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장 처조카가 학대, 친동생이 횡령
‘박 씨 일가’가 점령… 일 안 하고 월급 받기도
내부고발자에 보복폭행, 부당해고까지
피해거주인, 비리세력과 함께 아직도 시설에
거듭된 장애계 탈시설 요청에도 안동시·경북도·복지부 ‘소극행정’
안동시가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하고, 해당 시설 이용자를 원가정 혹은 다른 시설에 보내거나 또 다른 시설을 지어 수용한다는 계획을 세워 논란이 되고 있다.
안동시는 지난 5일 작성한 문건에서 장기간 학대가 일어난 시설을 폐쇄한 후 거주인을 △원가정 복귀 △탈시설화 추진 △공동생활가정 신규 시설 설치 △타 시설로 전원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탈시설화 추진’에는 ‘임대주택 지원’ 외에 별다른 탈시설 지원 정책이 명시돼 있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시설장이 비리로 물러난 후, 비리를 묵인해 온 기존 이사가 임시시설장으로 임명됐는데, 이를 안동시가 승인한 것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시설폐쇄와 안동시 차원의 탈시설·자립생활 대책 수립을 요구해 온 420장애인차별철폐안동공동투쟁단(아래 420안동공투단)은 분노하고 있다. 420안동공투단은 “임시시설장 즉시 교체와 시설폐쇄, 거주인 전원 탈시설을 목표로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 밝혔다.
- 박경호 처조카는 거주인 학대, 친동생은 임금에 적금까지 횡령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소재 지적장애인거주시설 선산재활원(사회복지법인 선산재활원. 거주인 27명, 종사자 25명)의 거주인 학대, 임금 횡령 사건은 지난 4월 13일, 안동MBC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선산재활원 직원 박재환 씨(가명)는 2004년, 선산재활원이 설립될 때부터 현재까지 근무하며 거주인 폭행을 일삼았다.
내부고발자가 찍은 영상에는 박재환 씨가 거주인에게 “밟아버린다”고 위협하고 거주인의 머리를 벽으로 밀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옷을 벗은 채 웅크리고 있는 거주인에게 발길질을 퍼붓기도 한다. 내부고발자는 박재환 씨가 “(거주인이) 자기 눈에 거슬리면” 폭행했다고 증언했다.
박재환 씨는 시설장이자 법인 대표이사인 박경호 씨(60세)의 처조카다. 박경호 전 원장은 다른 직원들로부터 박재환 씨의 학대행위를 보고받았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애인 임금 횡령은 박경호 전 원장의 친동생 박경은 씨(가명, 56세)가 저질렀다. 박경은 씨는 선산재활원의 실질적인 운영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거주인 10명이 직업훈련 목적으로 외부 사업체에서 일했는데, 이들의 임금 통장을 박경은 씨가 관리하면서 1억 4500만 원을 인출한 정황이 확인됐다.
또한 거주인들이 월급 중 30만 원씩 1년간 부은 적금 5200만 원을 박경은 씨가 만기일에 한꺼번에 인출해 갔다. 이렇게 횡령한 금액만 약 2억 22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박경호 일가가 시설 점령… 비리 감싸준 법인 이사진
선산재활원에서 일한 박경호 전 원장의 친인척은 박재환 씨, 박경은 씨뿐만이 아니다. 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박경호 전 원장의 배우자, 여동생 1명, 남동생 1명 등 총 7명의 ‘박 씨 일가’가 직원으로 일했다.
문제는 이들이 일을 하지 않고 급여를 받아 갔다는 점이다. 안동MBC 보도에 따르면, 박경은 씨는 ‘다슬기 잡이를 가야 한다’는 이유로 일찍 퇴근했고, 박경호 전 원장의 또 다른 여동생은 오후 5시가 돼서야 출근하기도 했다.
내부고발자는 “이사장 가족들은 일을 하지 않음에도 계속 인건비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선산재활원은 매년 국비 9억 원, 도비 1억 원, 시비 3억 원 등 약 13억 원의 보조금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 일가는 다른 직원들에게 갑질을 하기도 했다. 박경호 전 원장이 개인적으로 닭을 키우면서 직원들에게 닭을 돌보는 업무를 지시하고, 달걀을 강매했다. 박경은 씨는 부업 일거리를 직원들에게 떠맡기기도 했다.
직원들이 법인에 박경호 전 원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했지만 법인 이사회에서 이를 묵인한 정황이 드러났다.
선산재활원 누리집에 올라온 지난 4월 1일 ‘정기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박경호 전 원장은 “괴롭힘 행위 당사자로 고발”됐다. 이사회에서 징계 심의를 했는데 박덕근 이사 등 모든 이사가 “법인 내 징계규정이 없어서 징계가 불가능하다”, “(법인 내 징계가 불가능하니 노동부나 경찰에서 징계해야 하는데) 노동부는 약자 편이다” 등의 이유를 들며 “징계심의를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 내부고발자 보복폭행에 해고까지… 박 씨 일가 구속·검찰송치
내부고발자의 제보로 안동MBC 보도, 안동시 특별지도점검, 안동경찰서 수사, 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 조사 등이 시작되자 박경호 전 원장은 직원을 보복 폭행하기에 이른다.
지난 5월 13일, 박경호 전 원장은 내부고발자로 의심되는 직원을 흉기로 위협하고 얼굴을 폭행했다. 또한 선산재활원 1층 복도에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를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쳤다. 이 때문에 거주인과 직원 모두 선산재활원 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안동시는 이날 박경호 전 원장을 직무집행정지 조치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지난 5월 16일, 안동시는 특별지도점검 결과, 선산재활원에 개선명령과 과태료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선산재활원 직원 9명이 거주장애인을 학대했다고 최종 판정했다. 직원의 3분의 1이 가해자로 확인된 것이다.
박경호 전 원장이 물러났지만 보복은 계속됐다. 비리를 묵인해 온 기존 이사진 중 박덕근 이사가 임시시설장으로 임명됐는데, 임명된 지 일주일 만에 징계위원회를 열어 내부고발자를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박경은 씨와 박경호 전 원장은 구속수사를 받고 있고 박재환 씨는 구속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상태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학대·횡령 피해 장애인들은 아직 선산재활원에 있다. 박덕근 임시시설장 포함 박경호 전 원장의 측근 및 친인척 일부도 아직 선산재활원에서 근무한다.
- 비리 묵인한 이사가 임시시설장? 안동시 “연세대 나온 분이라 괜찮아”
시설 원장과 직원들이 긴 시간 학대와 횡령을 일삼고, 이 같은 혐의로 수사받고 구속까지 된 심각한 상황이지만 안동시 행정은 지지부진하다. 지난 7일 최혜영·박찬대·윤영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안동시, 경상북도, 보건복지부, 420안동공투단이 만난 자리에서 자세히 드러났다.
우선 문제가 곪아가는 동안 선산재활원은 안동시로부터 단 한 번도 행정처분을 받은 적이 없다. ‘솜방망이 처분’이라 불리는 개선명령도 설립 18년 만인 지난 5월에야 처음 내려졌다. 안동시는 18년간 수많은 점검을 했음에도 학대와 횡령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안동시는 박덕근 이사가 임시시설장이 되는 걸 승인하기도 했다. 법인 임시이사회가 비리를 묵인해 온 기존 이사진 중 한 명인 박덕근 이사를 임시시설장으로 추천했는데, 안동시가 이에 관해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이는 내부고발자 해고로 이어졌다. 지자체가 관리감독의 책임을 다하지 않아 내부고발자가 피해를 보게 됐다.
최혜영 민주당 의원이 이에 대해 질의하자 황성웅 안동시 노인장애인복지과 과장은 박덕근 이사를 두둔했다. 황 과장은 “박덕근 임시시설장은 저희(안동시)랑 소통이 잘 되는 분이다. 연세대학교 출신으로 고시공부를 오래 해서 법도 많이 알고…”라고 대답해 좌중의 빈축을 샀다.
전교탁 420안동공투단 활동가는 “임시이사회에서 박덕근 이사를 임시시설장으로 추천했을 때 안동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승인했다. 그래 놓고 ‘이 사람은 문제없다. 소통 잘 된다’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황성웅 과장은 거듭 변명하며 “승인과정에서 범죄사실, 결격사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박덕근 이사에게) 문제는 없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 탈시설 추진하랬더니 새 시설 짓겠다는 안동시
시설폐쇄가 거의 확실시된 상황에서, 안동시는 거주인 지원 계획을 탈시설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세웠다. △원가정 생활 가능 여부를 판단해 원가정으로 복귀 △인지능력 등 자립생활 가능 여부를 판단해 탈시설화 추진(임대아파트 지원) △도비 2500만 원, 시비 1억 1백만 원 들여 공동생활가정 신규 설치 △타 시설로 전원 조치 등의 계획을 수립했다.
그나마 있는 ‘탈시설화 추진’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임대주택, 영구임대아파트 지원 말고 다른 계획은 없는 상태다. 황성웅 과장에게 임대아파트가 지원주택인지, 탈시설 거주인에게 시 추가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되는지 등을 질의했으나 황성웅 과장은 “임대아파트 지원에 당연히 다른 탈시설 지원 계획도 다 포함돼 있다” 정도로만 대답했다.
박재희 420안동공투단 활동가는 탈시설 원칙에서 후퇴하는 안동시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 활동가는 “박덕근 임시시설장을 포함해 시설운영에 관여하는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심각한 상황이다. 직접 학대당한 피해자, 학대를 목격한 거주인 모두 선산재활원에 머물러 있다. 이분들이 하루라도 빨리 학대시설에서 탈시설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안동시가 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라고 성토했다.
김신애 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 또한 선산재활원 거주인의 탈시설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신애 관장은 “거주인이 자립생활 할 수 있는 길로 가야 한다. 긴 시간 폭행 피해를 겪고 목격한 분들이다. 긴급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안동시가 세세하게 지원하지 않고 여기서 이쪽으로 옮기고(원가정 복귀, 전원조치를 의미), 최소한의 밥만 먹고 사는 생활만 하게 하는 등의 접근은 현재에는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경북도 “법인 허가취소는 아직…” 장애계 분노 “끝까지 투쟁”
7일 간담회에 참석한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에 따르면 경상북도 지역에서 학대가 벌어졌다고 드러난 시설 수는 경산 성락원, 영덕 사랑마을 등 총 25개에 달한다. 그러나 박재희 활동가에 따르면 그간 경상북도가 법인 해산명령을 내리거나 비리 이사진을 전원 해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간담회에서도 경북도의 미온적 태도가 지적됐다. 최혜영 의원이 “시설폐쇄 외에도 경북도가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자 김상태 경북도 장애인복지과 팀장은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라 조심스러워서 대답하기 어렵다. 법인 허가취소 사유가 되는지는 법리적으로 자문해야 할 것 같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했다. 최 의원은 “이렇게까지 생각을 안 하니까 문제해결이 안 되는 것”이라며 경북도의 소극행정을 비판했다.
복지부도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복지부는 3년에 한 번씩 전국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을 평가한다. 가장 최근 평가인 2019년 평가 결과, 선산재활원은 평균 B등급의 후한 점수를 받았다. ‘이용자 권리’는 A등급이었다. 중앙정부 또한 선산재활원의 학대, 비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안동시, 경북도, 복지부 모두 사태의 근본적 해결책을 내놓지 않자 420안동공투단 활동가는 분노했다.
탈시설장애인 당사자인 장미자 420안동공투단 공동대표는 “공무원들이 이런 말장난을 하는 동안에도 거주인들은 학대시설에 남아있다. 거주인들과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봐라”면서 “이분들 모두 탈시설할 때까지 모든 방법을 다 쓰겠다.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420안동공투단은 간담회 다음 날인 8일부터 현재까지 매일 안동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한편 지난 8일, 안동시는 시설폐쇄 처분을 내리기에 앞서 선산재활원에 대한 청문절차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선산재활원 측이 반박자료를 보강한다는 이유로 청문회 연기를 요청했다. 청문회는 오는 18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