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 미래 없는 나와 미래가 충만한 나의 언니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아래 우영우)’가 뜨거운 이슈가 되면서 글이 쏟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 전문 지식이나 신선한 관점으로 글을 쓰기엔 부족한 내가 ‘우영우’에 대한 감상을 쓰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회를 거듭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접하면서 부담을 넘어 글쟁이 인권운동가로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처음 ‘우영우’란 드라마를 접했을 때 어떤 관점으로 이 드라마를 봐야 할지 고민했다. 이미 서번트 증후군, 즉 자폐를 가진 이들 중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드러내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꽤 많이 봐왔기 때문에 별로 기대감이 없었다. 오히려 비판 의식이 더 컸다. 서번트 증후군은 책에서만 접했지 실제 현장에서는 본 적이 없으므로 그저 현실성이 떨어지는 소재일 뿐이라고 여겼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화. 우영우 변호사(박은빈 씨)와 중증자폐장애인이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캡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화. 우영우 변호사(박은빈 씨)와 중증자폐장애인이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캡처 

하지만 ‘우영우’는 조금 달랐다. 에피소드별로 사회 문제를 다루며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특히 3화에서 의대생 형을 살인한 사건으로 기소된 중증자폐장애인 김정훈(문상훈 씨)을 다룬 에피소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 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사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접하며 잊고 있었던, 조금 다른 내용이지만 한 가지 떠오른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내가 다니고 있던 특수학교가 지방으로 이전하는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초등부 졸업반이었고 중학교로 진학해야 할 시기였는데 특수학교가 이전하는 바람에 새로운 학교를 알아봐야 했다. 애초에 부모님은 나의 학업에 큰 관심이 없어서 특수학교 이전은 내게 엄청난 큰 타격이었다. 그나마 특수학교가 우리 집과 가까워서 다닐 수 있었는데, 지방으로 이전하니 통학이 어려워졌다. 중증장애로 돌봄이 전적으로 필요했던 나는 이전한 학교로 진학하려면 돌봄서비스가 포함된 기숙사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매달 내야 할 기숙사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 당시 친언니는 고등학생이라 교육비가 많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부모님은 선택해야만 했다. 나의 기숙사 비용을 댈 것인가, 언니의 교육비에 지출할 것인가. 이 질문에 주변인들 모두 나의 부모님에게 ‘미래가 없는’ 내게 투자(?)하는 것보다 미래의 가능성이 큰 언니를 교육해야 한다고 한마디씩 조언했다.

결국 미래가 충만한 언니가 선택됐다. 어렸을 땐 그러한 선택을 한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러나 이젠 안다.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내가 교육받을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를 마련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가 문제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메인 포스터. 사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캡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메인 포스터. 사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캡처

- 드라마 ‘우영우’는 시청할 수 있지만, 나의 이웃으로는 싫어!

얼마 전에 드라마 ‘우영우’ 시청률이 최고치를 향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후반부로 가면서 괜찮게 여겼던 내용들이 점점 아쉬움으로 흘러가지만 그래도 이제껏 나온 한국 드라마 중 장애 문제를 정면에서 고민하며 만든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장애인이 나오는 드라마를 이렇게 두드러지게 시청하는 것 자체가 예외적이라 신기하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씁쓸한 감정이 든다. 드라마 밖에 살고 있는 나는 ‘우영우’가 다른 나라 드라마 같다.

얼마 전에 퇴근 후 집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활짝 펼쳐진 우산들로 복도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우산들로 인해 전동휠체어를 탄 나는 집 앞까지 진입할 수가 없었다. 한 층에 여덟 가구가 사는데 몇 입주민은 나와 자주 마주쳤다. 특히 앞집 입주민은 내가 좁은 복도 통로를 어렵게 지나가는 걸 몇 번 본 사람인데 자기 집과 우리 집 문 사이에 큰 장우선을 펼쳐놓고 이틀 동안 방치해 놓았다. 덕분에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활동지원사가 우산을 일일이 치워줘야 했다. ‘이 사람 진짜 개념도 없고 장애를 가진 이웃은 전혀 생각도 안 하는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해서 우리 집 문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려는데 앞집에서 티브이 소리가 크게 났다. 티브이 소리는 드라마 우영우 목소리였다. 그는 자폐인이 나오는 ‘우영우’는 시청할 수 있지만, 자신의 우산으로 통행에 불편함을 겪는 앞집 이웃에는 관심이 없었다.

법정에서 변론을 하는 우영우의 모습. 사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캡처 

나는 요즘 들어 큰 고민이 생겼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서 탈시설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러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몇 달 전, 소속 센터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 주택 재계약이 안 돼서 이사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사 갈 날이 훨씬 지나도록 이사를 못 했다. 거의 반년 동안 해당 지역 부동산 시세를 전부 파악하며 담당 코디네이터를 비롯해 센터 활동가들까지 총동원해서 집을 알아봐야 했다. 집을 못 구했던 이유는 집주인들이 ‘우리가 장애인이라서 싫다’는 것이었다. 계약 하루 앞두고 우리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알고,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당한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탈시설 발달장애인을 이웃으로 둔 사람들의 민원에 대응하고 해결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딱히 피해를 주지 않아도 장애인이 가까이 가는 것 자체가 거부감이 드는 모양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이 조금만 어려운 행동을 보여도 극도의 예민한 반응으로 항의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우영우가 보이는 자폐성 행동은 귀여움을 넘어 매력처럼 보곤 하지만(심지어 3회에 나온 중증자폐장애인도 펭수 팬으로 묘사되어 귀엽고 순순한 이미지다) 드라마 바깥 현실에 사는 발달장애인은 동료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다. 연일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고 있다는 ‘우영우’ 관련 기사가 무색하게, 나는 장애 이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장애인을 동료 이웃으로 존중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어쩌면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절박하게 지하철을 점거하고 온몸으로 도로를 막은 드라마 바깥의 장애대중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장애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당당하게 외쳤던 다양하고 이상한 우영우들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우영우’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드라마 밖의 우영우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이웃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고민을 드라마 이후에도 이어갔으면 한다.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멋진 글은 못 쓰지만,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다. 비장애 중심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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