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후보가 내놓은 장애인 정책 5개… “맥락 없는 누더기 공약”
개인예산제, 현 정책에 대한 이해나 고민조차 없었다
장애인개인예산제 NO! 장애인권리예산보장 YES!
장애계가 복지의 공공성을 해치는 ‘개인예산제’를 비롯한 윤석열 후보의 장애인 정책을 비판하며,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 집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25일 3시, 윤 후보의 장애인 정책 수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9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장애인 정책 다섯 개를 발표했다. △시외·고속·광역버스에 저상버스 투입, 장애인 콜택시 확대 △주어진 액수 안에서 장애인 스스로 복지서비스를 선택하는 ‘개인예산제’ 도입 △4차산업형 인재 육성 및 장애인 고용 기회 확대 △장애학생의 예술 교육 및 장애예술인 창작 활동 지원 강화 △발달지연·장애 영유아를 위한 국가 지원 강화 등이다.
장애계는 특히 ‘개인예산제’ 도입 공약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개인예산제는 사회서비스 전 영역을 대상으로 일정한 사정 절차를 거쳐 산출된 금액의 총량을 장애인 개인이 자유롭게 운용해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언뜻 보면 장애인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효율적인 제도로 비치기 쉽다.
그러나 장애계 내에선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념에만 집중한 나머지 공공성을 훼손하고 앙상한 소비자주의만 남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게다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의 종류와 양이 현저히 적은 우리나라에서는 ‘유명무실한 공약’이라는 게 장애계의 입장이다.
기자회견에서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상임활동가 또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개인예산제가 도입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며 한국에서 도입될 경우, 복지의 공공성을 해치고 민간 바우처 시장만 확장될 것을 우려했다.
김 활동가는 “유럽 등에서 사회복지서비스는 대부분 국공립이 담당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함께 ‘민간이 제공하라’는 맥락에서 개인예산제가 도입됐다. 스웨덴의 경우, 활동지원 제공기관의 50%가 공공이다”라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모두 장악하고 있고 (공공성에 대한 문제제기 끝에) 작년에야 사회서비스원법이 제정되어 올해 3월부터 시행 예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 활동가는 “이러한 맥락이 있는데 ‘외국에서 이런 거 하니 우리나라도 하자’는 것은 장애 대중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것”이라면서 “윤 후보 공약은 맥락도 없이 이것저것 주워다 만든 누더기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김 활동가는 공공성 강화와 함께 현재의 장애인 복지예산의 총량이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활동가는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사회서비스라는 밥상에는 찬밥 반 공기에 김치 세 조각뿐이다. 개인예산제는 이런 밥상 메뉴를 장애인이 스스로 아끼고 모아서 한 달에 한 번 돈까스나 국수 한 그릇씩 먹으라는 게 본질이다”라며 “스웨덴은 2015년 기준으로 장애인 1인당 활동지원이 평균 480시간 제공된다. 발달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을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는 10가지 이상이다. 그러나 개인예산제 없이도 잘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작 1인당 활동지원 월 평균 127시간에 맞춰 활동지원 예산이 짜여진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예산제 도입은 탁상공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라면 터무니없는 개인예산제를 내세울 게 아니라, 장애인 권리예산 확보를 내걸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장연은 지난 12월부터 37일째(25일 기준)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확보를 위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내년도에 △활동지원을 비롯한 자립생활 예산 2조 5981억 원 △탈시설 예산 788억 원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운영 예산 134억 원 △특별교통수단 국비 투입 등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이미 유럽에서는 쓸모없다고 판정돼버린 개인예산제를 들고나와서 주어진 예산 안에서 장애인이 알아서 하라는 게 윤 후보의 공약이다. 장애인끼리 싸우라는 얘기다. 윤 후보는 장애인의 삶을 가지고 불장난하려고 들지 마라”라며 “대통령 후보라면 후보답게 장애인권리예산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워라.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장애인 보장구 무상 지급, 지역 간 차별 없는 특별교통수단, 권리중심공공일자리 5만 개, 장애인 예산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장애인권리예산 확대와 현재 장애인 정책에 대한 고민 없는 윤 후보의 장애인 공약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혜화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정책에 대해 직접 듣고 공약에 반영하라”라며 “3월 9일 대선 전까지 만나러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윤 후보를 찾아 나서겠다”라고 예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