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2곳, 한 방에 거주인 7명 침실도 없이 수용
응답자 절반, 복용하는 약물 ‘모르겠다’ 응답
응답자 67.5% 시설이용계약서 직접 작성 안 해
시설 내 공공연한 학대 있지만, 예방책 미비
단계적 일상회복 전환에도 시설은 여전히 봉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10곳의 지적장애인거주시설 조사 결과, 인권침해 상황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정부와 지자체에 개선 권고를 내렸다.
인권위는 “코로나19로 거주시설에 대한 내·외부 통제가 반복되어 기본적인 인권이 과도하게 제한되고, 동일집단 격리(코호트격리)로 거주인의 건강권마저 위협받는다며 긴급구제 신청이 계속 접수되었다”라고 이번 조사의 배경을 밝혔다.
인권위가 조사한 지적장애인거주시설은 인천 1곳, 서울 2곳, 경기 1곳, 경북 1곳, 부산 2곳, 충북 1곳, 대전 1곳, 광주 1곳 등 모두 10곳이다.
- 시설 2곳, 한 방에 거주인 7명 침실도 없이 수용
조사 결과 거주인의 과밀수용 문제가 드러났다. 조사 시설 10곳 중 4곳은 한방에 4인 이상의 침상을 운영하고 있었고. 2곳은 한 방에 침상 없이 무려 7명이 머무르고 있었다. 지난 2020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의 거주시설 전수조사에는 1실당 4.7명이 생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부 장관이 매년 1월 31일까지 고시하는 ‘장애인거주시설 서비스 최저기준’에는 1인당 5㎡(약 1.5평)의 면적과 1실당 4인 이하로 배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인권위는 “현재 지적장애인들의 주거환경은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제42조 별표5에는 시설 1실당 정원을 8명 이하(6세 이하는 10인)로 정하고 있다. 최저기준과는 상이한 기준이다.
인권위는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제42조 별표5의 기준을 같은 법 시행규칙 ‘최저기준’ 수준으로 개정해야 한다”라며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따른 1인 1실 배치 계획을 신속하게 이행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 응답자 절반, 복용하는 약물 ‘모르겠다’ 답해
조사 결과 거주인 중 80% 이상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의 이유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복합질환으로 3개월 이상 여러 약물을 함께 복용하고 있는 사례도 있었다.
거주시설 10곳의 장애인 186명은 정신질환(82명, 44%), 뇌전증(16명, 8.6%), 고혈압(20명, 10.7%) 갑상선 저하증(12명, 6.4%), 당뇨(12명, 2.2%), 고지혈(12명, 6.4%) 등을 이유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장애인거주시설 전수조사 결과와 유사한 비율이다.
그러나 일부 시설에서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 등 식단을 고려해야 할 질환자에게도 별도의 식단을 마련하고 있지 않았다.
응답자 84명 중 ‘매일 약물을 복용한다’고 답한 사람은 67%(56명)였다. 그러나 이 중 46%(22명)는 어떤 약을 복용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서울시 관할 39개 장애인 거주시설에 대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0년까지 ‘항정신병제 및 향정신성 약물’ 진료 요청이 총 1,690건 있었으며, 이 중 41.9%(708건)가 ‘시설 내 부적응(산만, 불안, 불면증)’을 이유로 이뤄진 것이었다. 본인에 의한 진료요청은 3.96%(67건)에 불과했다. 본인 이외 요청(1,623건) 중 본인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비율은 24.73%(359건)에 달해 4건 중 1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지적장애인의 경우 건강관리와 관련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시장, 군수, 구청장 등은 입소계약 시 시설장에게 당사자와 그 가족 등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건강상의 문제와 투약에 관한 상황을 관리·점검해야 한다”라며 “당뇨, 고혈압, 고지혈 등 식단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 있는 거주인에 대해서는 맞춤형 식단 제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 응답자 67.5% 시설이용계약서 직접 작성 안 해
시설에서의 입소여부와 금전관리에서도 거주인의 자기결정권이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인권위 조사 결과, 응답자 77명 중 67.5%(52명)가 시설이용계약서를 직접 작성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입소 당시 상황에 대한 기억이나 이해가 명확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입소자 대부분이 가족 등 보호자가 주도해 시설 입소 여부를 결정하고, 사실상 이용계약서 작성 역시 보호자가 대행하는 경우가 다수다. 시설 입소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에 한계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인권위는 시설장이 입소 시 생활 내용과 퇴소 절차 등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그림도구 계약서 등을 활용하고, 입소 전 사전 이용경험 기회를 확대해 입소 여부에 대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활동에 제약이 있는 거주인도 많았다. 거주시설 7곳에서는 거주인의 신분증과 개인통장 관리를 시설장 또는 담당 직원에게 일괄 위임하고 있었다. 거주인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만 직접 관리했다. 생활인 면접조사 결과, 응답자 74명 중 0.07%(7명)만 직접 통장을 관리한다고 답했다.
- 시설 내 공공연한 학대 있지만, 예방책 미비해
신체학대 경험 여부에 대해서 응답자 83명 중 15.6%(13명)는 학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언어적 학대는 응답자 82명 중 22%(18명)가 경험했다고 밝혔다. 한 거주인은 학대 시기를 특정하지 못했지만, 시설 직원에게 뺨을 맞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 시설은 2019년과 2020년 장애인학대(방임)가 발생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조사와 조치가 이뤄졌다. 인권위는 “면접조사를 시행한 결과 직원의 폭행보다는 생활인 간의 폭력과 갈등을 호소한 사례가 많았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설 내 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인 ‘인권지킴이단’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어떤 시설은 동일 재단 내 특수학교 교사 2명이 인권지킴이단원이었고, 인근 사회복지시설장이 단원으로 위촉된 사례도 있다. 지자체장의 추천이 아니라 시설장이나 시설 직원의 추천과 요청으로 단원을 구성한 경우도 있다.
자립생활 정보 제공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에 따르면 시장, 군수, 구청장은 거주시설 이용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응답자 76명 중 68.4%(52명)는 자립생활 교육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자립생활 시설을 이용해본 적 없는 거주인은 51.3%(39명)에 달했다.
- 단계적 일상회복 전환에도 시설은 여전히 봉쇄
2021년 11월 1일 정부는 ‘단계적 일상회복 전환에 따른 사회복지시설 대응지침’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때 백신 접종자의 면회나 외출·외박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러나 인권위가 조사를 위해 시설을 방문했을 때 다수의 시설이 이를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다.
생활인 면접조사 결과 코로나19 이후 가장 어려운 점으로 응답자 51명 중 31명(60.8%)이 외출제한, 12명(23.5%)은 가족이나 친구 등의 방문제한을 꼽았다. 장기간의 면회 및 외출 제한으로 인한 외로움이나 단절감을 호소하는 사례도 많았다.
인권위는 “동일집단 격리를 실시하는 경우, 오히려 시설 내 생활인 전부를 감염의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라며 “지자체는 시설에 사전예방을 위한 구체적 지침을 제공하고,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에 따라 집단 감염으로 시설 폐쇄 시 환자를 이송할 임시시설, 주변 생활치료센터, 치료병원 등을 사전에 지정해 구체적인 지역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