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경기도내 31개 지방자치단체의 특별교통수단 운영기준은 모두 달랐다. 이용요금, 운영시간, 홈페이지 운영 여부 등이 천차만별이었다. 24시간 운영하는 곳은 14곳, 4륜 장애인 스쿠터가 탑승 가능한 차를 운영하는 곳은 24곳이었다.
이렇다 보니 경기도 안에서 이동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소요된다. 이영봉 포천나눔의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화성시에서 포천시에 가려면 장애인콜택시를 4번 갈아타야 한다. 8시간이 걸린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이 정도까진 안 걸릴 것이다. 이 얘기를 21년간 했다. 21년간 개선된 게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영봉 소장이 말한 ‘21년’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 기간을 의미한다. 지난 2001년, 경기도 시흥시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사망했다. 그 사고를 시작으로 장애인은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21년간 외쳐왔다.
21년간의 투쟁 끝에 지난해 12월 31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정부가 (광역)이동지원센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센터 운영에 국비를 투입해, 특별교통수단의 지역 간 차이를 없앤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예산이 과도하게 든다는 이유로 국비 지원에 반대했다. 결국 법안은 정부가 국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통과됐다. 국비로 운영비를 지원하지 않으면 특별교통수단 운영은 다시 각 지자체 의지에 맡겨진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기획재정부를 규탄하고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장차연은 전장연의 기재부 규탄 투쟁에 연대를 표하며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국비 지원 △운행지역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 △경기도 지역 간 이용 차이 철폐 △즉시콜 및 24시간 운행 △이용등록·접수를 (광역)이동지원센터에서 일원화 할 것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 같은 요구를 외치며 지하철 타기 선전전을 진행했다. 경기장차연은 1호선 수원역에서 오후 2시 35분부터 21분간 열차를 점거했다. 경기장차연이 점거한 열차는 청량리행 급행열차다. 수원역에서 시청역까지 이동할 경우 약 20분이 단축될 만큼 빠른 열차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수원·금정·안양역에서 각각 21분간 열차를 멈춰 세우고 선전전을 이어갔다.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보장 시위로 인해 우리 열차 언제 출발할지 모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성난 시민은 “와, 말로만 듣던 장애인 시위다. 쓰레기들이다”, “내가 니네 이동 못하게 한 건 아니잖아. 왜 나를 인질로 잡고 뭐라 그래”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정기열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21년간 들어온 말들이다. 이렇게 싸워 왔는데 앞으로 더 못 싸우겠나. 장애인권리예산이 완전히 쟁취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도 지자체 의지에 맡긴 정부
경기장차연은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도 지자체 의지에 맡긴 정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 때문에 경기도가 수립한 탈시설 예산 7억 5천만 원이 불용처리 되는 일이 있었다.
지난 2020년, 경기도는 오산시 장애인거주시설 성심재활원의 탈시설 예산을 수립했다. 성심재활원은 장애인 학대로 인해 시설폐쇄 행정명령이 내려진 곳이다. 이에 경기도는 성심재활원에 거주하는 장애인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주거비 7억 5천만 원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 예산이 날아갔다. 기초지자체인 오산시는 장애인 자립지원에 필요한 인건비, 운영비 등 예산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자립지원 계획이 수립되지 못 한 채로 경기도가 마련한 7억 5천만 원은 불용처리 됐다.
이 같은 사례가 있지만 정부는 안일하다. 지난달 24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시범사업에 따르면 시범사업에 드는 예산 비율은 국비와 지방비 5:5다. 오산시처럼 예산이 부족한 기초지자체는 시범사업에 참여하기 어렵다.
경기장차연은 이를 규탄하며 정부에 △성심재활원 거주장애인 개별 특성에 맞는 지원과 그에 따른 예산 수립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기반한 시범사업 실시 △성심재활원 등 인권침해 시설 우선 지원 등을 요구했다.
권달주 경기장차연 상임공동대표는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에서 성심재활원 거주장애인을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자립지원 예산을 수립하라.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지 않으면 탈시설 과정에서 장애, 연령, 지역 등에 따라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리야 경기장차연 집행위원장은 “이재명 대선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에 선포한 탈시설 자립생활 권리선언문은 아무 효력이 없는 상태다. 성심재활원을 올해 안에 폐쇄하고 거주장애인을 위한 지원주택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 경기도가 지원체계를 수립하고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기장차연은 오후 3시경 수원역에서 출발해 오후 5시경 서울역에 도착했다. 같은 시각 서울에서 지하철 타기 투쟁을 진행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과 만나 오후 5시 20분경 시청역에서 마무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