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만난 기재부, 또 ‘검토하겠다’고 답변
장애인 1천 명 분노 “장애인권리예산 쟁취” 용산역 집결
탈시설장애인들, 폭우 뚫고 춤추고 노래하며 ‘투쟁’
장애인 1천여 명이 30일 오후 3시, 서울시 용산구 용산역 광장에 집결했다. 이들은 당초 강남구에 있는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자택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잠수교남단까지 전동휠체어를 타고 행진하는 ‘전동행진’을 전개할 예정이었다. 장맛비 영향으로 잠수교 보행과 차량운행이 통제되면서 용산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여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 1천여 명은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과 윤석열 정부를 향해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전장연은 지난 29일 오후 4시, 중구 서울역 스마트워크센터에서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와 함께 장애인권리예산 관련 간담회를 했다. 전장연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해 또 ‘검토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 탈시설한 발달·중증장애인들 폭우 속 춤추고 노래하며 “장애인권리예산 쟁취”
2019년 7월 1일, 문재인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활동지원시간을 판정하는 도구가 인정조사에서 종합조사로 바뀌었다. 그러나 종합조사로 갱신 조사를 받은 장애인의 활동지원시간이 삭감되거나 활동지원서비스 이용 자격이 박탈되는 일이 일어나면서 장애계는 ‘장애등급제는 폐지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장애계는 2019년부터 매해 7월 1일이면 장애인의 삶을 예산에 가둔 정부를 규탄하는 전동행진을 벌이고 있다.
전장연은 꾸준히 기재부를 상대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해 왔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권리예산에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활동지원 하루 최대 24시간 예산 국가 보장 △탈시설예산 807억 원 등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예산 보장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결의대회는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자본주의 시장 내에서 ‘노동할 수 없는 몸’으로 여겨진 최중증장애인을 먼저 고용하는 일자리다. 결의대회 무대에 오른 노동자는 문화예술 직무를 수행하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세 팀이 연달아 공연하자, 탈시설한 발달·중증장애인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장맛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의 공연과 탈시설장애인의 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더 많은 장애인이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폭우 속에서 투쟁하고 있다. 폭우보다 차별이 더 무서워서 폭우를 뚫고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또한 권달주 대표는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 3일부터 7개월째 지하철 타기 투쟁을 하고 있다. 서른한 번 지하철을 타면서 그렇게 간절히 요구했는데 기재부는 또 논의하겠다고 한다. 더는 기재부에 속지 말자. 우리 손으로 대한민국의 끔찍한 장애인차별을 끝내자. 기재부가 2023년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할 때까지 더 강력하게 투쟁하자”고 강조했다.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준비위원장은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 나처럼 탈시설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어서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박경인 위원장은 “그룹홈에서 자립한 지 5년이 넘었다. 자립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자립 후에도 행복한 일만 있진 않았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시설에 산 사람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다시는 시설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게는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전국의 장애인이 나처럼 탈시설해서 자유를 누리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다. 누구나 살기 좋은 사회, 장애인권리예산이 보장되는 나라를 함께 만들자”고 말했다.
장애인권리예산이 모자라면 그만큼 복지제도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최근 발달·중증장애인 자녀의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참사가 연달아 일어난 것 또한 부족한 장애인권리예산과 무관하지 않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가 부모 손에 죽고 부모가 자살하는 참사를 매일 속보처럼 듣고 있다. 들을 때마다 속이 무너진다”며 “기재부는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 내일이라도 내가 사라지면 내 자녀가 어떻게 살지 눈에 훤하다. 내가 없어도 내 자녀가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게 인간다운 삶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날 결의대회는 2시간가량 진행됐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오후 5시부터 4호선에서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 중이다. 오후 7시부터는 다시 용산역 광장에 모여 최근 잇따라 사망한 발달·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의 명복을 비는 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전동행진 마지막 날인 다음 달 1일 오전에는 32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이 진행된다. 같은 날 오전 11시에는 삼각지역 인근에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T4장례식’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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