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2·3차 한국 심의 ③
재난 늘어가는데 장애인 대응 시스템은 부재
코로나19, 장애인 방치됐지만 정부는 “세계적으로 빠르게 대처”
[편집자 주] 지난달 24일과 25일, 한국 정부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로부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심의를 받았다. 협약은 국제인권조약으로, 장애인이 보장받아야 할 주요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08년에 협약을 비준했으며, 헌법에 따라 이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진다. 한국 정부에 대한 심의는 2014년 이후 두 번째다. 장애계는 5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협약 한국 정부 심의 대응 장애계 연대(아래 장애계연대)’를 꾸려 정부의 이행 상황을 감시해왔다. 비마이너는 이틀간 진행된 현장 심의 속기록을 입수해 다섯 차례에 걸쳐 이를 보도한다.
③ 유엔 “코로나19 장애인 사망률 왜 높나” 정부 “한국 특성상…”
- 재난 시 장애인 대응 시스템 부재
장애인의 재난위험을 줄일 수 있는 계획을 묻는 단라미 바슈라 위원의 질의에도 정부는 자찬하기만 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장애인을 포괄하는 재난 대응 구축에 초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 중”이라면서 “구체적으로 장애인이 안전사고 인지와 대응이 쉽도록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재난 정도 대피 유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답변은 실제 재난 속에서 장애인이 겪었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2017년 경주 지진, 2018년 포항 지진, 2019년 고성 산불에 이어 올해 3월에는 울진 산불이 있었으며, 8월에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두 가구가 침수로 사망했다. 기후위기로 재난의 주기는 점차 짧아지고 있는데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으니 현장에서는 매번 동일한 지적이 반복된다.
재난 상황을 인지하고 대피하는 과정에서부터 장애인을 포괄한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은 부재하다. 올해 발생한 울진 산불의 경우, 장애인은 마을 이웃과 지인 등의 도움으로 대피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공적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 주장처럼 장애유형을 고려한 재난대응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구체성이 부족해 현장에선 적용되지 않고 있다.
- 코로나19, 시설과 집 안에서 방치된 장애인
한국의 코로나19 첫 사망자는 장애인이다. 2020년 2월,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입원한 정신장애인 104명 중 102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으며 이 중 7명이 사망했다. 이후에도 라파엘의집, 신아재활원, 성락원 등 여러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잇따랐다. 지난해 2월 기준, 코로나19 사망자 중 52.3%가 집단거주시설에서 사망했다.
정부 정책은 집단거주시설을 통째로 폐쇄하는 ‘코호트격리’였다. 장애계는 거주인을 시설 밖으로 분산조치한 후,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긴급 탈시설’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외면했다.
지역사회에 사는 장애인도 건강권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활동지원사 없이 집 안에 방치돼야 했다. 선별진료소나 병원에 장애인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코로나19 검사를 받지도, 백신을 맞지도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장애인의 코로나19 사망률은 비장애인의 6배다.
위원회에서도 이에 관한 질의가 있었다. 게렐 돈도브드로이 위원은 “코로나19 기간에 장애인이 가장 큰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치명률, 감염률 또한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높다. 그뿐만 아니라 장애인거주시설의 높은 감염률이 문제가 됐다. 한국 정부는 이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했나”라고 물었다.
염민섭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은 “전 세계 중에서도 대한민국 정부는 굉장히 빠르게 코로나19에 대응했다. 장애인대책팀을 구성해 코로나19 초기부터 대응했다.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돌봄 공백을 완화하기 위해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립재활원에 장애인전담병상을 운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정부는 장애계의 질긴 요구 끝에 2020년 6월에야 장애인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고, 이조차도 예산 확보 계획 등 구체성이 떨어져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뒤늦게서야 장애인 자가격리자, 확진자 등에게 24시간 활동지원을 제공한다고 했으나, 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이 민간에서 알아서 구해야 했다. 장애계는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공공에서 지원해줄 것을 줄곧 요구했지만 현재도 이러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국립재활원 장애인전담병상 또한 코로나 발생 11개월 후인 2021년 1월에야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조차도 의료 인력 부족으로 중간에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안정적이지 못 했다.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장애인은 여전히 각자도생하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 사망률이 높은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염 국장은 “한국 장애인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 장애인 절반 이상이 기저질환을 가진 노인이다. 기저질환, 심장질환 있는 사람의 사망률이 높다”면서 코로나19 장애인 대책에서 국가 책임은 삭제했다. 집단거주시설의 코호트격리 조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