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시 예산 44조, 장애인 예산은 고작 1조
오세훈 “약자와의 동행은 제 평생의 과업”
서울장차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부터 하라”
11대 요구안 제시하며 오세훈에 면담 요구

한 활동가가 ‘예산 없이 권리 없다!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활동가가 ‘예산 없이 권리 없다!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결의대회에 참석한 활동가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결의대회 도중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활동가들이 우의를 입고 우산을 썼다. 사진 하민지
결의대회에 참석한 활동가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결의대회 도중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활동가들이 우의를 입고 우산을 썼다. 사진 하민지

체감온도 30도에 소나기가 쏟아지던 11일 오후 3시 서울시의회 앞 농성장.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활동가 200여 명이 모여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면담을 요구하는 이유는 ‘2023년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해서다. 올해 서울시 예산은 44조 2,190억 원이다. 역대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중 장애인 ‘복지’ 예산은 고작 1조 3,144억 원뿐이다. 전체 예산의 2.7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시 인구(약 950만 명) 중 장애인 인구(약 40만 명)가 4.2%가량인 걸 생각하면 예산 규모는 턱없이 적다. 이에 서울장차연은 다음 해 예산 편성을 앞두고 결의대회를 열었다.

오세훈 시장은 1일 열린 취임식에서 “‘약자와의 동행’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제가 서울시장으로 존재하는 이유이자 제 평생의 과업”이라 말한 바 있다. 서울장차연은 오 시장 발언을 언급하며 “‘약자와의 동행’은 서울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서부터 시작된다”며 면담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이형숙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형숙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지금은 2023년 예산 수립 시기… “오세훈은 면담에 응하라”

서울장차연은 이날 ‘2023년 서울시 장애인권리 정책 및 예산 11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요구안에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최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장애인 탈시설권리 보장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 보장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보장 등 11가지 요구안과 각 항목에 따른 세부 요구안 63개가 담겨 있다.

서울장차연에 따르면 2023년 서울시 예산은 올해 7월~8월경 수립된다. 그래서 지금 오세훈 시장과 다음 해 예산에 관해 논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이 무더운 여름에 거리로 나와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이 다음 해 예산을 수립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2023년에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으려면 지금 오세훈 시장이 면담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규식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규식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잇따라… 24시간 지원 예산 ‘절실’

지난달 21일, 장애계의 끈질긴 투쟁 끝에 10대 서울시의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 지원에 관한 조례(아래 탈시설조례)’가 통과됐다. 이로써 서울시는 탈시설 장애인의 체계적 지원에 대한 최소한의 근거를 갖추게 됐다.

조례에 따른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관련 예산이 반드시 편성돼야 한다. 이규식 서울장차연 상임공동대표는 “예산이 함께 보장돼야 탈시설조례가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우리가 ‘예산 없이 권리 없다’는 구호를 매일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인권 앞에서 비용 계산을 하고 ‘돈 없다’며 예산 편성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오세훈 시장은 지금 당장 면담 요구에 응하라”고 성토했다.

남태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그의 뒤로 농성장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남태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그의 뒤로 농성장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최근 발달·중증장애인 가족이 장애인을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참사가 잇따라 일어났다. 남태준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는 이를 언급하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보장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남태준 활동가는 “이런 비극은 24시간 지원체계가 구축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뉴스를 보셨을 것 아닌가? 그냥 보기만 하실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남 활동가는 또 “장애인거주시설 거주자의 80%가 발달장애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모든 발달·중증장애인이 얼른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24시간 지원체계가 빨리 구축돼야 한다. 발달·중증장애인의 조력자, 활동지원사도 많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숙 활동가가 빗속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지숙 활동가가 빗속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 확대로 인력 늘려야

서울시는 올해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350개를 만들고 이에 맞게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서울장차연은 2023년에 500개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위탁기관 전담인력도 100명으로 확대하라고 요구 중이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이들은 장애인권익옹호 활동을 하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는 직무를 수행한다.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일하는 이지숙 활동가는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해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더욱 안정적인 일자리로 안착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지숙 활동가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일한 지 2년 됐다. 그간 좋은 일이 많았다. 돈을 모아 주거환경이 더 나은 곳으로 이사 갔다”며 “매일 아침에 눈 뜨면 이 일자리가 사라질까 봐 걱정된다. 우리도 일하며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고 싶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우리의 요구를 듣지 않고 장애인을 집 안에 가둬두려 한다”고 규탄했다.

한편 서울시의회 앞 농성은 11일 기준 98일째를 맞았다. 서울장차연은 2023년 서울시 장애인권리에산 보장을 목표로 농성을 지속할 예정이다.

소나기 속 농성장의 모습. 사진 하민지
소나기 속 농성장의 모습. 사진 하민지
비를 맞고 환하게 웃으며 ‘투쟁’을 외치는 활동가. 사진 하민지
비를 맞고 환하게 웃으며 ‘투쟁’을 외치는 활동가.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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