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지방선거 때까지 농성 예정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사고에 대해 한 번도 사과하지 않은 서울시
2021년까지 탈시설지원조례 제정하겠다던 약속도 파기

4월 5일, 서울시청역 환승통로에 노란 천막이 쳐졌다. 천막에 달린 현수막에는 “서울시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 책임 공식사과 및 서울시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제정 약속 이행 촉구 농성”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4월 5일, 서울시청역 환승통로에 노란 천막이 쳐졌다. 천막에 달린 현수막에는 “서울시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 책임 공식사과 및 서울시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제정 약속 이행 촉구 농성”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5일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서울시청역 환승통로에 노란 천막이 쳐졌다. 이 과정에서 천막을 설치하려는 활동가들과 그들을 저지하려는 경찰 사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는 시청역 천막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성 투쟁을 선포했다. 농성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6월 1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서울장차연은 서울시에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에 대한 공식사과 △두 차례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 파기에 대한 공식사과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제정 약속 이행 등을 촉구하고 있다.

천막을 설치하려는 활동가들과 그들을 저지하려는 경찰이 뒤엉켜 있다. 사진 이슬하
천막을 설치하려는 활동가들과 그들을 저지하려는 경찰이 뒤엉켜 있다. 사진 이슬하

- 이동권 보장 약속 파기한 서울시에 장애인들 “공식 사과하라!”

서울시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을 두 차례나 파기했다. 2002년 8월 29일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지하철 모든 역사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2015년 12월 3일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 및 세부실천 계획’을 발표하며 2022년까지 지하철 모든 역사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했으나, 약속한 해가 되자 서울시는 설치 기한을 2024년으로 또다시 미뤘다.

이런 사실관계를 무시한 채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박원순 시장이 약속한 일을 왜 오세훈 시장한테 따지냐’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한 활동가가 “서울시는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 공식 사과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슬하
한 활동가가 “서울시는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 공식 사과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슬하

서울시의 약속대로라면 올해까지 완공돼야 했을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기약이 없다. 이에 대해 이준석 대표는 “지금 엘리베이터 설치가 지연되는 역들은 말 그대로 역사구조상 엘리베이터 설치 동선이 안 나오는 역들이 대부분인데, 어디에 어떻게 엘리베이터를 넣는 게 가능하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2015년 당시 역사구조상 엘리베이터 설치에 어려움이 있는 역사에 대해서도 대안을 검토해 2022년까지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공사 예정조차 없이 지속 검토 중인 3개 역 중 신설동역과 대흥역은 올해가 돼서야 설계용역비가 편성됐고, 까치산역은 아직도 설계비조차 반영되지 않고 있다. 엘리베이터 한 대를 설치하는 데 통상적으로 21개월의 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할 때, 2022년까지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서울시의 약속은 이미 물 건너간 셈이다.

그동안 장애인들은 지하철을 타며 계속 죽거나 다쳤다. 이명박 시장의 약속이 파기된 2004년 이후로만 따져도 2006년 회기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타다가 사람이 다치고, 2009년 삼각지역에선 안구가 파열되는 등의 부상을 입었으며, 2012년 을지로3가역에선 또다시 사람이 죽었다.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0%가 넘었던 2017년에도 신길역에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려다가 추락해 사망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2002년 발산역 리프트 사고와 관련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을 꺼내 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2002년 발산역 리프트 사고와 관련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을 꺼내 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2002년 발산역 리프트 사고와 관련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의 결정문을 꺼내 보였다. 당시 인권위는 서울시에 “감독기관으로서의 책임과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 유족에 대하여 적절한 배상을 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후에도 계속된 지하철역 리프트 사고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3월 25일 열린 서울시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도 사과는커녕 지하철 시위 자제만을 요청했다. 박경석 이사장은 “우리 중 누군가 휠체어 리프트에서 또 떨어져 죽으면, 서울시는 또다시 뻔뻔하게 ‘당신들 책임이지 나는 책임 없소’ 이럴 것”이라면서 오 시장에게 20년 전 죽음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

최근 이준석 대표는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3%나 된다고 강조했으나, 장애인들은 그 수치를 체감하기 어렵다. 안일환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이용할 때 휠체어 리프트를 탄다. 그는 리프트가 내려가는 도중 멈췄던 기억을 떠올렸다.

안 활동가는 “당시 리프트가 멈추자 지하철 역무원은 내게 ‘잠깐 내려서 걸을 수 없겠냐’고 했다.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 걸으라니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이냐”면서 “리프트를 탈 때마다 ‘나도 사고를 당할 수 있겠구나’ 싶어 매번 공포에 질린다”고 말했다.

- 2021년까지 조례 제정해 탈시설 지원하겠다던 서울시, 거짓말로 들통나

서울시가 어긴 약속은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계는 지난해 11월 10일에 서울시청 후문에 천막을 세웠다. 프라임경제의 「오세훈 서울시장 “강제적 탈시설, 하지 않겠다”」 기사 때문이었다. ‘오세훈 시장이 거주시설부모회와 만나 서울시 탈시설 정책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서울시가 ‘해당 기사는 오보며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장애계는 이틀 만에 농성을 철수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탈시설 정책은 지지부진이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 30일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전국 최초로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를 연내 제정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2022년 4월이 되도록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민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탈시설 정책 추진 의지가 부족한 서울시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여의도에서도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데, 또 이렇게 시청역에 천막을 치게 됐다”고 입을 뗀 그는 “서울시에 ‘탈시설지원조례 왜 제정 안 하냐’고 따지니, 거주시설부모회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여론을 수렴해야 한단다. 도대체 언제까지 여론만 수렴한다는 건가. 그동안 민관협의체를 통해 합의한 내용은 모두 무엇인가. 실컷 합의해놓고 누구의 눈치를 본다는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수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이수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이날 오전 경복궁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삭발을 단행한 이수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는 탈시설 당사자다. 이 활동가는 “시설에서는 살기 위해 눈치를 봐야 하고,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고, 폭력을 당해도 참아야 한다. 왜 장애인들은 희망이 없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감옥 같은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가”라면서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날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발바닥행동 등 장애계는 지난 3월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탈시설지원조례 즉각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당시 이유섭 서울시 장애인탈시설팀 주무관은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다양한 입장을 들어야 하다 보니 신중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찬반이 나뉘는 지점이 어떤 부분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긴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자회견을 마친 활동가들은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와 탈시설 문제로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서울시는 탈시설지원조례와 관련해 “검토한 뒤 오는 20일까지 의견을 주겠다. 거주시설부모회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이 경사로를 방패로 막아서 서기현 서울장차연 공동대표가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서울장차연 
경찰이 경사로를 방패로 막아서 서기현 서울장차연 공동대표가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서울장차연 

한편, 이날 경찰은 기자회견 후 선전전을 진행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는 장애인 활동가들을 저지하기 위해 계단은 열어둔 채 경사로만 방패로 막아서기도 했다. 장애인 활동가들이 어렵게 지하철을 탔지만 비장애인 승객들은 휠체어를 끌어내리려 하는 등 거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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