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의원 무릎 꿇고 사과 “모든 건 정치권 책임”
전장연 “이준석이 사과하라”
시민사회단체 “서울 시민으로서 연대할 것”
이준석 “김예지 개인 행동… 지하철 시위는 문명사회서 수용 안 돼”
인수위, 전장연과 면담 의사 밝혀

김예지 의원이 장애인 활동가들 한가운데에서 무릎 꿇고 있다. 안내견 조이는 엎드려 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뜯고 있다. 사진 이슬하
김예지 의원이 장애인 활동가들 한가운데에서 무릎 꿇고 있다. 안내견 조이는 엎드려 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뜯고 있다. 사진 이슬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비난한 이후 시위 현장은 정치인의 사과와 시민사회단체 연대의 장이 됐다. 같은 당 김예지 국회의원은 죄송하다며 무릎을 꿇었고, 장애인 시위에 동참한 시민은 “이준석 대표는 국민 앞에 사과하라”라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25일부터 4일간,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비하하는 글 10개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달아 올렸다. “장애인 시위는 서울 시민을 볼모 잡는 부조리다”, “서울경찰청, 서울교통공사 등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 “소수자 정치는 성역을 만들고 모순은 언더도그마(강자는 악하고 약자는 선하다는 인식)로 묻어버린다”, “한 번만 더 시위하면 내가 가서 제지하겠다”, “조건 걸지 말고 시위를 중단하라” 등의 발언을 해 ‘장애인 혐오를 조장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시민을 갈라치기 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8일 오전 8시, 3호선 경복궁역에서 25차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진행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아래 인수위)는 조건없이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고 국민의힘은 ‘장애인권리민생4대법안’을 통과시켜라”라고 요구했다.

많은 시민이 손피켓을 제작해 장애인 지하철 시위 현장에 연대방문했다. 피켓에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 왜곡, 혐오 이준석 대표 발언 규탄합니다’, ‘대학생들은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 지지합니다’, ‘인수위는 장애인권리예산 반영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많은 시민이 손피켓을 제작해 장애인 지하철 시위 현장에 연대방문했다. 피켓에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 왜곡, 혐오 이준석 대표 발언 규탄합니다’, ‘대학생들은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 지지합니다’, ‘인수위는 장애인권리예산 반영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 김예지 의원 무릎 꿇고 사과 “모든 건 정치권 책임”

김예지 의원은 안내견 조이와 함께 시위에 참석했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왔지만 저는 시각장애인 당사자다. 그래서 이 자리에 함께하는 마음이 더 무겁다. 우선 많은 분의 혐오와 눈초리를 감수하며 장애인을 대변하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또한 누군가가 사망하시거나 중상을 당하셔야 언론이 주목하고, 언론이 주목해야 정치권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준석 대표의 발언을 거듭 사과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안내견 조이가 함께 엎드렸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이며 탄식을 하기도 했다.

무릎을 꿇은 김 의원은 “저는 인수위원장도 아니고 당 대표도 아니다. 그렇지만 사과드리고 싶다. (이준석 대표가) 여러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 하고 공감하지 못 해 죄송하고, 적절하지 못 한 단어 사용으로 여러분과 마음을 나누지 못 한 것에 대해 정치권을 대신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출근길 불편함을 겪고 계신 많은 국민이 있다. 그들 또한 우리 국민이다. 정치권에서 (장애인권리보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해 많은 분이 같이 감당하고 있다. 저를 포함해 여야를 막론한 여러 정치인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갈등을 조율하기보다는 조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예지 의원은 “말로만 ‘국민의힘’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힘이 되고자, 사회통합을 이루고자 이 자리에 왔다. 장애인 당사자이자 국회의원으로서 말씀드린다. 인수위에 여러분의 요구를 전달하고, (인수위가 수용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설득하겠다”며 “장애인이 편해야 모두가 편해진다. 같이 사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제 자리에서 노력하겠다. 앞으로도 경청하고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줄지어 지하철에 타는 휠체어 이용자들. 수많은 취재진이 촬영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줄지어 지하철에 타는 휠체어 이용자들. 수많은 취재진이 촬영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지난 24일 출근길 시위에 참석했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날도 참석했다. 장 의원은 “시민이 한국 정치에 바라는 점을 김예지 의원이 잘 보여줬다. 모든 게 정치권 책임이라는 김 의원 말씀에 격하게 공감한다. 정치가 장애인권리를 진작에 보장하고 예산을 뒷받침 했더라면 장애인은 이미 등교하고 출근해서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정치권의 책임 방기를 지적하기 위해 시민이 몸소 나서는 건 한국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차기 여당 대표가 되실 분께서 시위를 계속 모욕하고 폄하하는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많이 바쁘겠지만 정치가 필요한 이 자리에 꼭 와야 한다. 공식적으로 시위현장에 와서 책임 있게 면담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예산을 보장하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 장애인 활동가들 “이준석, 사과하고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장애인 활동가들은 이준석 대표의 책임을 거듭 요청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탄식하며 “사과는 이준석 대표가 해야 한다. 왜 김예지 의원이 무릎을 꿇어야 하나. 김 의원 말씀대로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이준석 대표는 사과를 먼저 하고, 장애인권리보장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석 대표는 27일 일요일 오후, 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다음날 있을 지하철 시위를 겨낭해 “(장애인이) 순환선 2호선은 후폭풍이 두려워서 못 건드리고 3호선, 4호선 위주”로 시위를 한다고 주장하며 “결국 불편을 주고자 하는 대상은 서민 주거지역”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장애인과 ‘서민’을 갈라치기 하며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를 비판하며 “이준석 대표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3호선 경복궁역은 인수위 근처 지하철역이다. 4호선 혜화역은 1999년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리프트 추락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던 곳이자 21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촉발된 상징적 장소다. 그래서 3·4호선에서 자주 시위하고 있다”며 “‘2호선은 감히 못 탄다’고 말했는데 그 또한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장연은 설 연휴가 끝난 새해 첫날인 2월 3일과 2월 22일에 2호선에서 지하철 시위를 진행한 바 있다.

경복궁역에서 열차에 탄 장애인 활동가들. 비장애인 승객으로 꽉 찬 만원 열차에 탑승했다. 사진 이슬하
경복궁역에서 열차에 탄 장애인 활동가들. 비장애인 승객으로 꽉 찬 만원 열차에 탑승했다. 사진 이슬하

- 이준석 또 “전장연보다 진보한 공약 냈다… 지하철 시위는 문명사회서 수용 안 돼”

3호선 경복궁역에서 짧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8시 20분경 지하철 타기 시위가 시작됐다. 역대 지하철 시위 중 가장 많은 취재진이 참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의 안내방송 멘트도 달라졌다. 평소 “전장연의 시위로 인해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고 하던 공사의 방송은 “전장연의 지하철 타기가 있을 예정이니 열차 이용에 참고하기 바란다”로 다소 ‘친철하게’ 바뀌었다.

일부 시민이 “허구한 날 또 지랄이야”, “죄송하면 시위를 하질 말아야지”, “이게 몇 번째예요? 좋게 말씀드릴 때 그만하세요”라며 항의하기는 했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열차에 올라 탄 후 시민을 향해 “이준석 대표는 왜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석열 당선자를 상대로만 시위하냐고 하지만, 장애인은 지난 21년간 5명의 대통령(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씨, 문재인 대통령)과 3명의 서울시장(이명박·박원순 전 시장, 오세훈 시장)을 상대로 끈질기게 투쟁했다. 대통령과 서울시장은 늘 ‘검토하겠다’고만 했고, 그 결과 저상버스 도입률은 27.8%에 머물러 있고 서울 지하철역 29개엔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경복궁역→충무로역→명동역→한성대입구역→혜화역의 경로로 이동했다. 비장애인은 충무로역에서 한 번만 갈아타면 되지만 장애인은 세 번을 갈아타야 했다.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려면 엘리베이터를 두 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넓은 양 방향 환승통로가 있는 역에서 갈아타고자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는 쪽을 택했다. 이준석 대표가 ‘서울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높아 장애인 이동권이 거의 보장됐다’고 말한 것과 현실은 달랐다. 엘리베이터는 교통약자의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져 있다.

혜화역 77차 선전전 현장. 사진 이슬하
혜화역 77차 선전전 현장. 사진 이슬하
장혜영 의원은 시위 전 과정에 참석해 이준석 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사진 이슬하
장혜영 의원은 시위 전 과정에 참석해 이준석 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사진 이슬하

혜화역에서는 77차 아침 선전전이 진행됐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연대 방문 온 활동가들이 이준석 대표를 규탄했다. 이해지 청년하다 대표는 “오히려 청와대 이전이 더 큰 출근길 불편을 초래할 것 같다. 윤석열 당선자는 교통을 통제하면서까지 도심에서 출퇴근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5년 교통길이 걱정된다”며 “장애인은 한 사람의 출근길이 아니라 모두의 나은 삶을 위해 시위하고 있다. 앞으로도 서울시민으로서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 활동가는 “지난 2001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함께 했다. 당시 장애인들은 선로를 점거하고 사다리, 쇠사슬 등으로 휠체어와 몸을 묶어 투쟁했다. 그때도 많은 시민이 ‘나라에서 장애인 밥 먹여주고 살게 해 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라며 비난했다. 지금과 다를 바 없다”고 규탄했다.

나영 활동가는 “이준석 대표는 장애인이 시민을 볼모로 투쟁한다고 했는데, 21년간 투쟁하게 만든 장본인은 누구인가? 장애인이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게 만들고 험한 투쟁을 하게 한 건 21년간 변함 없던 정부와 정치권, 기획재정부다. 이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8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유세현장에 찾아온 장애인 활동가들을 우연히 만난 이준석 대표의 모습. 사진 하민지
지난해 12월 8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유세현장에 찾아온 장애인 활동가들을 우연히 만난 이준석 대표의 모습. 사진 하민지

이준석 대표는 김예지 의원의 사과를 ‘개인 자격으로 한 행동’이라 일축하며 전장연에 사과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28일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미 전장연과 만나 대화했고 약속했다. 전장연 요구보다 굉장히 진일보한 공약을 냈다. 이동권 이야기는 들어볼 생각이 있지만 탈시설 등은 이견이 많은 부분이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 모두 발언에서도 장애인 시위를 비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각종 단체가 집회와 시위를 강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있을 때는 말하지 않던 것들을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윤석열 당선인에 요구한다. 전장연은 조건을 걸지 말고 현재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시위를 중단하라. 선량한 시민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 뜻을 관철하겠다는 방식은 문명사회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이라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인수위는 28일 지하철 시위 후 전장연 측에 면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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