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지급제와 개인예산제, 무익하거나 혹은 나쁘거나 ②
▷ (전편) 1부 한국의 개인예산제 논의가 지닌 공허함과 무익함
- 현금지급제/개인예산제의 해로움 :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공공성 강화라는 과제의 포기
서구 사회의 경우 공공 중심의 사회서비스 체계를 구축한 후 민영화라는 과정을 거쳤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사회복지법인 제도를 중심으로 한 민간 중심의 사회서비스 체계가 구축되면서 사회서비스 분야에서의 공적 책임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서구 사회의 경우 민영화를 추진했다 하더라도 공공부문이 여전히 일정한 지분을 지니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애초 공공부문의 지분이 거의 전무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폐해와 부작용을 완화하고자 추진되었던 것이 바로 사회서비스원이다. 지난 2021년 9월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올해 3월 말부터 시행되었고, 서울, 대구, 인천 등에서는 2019년부터 사회서비스원이 시범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개인예산제를 장애 관련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현 정부는 사회서비스원의 역할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44번 ‘사회서비스 혁신을 통한 복지·돌봄 서비스 고도화’에서는 사회서비스의 공적 공급체계 강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사회서비스원의 역할을 서비스 직접 제공이 아니라 민간 지원으로 180도 전환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의 대형화와 기업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내용 또한 들어 있다.
개인예산제 찬성론자들 중에는 이 제도를 지렛대 삼아 탈시설을 촉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개인예산제는 장담컨대 결코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개인의 선택권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예산제를 통해 지급되는 급여를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와 같이) 시설급여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여, 시설의 재정적 안정화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가능성마저 존재한다. 이미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아래 시설협회)는 2018년 제출한 제2차 장애인 거주서비스 혁신 방안의 6가지 핵심 과제 중 5번째 과제로 ‘서비스 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 도입’을 제시한 바 있다.5) 그리고 현재 개인예산제를 가장 열성적으로 밀고 있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아래 지장협)와 지장협 출신 이종성 의원이 시설협회와 보조를 맞추며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저지의 선봉에 서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현금지급제/개인예산제에 대한 오해 : 스웨덴이 개인예산제를 하고 있다?
이한나 부연구위원 등 많은 연구자가 개인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스웨덴을 포함시키고 있지만, 이는 현금지급제와 개인예산제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오류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영국의 현금지급제와 개인예산제를 가장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텍스트인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 서비스 현금지급과 개인예산』에서 명확히 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예산제도는 기술적인 면에서 현금지급제도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며6) “서비스 현금지급제는 개인예산을 받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7) 현금지급제와 대척점에 있는 현물서비스의 형태로도 개인예산제는 시행될 수 있다.
스웨덴의 경우 발달장애인이 주 대상인 「특정 장애인에 대한 지원 및 서비스 법」(Lag om stöd och service till vissa funktionshindrade, LSS)에서 제공하는 ①조언 및 기타 지원 ②활동지원[보조]서비스 ③동행[에스코트] 서비스(바깥 야외활동 지원) ④친구 서비스 ⑤휴식지원 서비스 ⑥단기 스테이 서비스 ⑦12세 이상 학생을 위한 단기보호 서비스 ⑧가족 또는 가정에서의 생활지원 ⑨주거 서비스 ⑩주간활동 등 10가지 서비스는 ‘각각 개별적인 서비스 판정’이 이루어지며, 이중 활동지원서비스에 한해서만 현금지급제가 실시되고 있다.
스웨덴의 활동지원은 주당 20시간까지는 LSS에 근거해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며, 20시간 이상에 대해서는 「활동지원수당 법」(Lagen om Assistansersättning, LASS)에 따라 사회보험청에서 급여를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현재 중앙정부 차원에서 ‘월(月)평균’ 127시간의 서비스를 기준으로 예산이 책정되고 있는 반면, 스웨덴의 경우 활동지원수당(attendance allowance)을 받는 장애인들은 2015년에 ‘주(週) 평균’ 127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서비스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최대치’가 월 480시간이지만, 스웨덴의 경우 ‘평균적으로’ 월 480시간 이상의 서비스를 이용했던 것이다.
또한 스웨덴에서 장애인에 대한 다양한 사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공적 전달체계를 통해 제공된다. LSS상의 9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역시 공공기관이고, 현금지급제가 실시되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의 경우에도 그 공급자 중 지방자치단체 47.5%, 협동조합 10.7%, 민간기업 38.9%, 자가 고용 2.8%로 지자체가 과반 가까이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공적인 통제력과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다.
- 대안은 ‘서비스별 자기주도 사정’에 기반한 장애인권리예산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서 공식화된 용어를 따르자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주로 ‘개인별 지원’이라는 용어로 개인예산제에서 이야기하는 ‘개인별 맞춤(personalization)-자기주도 지원(self-directed support)’의 문제의식을 표현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등급제 폐지의 과정에서 논의되었던 개인별 지원에는 개인예산제와는 상이한 문제의식과 강조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자기주도 지원이라는 개념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자기주도 사정’(self-directed assess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재활적 기준에 얽매여 있는 일상생활활동(ADL)/도구적 일상생활활동(IADL) 등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의 획일적 사정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와 욕구와 환경을 반영하여 이루어지는 사정이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장애인권리예산제(장애인의 기본권이 법률상의 조항을 넘어 구체적 예산을 통해 공적으로 보장되는 시스템)의 실현이 우리의 당면한 목표이자 대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에도 탈시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자기주도 사정에 기반을 둔 서비스의 제공이지, 개인예산제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공급자라는 항’과 관련해서 보자면 ‘공공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의 전환’ 없이도 이용자 중심성을 담보해 냈던 것이다. 결국 민간 중심이어야 이용자의 중심성이 확보된다는 생각은 신자유주의의 시장 논리를 무의식적·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한 것일 뿐, 결코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영미권의 경우 탈시설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던 요인 중 일부는 예산의 절감 효과였다. 예컨대 미국 뉴저지주에서 2005년 「재정 적자 감소법」(Deficit Reduction Act)이 통과되는 것과 더불어 탈시설 장애인 종합지원 프로그램인 ‘MFP(Money Follows the Person)’가 처음 도입된 것8)은 이러한 맥락을 반영한다. 보편적 국민건강보험이 부재한 미국에서는 65세 미만의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부조 제도인 메디케이드(Medicaid)와 65세 이상의 노인을 주 대상으로 하며 장애인의 일부가 포함되는 사회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가 공적 의료보장 및 사회서비스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데, MFP에 참여한 장애인 및 노인들의 경우 양자에서의 1인당 지출 비용이 아래와 같이 감소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이처럼 예산의 절감과 재정 적자 감소라는 목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나타난 부작용의 하나는 노숙자 및 교도소 수용 인원의 증가였으며, 이에 대해 킴 닐슨(Kim E. Nielsen)은 『장애의 역사』(원제: A Disabilit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탈시설 후] 운이 좋은 사람들, 특권층, 지지해주는 든든한 가족을 가진 이들은 자립생활센터, 지역사회정신건강센터, 지역사회 그룹홈에서 지원을 받으며 살아갔다. 그러나 나머지는 노숙자가 되어 거리에서 살거나, 심지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교도소에 갔다. […] 투옥된 사람의 대다수는 빈곤층, 유색인종이었다. 탈시설 운동은 많은 사람들이 희망했던 바를 다 이루지는 못했다. 그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했던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9)
실제로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2백만 명 이상의 수형자가 존재하는 국가이며, 인구 대비 비율에서도 세계 1위다. 인구 10만 명당 수형 인구수가 700명을 넘어, 푸틴이 장기간 강권 통치하고 있는 러시아의 500명을 누르고 큰 격차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런 수형 인구는 미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된 1980년대를 기점으로 소위 ‘감산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감옥과 산업의 복합체―의 형태를 띤 민영교도소가 등장하면서 400% 이상 급증했다.10) 북미 지역에서 탈시설 운동에 이어 감옥 폐지 운동이 등장한 것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다.
이로 인해 미국 유학 중 자립생활운동을 접하고 귀국해 탈시설운동 조직 ‘인디펜던트 리빙 인 스웨덴’(Independent Living in Sweden)을 설립한 아돌프 락스카(Adolf Ratzka)는 “미국에선 자기결정권의 범위는 넓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복지는 부족했다. 이 또한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11)
결국 GDP 대비 장애인복지지출이 0.60%로 OECD 평균 2.02%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미국과 일본(1% 수준)보다도 낮은 우리나라에서12) 개인예산제라는 기술적 장치를 통해 탈시설을 촉진한다는 것은 매우 안이한 발상일 뿐이며, 최소한 OECD 평균 수준의 예산 증액을 통한 지역사회 서비스의 확대가 있어야만 실질적인 탈시설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명확한 진실을 외면한 모든 논의와 정책적 대안은 말 그대로 탁상공론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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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제2차 장애인 거주서비스 기능과 구조의 혁신 방안」, 2018, 36쪽.
6) 존 글래스비·로즈마리 리틀차일드,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 서비스 현금지급과 개인예산』, 김용득·이동석 옮김, 올벼, 2013, 15쪽.
7) 이동석·김용득, 「영국 서비스 현금지급과 개인예산제도의 쟁점 및 한국의 도입 가능성」, 『한국장애인복지학』 22호, 2013, 52쪽.
8) 이한나 외, 『사회서비스 분야 개인예산제도에 관한 기초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9, 57쪽.
9) 킴 닐슨, 『장애의 역사』, 김승섭 옮김, 동아시아, 2020, 290쪽.
10) 고병권, 「수익모델로서의 인간 수용소」, 『철학자와 하녀』, 메디치미디어, 2014, 179~180쪽.
11) 박고은·박송이·고경민·이충현, 「‘탈시설 성지’ 스웨덴에서 찾는 장애인의 미래①-스웨덴 왜 어디서나 장애인 볼 수 있을까」, 〈노컷뉴스〉, 2020. 11. 9.
12) 김현지 외, 『2021 장애통계연보』, 한국장애인개발원, 2021, 305쪽.
필자 소개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비마이너〉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