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억 6200만 원 편성해 중증장애인 40명 고용
이재수 시장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춘천시 만들겠다”
“조금 불편할 뿐이지 우리 또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앞으로 각자 개성을 가진 우리의 모습을 연극 활동을 통해 여러분께 멋지고 재밌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권리중심일자리 노동자 김유진 씨)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전국 최초로 춘천시에서 ‘춘천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일자리)’가 시행된다. 춘천시는 올해 전액 시비로 4억 62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해 권리중심일자리에 44명을 채용했다(중증장애인 40명, 관리인력 4명).
18일 오후 3시, 춘천시청 앞 광장에서는 권리중심일자리 사업 발대식이 열렸다. 이날 발대식에는 올해 권리중심일자리에 참여하는 장애인 노동자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장애인 활동가 100여 명이 참여했다. 앞서 이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함께 행복한 춘천을 만들어요”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함께 지켜주세요” 등 각자 준비해온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서 춘천역에서 춘천시청까지 행진했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이들은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힘차게 외치며 발대식의 시작을 알렸다.
권리중심일자리는 노동 시장에서 배제된 최중증장애인들이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식개선교육에 참여하여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을 홍보함으로써 협약에 근거한 장애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노동이다.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공무원, 국회의원, 언론, 일반대중을 상대로 협약의 내용과 목적을 공론화하여 교육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국가와 지자체가 인권의 담지자로서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인식 제고 캠페인을 벌일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따라서 이들의 노동은 바로 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는 게 된다.
김용섭 강원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중증장애인은 비경제활동인구로 살아가고 있으며, 최저임금 적용에서도 제외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권리중심일자리로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시장경제 중심의 재활일자리를 지역사회 변화가 목적인 권리중심일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권리중심일자리로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받던 장애인은 권리보장의 주체가 될 것이다. 장애인의 노동으로 춘천시가 ‘장애인이 살만한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면서 “올해 강원도에도 권리중심일자리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대식에 참여한 이재수 춘천시장은 “전국이 다 하는 줄 알았는데 기초자치단체로는 춘천시가 처음이라고 해서 놀랐다”면서 “춘천시가 장애인이 살만한 조건이 아직 안 되어 있다. 가는 곳마다 턱이 있어서 시장으로서 그게 가장 부끄럽고 민망했다”고 전했다.
이 시장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도시를 위해 하나씩 준비 중이다. 그중 하나가 장애인 일자리”라면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경제적 성과를 내는 것만을 생각하나 그러한 ‘일’에 대한 개념은 백 년도 채 안 된 세월 속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면서 자본주의 노동 개념을 비판했다.
춘천시는 2020년 9월부터 ‘장애 인지적 정책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정책 수립 시, 장애인을 고려하였는지를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의무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이 시장은 해당 조례를 언급하면서 “춘천시는 시에서 하는 모든 사업에는 ‘장애인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정책을 만들고 있다”면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나눔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박경석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회장은 “장애인의 노동으로 춘천시를 변화시키자”고 말했다. 박 회장은 “비누공장에서 비누를 만들듯 우리는 권리중심일자리 노동자로서 권리를 만든다. 우리가 만드는 생산품이 권리다”면서 “그러나 ‘왜 작업속도가 그렇게 늦냐’는 말을 들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노래 부르고 싶으면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싶으면 춤을,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림을 그려서 오늘처럼 캠페인 하는 날 보여주면 된다. 단 거기에 ‘이것도 노동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하라’는 말 딱 한 마디만 써달라. 여러분이 쓴 그 말로 춘천시가 변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권리중심일자리에서 일하는 중증장애인은 그 어떤 곳보다 의미있게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오늘 시작한 40개의 일자리가 400개가 되고 4000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일자리가 춘천시를 변화시킬 것”이라면서 “이제까지 이런 일자리는 없었다. 이 일자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