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웃, 친척 등의 지원으로 불길 피한 장애인들
“아무도 안 왔으면 죽었을 것”
장애인 대피 지원 매뉴얼 전혀 없어
대피소 가도 문제, 다양한 장애유형 지원 전무

울진 산불 대피소로 쓰이고 있는 울진국민체육센터. 센터 앞은 자원봉사자, 구호물품, 취재진 차량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진 하민지
울진 산불 대피소로 쓰이고 있는 울진국민체육센터. 센터 앞은 자원봉사자, 구호물품, 취재진 차량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진 하민지

8일 오후 12시, 경북 울진종합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만난 건 뿌연 하늘이었다. 미세먼지가 가득 낀 것 같았다. 산불을 진압하는 헬기가 연신 날아다녔다.

울진군 내 가장 큰 대피소인 울진국민체육센터 앞은 대기업이 보낸 구호물품과 자원봉사자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모두가 친절했다. 누구에게나 식사했냐고 물어보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눠줬다.

건물은 크고 깨끗했다. 2018년 1월에 준공식을 했으니 지어진 지 4년밖에 안 됐다. 경사로, 승강기, 장애인 화장실과 샤워실 등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성이 잘 갖춰져 있었다. 여분의 휠체어를 준비해 놓고 원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대여하기도 했다. 대피소 내에는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노란색 텐트(재난구호쉘터) 수십 개가 있었다.

울진군민 4만 7천여 명 중 장애인구는 약 4200명으로 8.9%가량 된다. 우리나라 등록장애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5% 임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즉, 울진군 10명 중 1명은 장애인이라는 뜻인데, 육안으로는 대피소 내 장애인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현장에 있던 울진군청 직원은 “이재민 중 장애인 수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당장은 파악할 여력이 없다. 휠체어 타고 다니는 분은 계시는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재난구호쉘터 앞에 휠체어 하나가 놓여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쓰고 있던 휠체어다. 대피소는 휠체어를 무료로 대여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재난구호쉘터 앞에 휠체어 하나가 놓여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쓰고 있던 휠체어다. 대피소는 휠체어를 무료로 대여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그러던 중 대피소 출입문 밖에서 중증뇌병변장애인 전종두 씨(57세)를 만났다. 재난 ‘극복’을 위해 ‘파이팅 넘치는’ 대기업을 비롯한 외부인들의 분위기에 밀려나기라도 한 듯, 그는 그 안에 좀처럼 섞이기 힘들어했다. 다른 이재민처럼 그에게도 불과 며칠 전 겪은 죽음의 공포가 생생했다.

“저런 거(쌓여 있는 생수) 백날 줘 봐야 뭐 해요. 죽을 뻔했는데. 불이 집 뒤로 뻘겋게 오는데 도망을 못 가고 있었어. 왼쪽 다리가 힘을 못 쓰니까 누가 부축 안 해 주면 못 일어나요. 동네 친척 어른들이 ‘야! 도망가자! 지금 피하자!’ 이러는데, 죽기 살기로 집 앞까지는 이 악물고 나가도 그 이상은 도망 못 가지. 결정적으로는 활동지원사가 나를 구하러 와서 차 타고 여기(대피소)에 왔어요.”

울진군 북면 고목1리에 사는 전 씨는 동네 친척 어른과 활동지원사가 없었다면 말 그대로 죽을 뻔했다. 다른 장애인은 어디로 어떻게 갔을까. 이를 알려준 건 대피소 밖 울진군민들이었다. 대피소 안에서는 장애인 이재민들이 무사한지, 어떤 지원을 받고 있는지 거의 확인할 수 없었다.

- 이웃 덕에 목숨 구한 장애인들, 안전안내문자는 있으나 마나

전 씨처럼 가까운 사람의 지원을 받아 대피한 장애인을 대피소 밖에서 만날 수 있었다.

울진읍에 사는 지적장애인 ㄱ 씨(61세)는 지적장애인 두 딸과 함께 셋이서 살고 있다. 그는 “무서웠다. 연기가 나고. 시커멓게”라며 불이 덮쳐오던 상황을 기억했다. 대피해야 했지만 TV, 안전안내문자 어디서도 장애인 지원 안내를 받을 수 없었다. ㄱ 씨를 만난 곳은 대피소 근처 길거리였지만 ㄱ 씨는 대피소 위치를 알지 못했다.

ㄱ 씨와 두 딸은 ㄱ 씨의 시숙 덕분에 대피할 수 있었다. 비장애인인 시숙이 ㄱ 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망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ㄱ 씨네 가족은 걸어서 시숙의 집으로 대피해 화를 면했다.

황두레 울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받은 안전 안내 문자. 장애인 지원 관련 내용은 전혀 없다. 사진 제공 황두레
황두레 울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받은 안전 안내 문자. 장애인 지원 관련 내용은 전혀 없다. 사진 제공 황두레

중증뇌병변장애인 황두레 울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30세)은 교회 집사의 지원으로 대피했다. 울진읍 대나리항길에 사는 황두레 소장은 지난 5일 토요일, 집에 혼자 있었다. 혼자서는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할 수 없지만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월 210시간)이 부족해 주말에는 활동지원사가 출근하지 않는다.

황 소장은 “대피하라는 문자는 왔는데 불길이나 연기가 안 보이고, 어차피 혼자 움직일 수 없어서 ‘괜찮겠지, 별일 있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산불이 심해진 줄은 인식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교회 집사님이 오셔서 나를 차에 태워 할머니 댁으로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황 소장이 캡처해서 보내준 안전안내문자에 장애인 지원 관련 내용은 없다. 황 소장은 “혼자 있는데 어떻게 대피하라는 건지 안내가 없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데 차와 사람을 보내준다는 게 아니라서…”라며 안전안내문자에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안내가 되지 않으니 장애인 당사자는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를 먼저 찾는다.

장애인 ㄴ 씨는 불길이 점점 덮쳐오는 상황에서 어디에 전화해야 할지 몰라 울진에서 먼 거리에 있는 장애인권단체에 전화했다. 단체 관계자 ㄷ 씨는 “먼 거리라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일단 마을 사람들 따라가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 아무 지원이 안 되니 참…”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ㄹ 씨도 같은 단체에 전화했다. 그는 걷지 못한다. 같이 사는 부모님은 80~90대로 거동이 어려운 상태다. 대피하라는 안전안내문자를 받아도 온 가족이 이동할 수 없다. 단체 관계자 ㄷ 씨는 “ㄹ 씨가 ‘누구도 와서 지원하지 않는다.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119 불러서 (소방차를) 타고 가라는 안내밖에 해 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 만약 인적 자원과 운 없었다면 “죽었지”… 제도는 없다

다른 장애인 이재민 대피 현황은 울진군 내 장애인을 지원하는 여러 민간단체가 파악하고 있었다. 울진군민이기도 한 민간단체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이웃’, ‘동네 이장님’을 언급했다. 이들이 마을의 인적 네트워크를 잘 구성하고 있어서 장애인이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 집은 다 확인했는데요, 아직 피해 입은 분은 없습니다. 동네 이장님들이 마을에 누가 사는지 잘 알아서 화재 초기에 장애인들을 대피시켰어요.” (이대형 울진장애인부모회 회장)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을 이웃들이 많이 지원했어요. 이장님과 부녀회장님이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어떤 장애가 있는지 다 알거든요. 비상시에 노약자, 장애인 먼저 챙겨오셨어요.”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울진군지회 관계자)

“가가호호 전화 돌리고 현장 돌아봤더니, 다행히 다들 괜찮으시더라고요. 집에 혼자 계셨던 분은 이장님 통해서 대피했어요. 이장님 같은 분들이 지원하지 않으면 시각장애인은 불이 난지 어떻게 알겠어요. 대처가 안 되지. 평소에 숟가락 몇 개인지까지 다 아시죠.” (경북시각장애인연합회 울진지회 관계자)

울진 북면 박금소야로에 사는 지체장애인 ㅁ 씨의 집은 이웃 없이 산 밑자락 외딴곳에 있다. 그는 집 앞에 온 119 소방차를 우연히 얻어 타고 대피할 수 있었다. 대피 후 다시 가보니 ㅁ 씨 집은 전소되어 있었다. 사진 경북지체장애인협회 울진군지회 제공 
울진 북면 박금소야로에 사는 지체장애인 ㅁ 씨의 집은 이웃 없이 산 밑자락 외딴곳에 있다. 그는 집 앞에 온 119 소방차를 우연히 얻어 타고 대피할 수 있었다. 대피 후 다시 가보니 ㅁ 씨 집은 전소되어 있었다. 사진 제공 경북지체장애인협회 울진군지회 

반면 산 밑자락 외딴곳에 이웃 없이 단독으로 거주하는 장애인의 경우 우연한 기회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북면 박금소야로에 사는 지체장애인(기존 5급) ㅁ 씨(60대)는 마침 집 앞을 지나가던 119 소방차에 지원을 요청해 화를 피했다.

“대피 당시에 나 혼자 집에 있었는데 마침 (이장님) 방송이 나오더라고요. 대피하라 하더라고요. 내가 몸이 불편해서 혼자 못 갑니다. 여기가 엄청 시골이라 이웃도 없고요. 근데 마침 119 소방관이 소방차를 타고 와서 물을 막 뿌리더라고요. ‘아이고, 우리 집에도 물 좀 뿌려 주이소’ 하니까, 지금 물 뿌릴 새가 있느냐 하면서, (소방관이) 나를 막 (소방)차에 밀어올리고 그래서 119 차 타고 사위 집으로 대피했어요.”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모두 무사하다. 이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건 마을 내 인적 자원과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울진에서 만난 장애인들에게 ‘만약’을 물었다. “만약 아무도 대피하라고 알려주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장애인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죽었지.”

울진군 장애인들이 대피 시 생사의 기로에서 ‘생’으로 가는 동안 울진군이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아래 중대본)의 지원을 받았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제도의 빈틈을 인적 자원과 우연이 메우고 있었다.

울진국민체육센터 내에  재난구호쉘터 수십 개가 놓여 있다. 사진 이슬하
울진국민체육센터 내에 재난구호쉘터 수십 개가 놓여 있다. 사진 이슬하

- 장애인은 대피소에 갈 수 있을까

발달장애인 딸(26세)이 있는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중증중복장애인위원회 위원장은 죽변면 후정3리에 산다. 그 역시 5일 토요일 밤에 대피를 위해 짐을 싸뒀다가 불길이 후정2리까지만 닿아서 현재 집에 머물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다행히 산불 피해를 면했지만, 만약 대피 상황이 온다면 발달장애인 딸과 함께 잘 대피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지자체에서 대피소 이동을 위한 차량 지원을 확인하고, 이후에는 장애인이 잘 피신했는지, 어느 대피소에 갔는지 등을 파악하는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피소에 가도 문제다. 김 위원장의 딸은 뇌병변장애 1급, 지적장애 1급의 중증중복장애인으로 간질 지속 상태의 희귀난치병이 있는 와상장애인이다. 그는 “대피소에서 투석이 필요한 신장장애인을 비롯해 우리 딸처럼 자주 경기를 일으키고 특수분유, 호스가 필요한 사람은 지원이 어렵다”면서 “매뉴얼이 없어 현재는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딸은 병원까지 이동하기 어렵고 부작용도 염려돼서 아직 백신 접종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대피소 내 감염도 무시할 수 없으니 이들에게 대피소는 있어도 갈 수 없는 공간이다.

대피소에서 배제된 사람은 김 위원장의 딸만이 아니었다. 8일 기준, 울진국민체육센터에는 휠체어 이용자 접근 외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 농인을 위한 수어통역,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의사소통 등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에 관해 지자체에 문의하니 기존 제도를 이용하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영 울진군 사회복지과 주무관은 “수어통역 요청은 아직 없다. 시골이라 인구도 적고 정식 수어 쓰는 분이 많이 없다. 발달장애인은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울진군에서 활동지원서비스를 긴급하게 추가 신청하실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자체 상황 파악을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한영 주무관은 “재난 상황 시 (군청에) 연락 주시면 민간단체 통해서 이동지원을 할 순 있다. 그런데 그런 사례는 없었다. 군청이 도와드리지 않으면 한 걸음도 못 걷는 분은 없다”며 당사자 증언과는 다른 말을 했기 때문이다.

울진국민체육센터 출입문 앞. ‘이재민 대피소’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울진국민체육센터 출입문 앞. ‘이재민 대피소’라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반복된 재난에도 현장 대응 매뉴얼 여전히 없어

현재 장애인 재난 대응 매뉴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매뉴얼, 연구보고서 등을 발간해 배포한다. 정부는 2017년 9월 ‘장애인 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2019년 11월 ‘장애유형을 고려한 재난대응 매뉴얼’을 발표했다.

그러나 내용의 구체성이 부족해 현장에선 적용이 안 되고 있었다. 다양한 장애유형을 포괄하는 세세한 지원 내용도 없다. 이민규 중대본 재난대응정책과 사무관은 “대피명령 세부지침이 있긴 한데, 장애유형에 따른 상세한 내용은 없다. 노약자나 어린이가 몇 명 있는지 파악하라는 정도의 간단한 내용만 있다”고 대답했다.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2019년 강원도 속초·고성 산불, 그리고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까지.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재난의 발생 주기는 더욱 짧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장애계는 현장 적용이 가능한 ‘장애인 재난 대응 매뉴얼’을 촘촘히 구축할 것을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수차례 요구해왔으나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의 재난 피해자,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65명을 인터뷰해 연구논문을 쓴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활동가는 “2019년 강원도 산불 때와 똑같다. 그때도 이웃이 취약계층을 구하러 갔다. 몇 년째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데 해결되는 건 없고 사례만 자꾸 쌓인다”고 갑갑해 했다.

박은선 활동가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재난 취약계층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지적했다. 장애인은 평소 이동권을 비롯해 삶에서 많은 제약을 경험하니 재난상황에서도 대피소라는 낯선 공간으로 가는 것 자체를 대피방안으로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활동가는 “평소에도 장애인이 아무 공간이나 편히 이동할 수 있었다면 ‘내가 대피소에 가도 안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안 할 것이다. 평소에도 안 가던 공간이니 재난상황에서 갈 생각을 하긴 더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정부 매뉴얼과 관련해 박 활동가는 “새로운 매뉴얼을 만드는 건 그만하고, 기존 매뉴얼과 교육자료부터 잘 써야 한다. 재난현장에서 매뉴얼이 작동될 수 있도록 지자체장이 콘트롤타워가 돼야 하고, 공무원들이 평소에 교육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재난상황에서 바로 적용될 수 있다. 매뉴얼이 있어도 무용지물인 현 상황은 행정안전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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