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때문에 찾아온 감염인 돌려보낸 연세오케이병원
비과학적 근거로 질병관리청 가이드라인도 무시
해당 주치의 “기자님 같으면 에이즈 환자 수술한 방에서 수술받겠냐”
반복되는 사건, 여전히 높기만 한 의료 문턱
HIV/AIDS 인권단체가 HIV 감염인의 수술을 거부한 의료기관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HIV/AIDS가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분류된 지 오래지만, 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의료계에서조차 여전하다. 의료기기를 환자의 몸에 직접 접촉해야 하는 수술 등에서 HIV 감염인들은 아직도 치료를 거부 당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아래 커뮤니티알),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20일 오전 11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가 해당 의료기관과 보건복지부에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권고할 것을 촉구했다.
- “HIV 감염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지난 5월, HIV 감염인 ㄱ 씨는 디스크 증상으로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연세오케이병원을 방문했다. 병원 측은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며 ㄱ 씨를 입원 조치했다. 그러나 수술 전 검사에서 ㄱ 씨의 HIV 감염 사실을 알게 되자, 병원 측은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돌아섰다. ㄱ 씨가 “HIV 치료를 받고 있어 전파 위험이 없다”고 설명해도 병원 측은 치료를 거부하며 ㄱ 씨를 퇴원시켰다. 병원 측은 “HIV 감염을 막을 ‘장비’가 없고 ‘일반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하는 병원 측의 설명은, HIV 감염인을 타인을 해치는 위험한 존재로 치부해버렸다”면서 “HIV 감염인도 차별 없이 안전하게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병원 측의 설명이 비과학적인 근거에 기대고 있다는 반박도 이어졌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회 위원은 “HIV 감염인을 수술할 때 고도로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면서 “치료를 잘 받고 있는 대부분의 HIV 감염인은 주사침에 의한 자상(날카로운 것에 찔려서 입은 상처) 노출 등으로 타인에게 감염을 전파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1985년 우리나라에서 첫 HIV 감염인이 보고된 이후 지금까지, 의료 처치 시 노출에 의한 의료진 감염사례는 없다.
2020년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HIV 감염인 진료를 위한 의료기관 길라잡이(아래 HIV 길라잡이)’를 보면,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환자의 진료 시와 다르게 필요 이상의 보호구를 착용할 필요가 없으며, 특별한 의학적 사유 없이 HIV 감염인을 별도의 장소에서 진료하거나 진료 순서를 뒤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HIV 길라잡이에는 “의료제공자는 모든 환자의 진료 과정에서 표준주의지침을 준수해야 한다”고 돼 있다. HIV 감염인이라고 해서, 최소한의 감염관리원칙인 표준주의지침 이외 별도의 주의지침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 위원은 “HIV 감염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무지와 차별과 혐오”라면서 “의료기관 종사자 모두는 HIV에 대한 낙인과 차별로 인해 높아진 문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동료 의료인으로서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밝혔다.
- 의료차별 인정 안 하는 연세오케이병원
ㄱ 씨의 주치의였던 ㄴ 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ㄴ 씨는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한 거지 내가 거부한 게 아니다”면서 “수술하려고 하니까 병원에서 ‘에이즈 환자 수술하다 수술방 다 오염되면, 다른 환자 수술 못 한다’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자신이 환자에게 “세상 모든 의사가 거부해도 수술방을 제공하는 병원만 있으면 내가 수술해주러 갈 테니까 얘기하라” 전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병원의 운영 방침상 어쩔 수 없었다’는 말과 달리, ㄴ 씨는 HIV 감염인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ㄴ 씨는 사건이 있고 나서 연세오케이병원을 나온 상태인데, 이에 대해 그는 “(ㄱ 씨와 같은) 환자들이 ‘진상’ 부리니까 나온 것”이라면서 “기자님 같으면 에이즈 환자 수술한 방에서 수술받겠냐”고 따져 물었다.
연세오케이병원은 의료차별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동욱 연세오케이병원 행정부장은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환자가 의사에게 당연히 알려야 할 감염 사실을 속인 상황에서, 병원으로선 전파 위험이 없다는 환자의 말만 믿고 진료할 수 없다”면서 “감염 관리가 철저하게 된 수술방이 있는 다른 큰 병원에 가서 수술하시는 게 맞다고 안내해드렸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이런 운영 방침에는 변화가 없냐는 질문에 김 부장은 “환자가 전염력이 없는지 확인할 수 있을 때, 주치의가 판단하기 나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의료차별행위다. 2010년 12월 1일 세계 AIDS의 날을 맞아 질병관리본부가 정책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HIV 감염인은 의사에게 감염 사실을 알릴 의무가 없다. 의료인은 모든 환자가 AIDS와 같은 혈액매개질환이 있다 가정하고 이에 준한 표준주의지침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성욱 커뮤니티알 활동가는 “모든 환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의사에게 잘 말해 최선의 진료를 받고 싶다. 그럼에도 HIV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꼈거나, 사회적 조건이 환자가 말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면서 “HIV 감염 사실을 ‘숨겼다’거나 ‘속였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병원마저 감염인을 구별하고 차별한다면…”
HIV 감염인에 대한 의료차별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HIV 감염인의 입원을 거부한 국립재활원에 대해 2019년 인권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차별로 판단했다. 서울과 경기도의 병원 10여 곳이 손가락이 절단된 HIV 감염인의 수술을 거부한 사건 역시 현재 인권위에 진정이 접수돼 있다. 2017년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는 HIV 감염인 진료를 거부하는 한국 의료진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박상훈 커뮤니티알 활동가는 “HIV 감염인 대부분은 몸이 아플 때마다 ‘내가 병원에 가도 되는 걸까?’를 처절하게 고민한다. 병원이 나의 감염 사실을 알게 되면 다시는 그 병원을 이용하지 못할까 봐, 전산에 감염 사실이 등록돼 다른 병원에서조차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한다”고 말했다.
손문수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대표는 “병원은 HIV 감염인에게 가장 친밀한 기관이어야 한다. 병원마저 감염인을 구별하고 차별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감염인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힘줘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