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2021년 이동권 예산 투쟁 3건 형사고소
박경석, 전차교통방해·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조사
3건 중 2건은 오세훈 취임 전… 박경석 “이준석 거짓말 말라”
국가·지자체 의무 명시한 판례 인용하며 “국가부터 수사하라”
2시간 30분 조사서 경찰은 자백 유도만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 박 대표의 경찰출석을 취재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 박 대표의 경찰출석을 취재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피의자 신분으로 혜화경찰서에 출석했다. 고소인은 서울교통공사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11월, 전장연에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전차교통방해와 업무방해 혐의로 활동가들을 형사고소했다.

전장연은 오전 10시, 혜화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수십 년간 장애인 권리 보장 의무를 위반한 국가부터 수사하라”고 규탄했다.

혜화경찰서 앞.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장혜영 정의당 의원, 여러 활동가들이 있다. 사진 하민지
혜화경찰서 앞.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장혜영 정의당 의원, 여러 활동가들이 있다. 사진 하민지

- 이동권 예산 투쟁 3건으로 조사… 이 중 2건은 오세훈 취임 전

박경석 대표가 조사받는 건은 지난해 1월 22일, 2월 10일, 6월 4일 투쟁 등 총 3건이다.

3건 모두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예산 보장 투쟁이었다. 서울시는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선언’을 발표하고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2022년까지 서울시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 설치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저상버스 도입 및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 예산 400여 억 원이 줄줄이 삭감되며 서울시가 직접 한 약속이 파기되자, 전장연 등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은 열차를 천천히 타고 내리는 투쟁을 진행했다.

지난해 1월 22일에는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고 20주기를 맞아 오이도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호선 탑승 후 서울역까지 이동했다. 서울역에서 활동가들이 천천히 하차하며 열차가 20분간 지연됐다. 2월 10일에는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누락한 서울시를 규탄하며 4호선 당고개역에서 서울역까지 2시간 30분 동안 열차를 타고 내리는 것을 반복했다.

2월 10일 투쟁 이후 활동가들은 서울시와 수차례 면담하며 이동권 약속 이행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라고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확인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후 4월 7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활동가들은 6월 4일, 오세훈 시장에게 똑같은 사항을 또 요구하며 1호선과 4호선에서 연착투쟁을 진행했다.

투쟁 요구사항은 현재도 그대로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시청역 환승통로에 농성장을 차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을 향해 이동권 보장 약속 파기와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에 대한 공식사과 등을 요구하며 25일 기준 21일째 농성 중이다.

박경석 대표는 “1월과 2월 투쟁은 오세훈 시장 당선 전에 진행한 것임을 강조해 말씀드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박원순 전 시장 때는 아무것도 안 하다가 오세훈 시장에게 특별하게 많이 요구한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는 거짓말”이라며 “서울시장이 어떤 정당 출신이든 관계 없이 우리는 투쟁해 왔다. 이준석 대표에게 정치적 정파문제로 가르지 말아주길 간곡히 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대표는 전장연에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장연이 준비한 피켓. 발달장애인 죽음에 관한 판결문이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전장연이 준비한 피켓. 발달장애인 죽음에 관한 판결문이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 서울교통공사, 전차교통방해·업무방해로 고소… 박경석 “국가부터 수사하라”

서울교통공사는 박경석 대표를 형법 186조 전차교통방해, 314조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186조 전차교통방해의 경우 ‘기차, 전차, 자동차, 선박 또는 항공기의 교통을 방해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되는 185조 일반교통방해죄보다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이번 서울교통공사의 고소에 박경석 대표는 “경찰은 장애인 권리 보장 의무를 위반한 자부터 수사해야 한다”며 발달장애인 사망에 관한 판례를 하나 인용했다.

수원지방법원(송승용 재판장)은 2019년 3월 28일, 40대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한 70대 ㄱ 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아무리 부모라고 하더라도 임의로 자녀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처분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 사건의 비극적인 결과가 오롯이 피고인(ㄱ 씨)에게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사정도 고려하여야 한다”며 장애인복지법,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법에 명시된 장애인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일일이 나열했다.

법원은 “법률은 위와 같이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보호와 지원을 위한 각종 규정을 두고 있으나, 이 사건 기록상 발달장애인인 피해자와 그 가족인 피고인이 위 규정에 따른 충분한 보호나 지원을 받았음을 인정하기 어렵다. 위와 같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의무가 단지 선언적인 것에 그치지 아니함은 명백하다”며,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를 강조했다.

박경석 대표는 “사법부는 비극적 죽음의 책임이, 법에 명시된 장애인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국가와 지자체에 있다고 명확이 판결했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이 나라 행정부는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이 같은 죽음에 대해서도 경찰이 수사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는 ‘비문명’이고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 방기는 ‘문명’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장혜영 정의당 의원 또한 “나부터 수사해 달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장애인권리 보장을 요구한 활동가들이 경찰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17개 광역시도 지자체장, 국회의원 300명도 수사받아야 한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위한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 책무를 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인이 시위에 나서게 된 것이다”라며 “나를 포함한 국회의원부터 수사해 달라. 그래야 공정한 수사다”라고 말했다.

경찰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사진 하민지
경찰조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사진 하민지

- 박경석 “권리 보장받기 위한 정당한 투쟁이라 진술”

박경석 대표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2시간 30분 동안 조사를 받았다.

박 대표는 25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조사 내용은 ‘전차교통방해 혐의를 인정하느냐’가 핵심이었다. 경찰은 어떻게든 내 자백을 받기 위해 애를 썼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장애인이 지하철 타기 투쟁을 한 것은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정당한 투쟁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하철이 연착된 문제를 합법과 불법의 잣대로 다룬다는 건 수십 년간 권리를 침해당한 장애인에게는 매우 불합리하다. 이는 불법과 합법으로 볼 문제가 아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업무방해에 대해서도 “경찰은 서울교통공사의 손해에 대해 질문했다. 그건 서울교통공사가 지난해 11월 제시한 민사소송에서 다툴 문제다. ‘왜 그 답변을 여기서 해야 하나.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경찰과 두 시간 반 동안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열차가 늦어져서 피해를 본 시민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경찰의 자백 유도질문도 있었다고 밝힌 박 대표는 “이에 대해선 ‘죄송하다. 현장에서 죄송하다고 늘 사과드리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사과드리는 것과 사과했으니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한편, 전장연은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오는 2일 인사청문회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관한 질의가 있을 경우 답변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후, 청문회 당일까지 출근길 지하철 타기 투쟁을 멈춘 상태다. 지난 23일에는 추 후보자가 사는 아파트에 찾아가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을 아파트 관리과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기획재정위원회)은 이날 오전 8시 삭발투쟁식에서 “추경호 후보자가 요구안을 받았다고 들었다. 2일 청문회에서 요구안 내용에 관한 질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경찰서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에게 “혜화경찰서에 장애인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아 ”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경찰서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에게 “혜화경찰서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장애인 접근권이 보장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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