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감염인 운동과 장애인 운동에서의 유엔 제2·3차 최종견해의 의미

2021년 4월 19일, 레드리본인권연대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서울시 중구 인권위 앞에서 HIV 감염인의 차별 진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비마이너DB
2021년 4월 19일, 레드리본인권연대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서울시 중구 인권위 앞에서 HIV 감염인의 차별 진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비마이너DB

지난 9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는 ‘대한민국 제2·3차 병합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발표하였다. 이번 위원회의 견해에는 지난 2014년 제시한 제1차 견해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장애인’이 등장한다. 바로 ‘HIV 및 장애를 지닌 사람(persons with disabilities with HIV/AIDS 또는 HIV infected persons with disabilities, 아래 HIV감염장애인)’이다.

위원회는 한국의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두에 대해 HIV감염장애인에 대한 고려를 주문하였다. 먼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의 일반원칙과 당사국의 의무 조항(제1~4조)에 근거하여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 정의, 장애 관련 법과 제도가 협약에 완전히 부합하지 않아 HIV감염장애인 등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국내 장애 관련 법들을 모두 검토하여 HIV감염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를 아우를 수 있는 장애 개념을 채택하고 그들의 욕구와 특성이 인정되도록 보장하라고 주문했다. 다음으로는 현재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장애여성, 이주장애인, 성소수자 장애인, HIV감염장애인 등이 직면하는 다중적이고 교차적인 차별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기존의 법률을 재검토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모든 형태의 차별을 종식하는 노력을 요구하였다. 요약하면 협약에 따라 HIV감염장애인의 사회보장과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조치를 국제사회가 주문한 것이다.

그렇다면 ‘HIV감염장애인’은 누구인가? 분명한 것은 한국 정부가 실제 제도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등록 장애인’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가령, HIV감염인 중 장애인 등록이 된 이들에게 국한된 내용이거나, 등록 장애인 중 HIV에 감염된 상태에 있는 이들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협약에서는 장애를 변화하는 개념으로 간주하며 동등하고 완전하게 효과적인 사회참여를 하는 데 방해를 받는 태도,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이들이 당면하는 문제의 해결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2014년 위원회는 1차 최종견해에서 한국 정부에 의료모델에 따라 정의하는 장애(인) 개념을 폐지할 것을 계속 권고한 바 있다. 또한, 2018년 위원회는 협약의 이행과 모니터링에 장애인 대표 단체의 참여에 관해 구체적으로 다룬 일반논평 7호에서 HIV/AIDS 단체는 협약에 따른 장애인 단체라고 못 박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견해에서 말하는 ‘HIV감염장애인’은 ‘HIV에 감염된 등록 장애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HIV감염과 장애를 복합적으로 경험하고 있거나 경험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교차적 개념이다. 즉, HIV감염인은 장애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가와는 관계없이, 협약에 따라 국가에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2021년 4월 19일, HIV감염인의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차명희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상담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손에 든 피켓에는 “HIV감염인도 장애 인정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2021년 4월 19일, HIV감염인의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차명희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상담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손에 든 피켓에는 “HIV감염인도 장애 인정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2019년에 이어 비/미등록 상태에 있는 HIV감염인이 경험하는 의료 차별에 대하여 또다시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로 해석하고 시정권고를 내린 바 있다. 근무 중 엄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은 노동자가 사고 직후 병원을 찾았으나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수차례 여러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상의 등록 여부를 불문하고 ‘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 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에 있는 자’라면 모두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를 지닌 것으로 해석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권고문은 국가에서 바라보는 장애에 대한 재정의가 시급한 상황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가령, 인권위는 그 판단에서 “의학적 사실과 상관없이 HIV감염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적 인식과 편견으로 인하여 HIV감염인은 감염자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는 등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겪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면서도 여전히 “모든 HIV 감염인 및 AIDS 환자를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으로 볼 수 있는지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의 접근을 고려한다면 인권위는 HIV감염인이 누구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해 권리구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장애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지위를 가짐을 인정하고, HIV감염인에 대한 차별금지를 위하여 정부 각 부처가 기초적인 연구에서부터 현행 제도의 재검토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어야 했다.

어찌 되었든 윤석열 정부의 임기 초에 발표된 유엔의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 견해는 앞으로 HIV감염인 권리운동과 장애인 권리운동의 연대를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HIV감염인 권리운동의 측면에서 이번 견해는 당사자를 조직하고 차별을 깨뜨려 가는 하나의 유용한 전략을 세워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장애인 권리운동의 입장에서는 장애인등록제 폐지와 장애 재정의 요구의 정당성을 다시금 확인하고 ‘등록장애인의 권리보장’을 넘어 장애의 보편화, 장애 현상의 사회적 해결이라는 논의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환의 맥락에서 말하기를 넘어서는 장애의 맥락에서 말하기, 제도 내 장애인에 대해 말하기를 넘어서는 제도 밖 장애인에 대한 말하기의 연대가 기대된다.

※ 이 글은 ‘모자이크 속 사람들, 나를 외치다 - 장애와 질병, 경계를 횡단하는 HIV감염인 생애사 구술기록’(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2022) 도서에 실린 필자의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 필자 소개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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