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하버드대 나온 비장애남성 정치인 이준석 대표님께
당신이 당긴 혐오의 방아쇠, 책임지는 방법은 사퇴뿐

이준석 대표님께

안녕하세요. 대표님.

저는 지난 20년간 중증장애인 활동가로 활동해온 김상희입니다. 제가 대표님께 편지를 쓰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들어 예상하지 못한 일이 참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대표님 덕분인 것 같습니다.

대표님, 저는 혈연 가족으로부터 독립해서 18년 지금껏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계단이 10개 있는 집에 갇혀 학교도 못 다니고 또래 친구도 사귈 수 없었습니다. 늘 사람과의 관계가 고팠습니다. 그때 저의 일상은 학교에서 돌아올 언니들을 기다리거나 오후 5시 30분에 티브이를 켜서 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10대 시절 절반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대표님은 10대 시절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하버드대를 나왔다고 하니 저와 전혀 다른 시간을 보냈겠죠?

저는 그 시절만 생각하면 바깥에서 객사하더라도 다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그 시절 덕분에 차별의 감각을 익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문명시대의 인간’이 살아야 하는 형태가 아님을 장애인운동을 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반려견도 하루에 두 번 이상 산책해줘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말하는데 저는 하루에 두 번은커녕 1년에 한 번 외출도 못 하고 살았으니깐요.

경복궁역에서 열차에 탄 장애인 활동가들. 비장애인 승객으로 꽉 찬 만원 열차에 탑승했다. 사진 이슬하
경복궁역에서 열차에 탄 장애인 활동가들. 비장애인 승객으로 꽉 찬 만원 열차에 탑승했다. 사진 이슬하

- 문명시대에 가져야 할 인권적 감수성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2004년 6월 7일. 이날은 제가 혈연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날입니다. 제 생일보다 더 축하받고 싶은 날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가 집에서 나가 산다고 했을 때, 온 가족이 다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활동지원사 없이는 1미터 앞에 냉장고가 있어도 물 한 잔 꺼내 마시지 못하며,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활동지원사가 없으면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볼일을 봐야 하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입니다(대표님은 장애가 어떤 것인지 모르실까 봐 자세히 설명해 봤습니다). 그 당시에는 활동지원 제도도 없었으며, 시범사업으로 월 40시간 미만의 시간만 주어졌습니다. 반대했던 저희 어머니 말씀처럼 저는 불나도 ‘악’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죽을 수 있는 장애 상태입니다.

그래도 저는 1년에 한 번 외출하기도 힘든 집에서 나오고 싶었습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내 마음대로 집 밖에 나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모한 결단으로 집을 나와, 작은 원룸에서 활동지원제도도 없이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의 독립을 지지해 주고 지원해 준 소속 단체 활동가들이 아니었으면 실행에도 옮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활동가들은 저를 동정해서, 불쌍해서 지원해 준 게 아니라 그들과 나의 삶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그러한 연대적 마음으로 저의 독립을 지켜내 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대표님이 말하는 문명시대에 가져야 할 인권적인 감수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열차에서 하차하는 사람들의 모습. 피켓에는 “장애인권리예산 기획재정부 책임 촉구. 장애인거주시설 예산 6224억, 탈시설 예산 24억, 장난치지 말라”고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열차에서 하차하는 사람들의 모습. 피켓에는 “장애인권리예산 기획재정부 책임 촉구. 장애인거주시설 예산 6224억, 탈시설 예산 24억, 장난치지 말라”고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 우리 집 앞에 리프트가 있는데 ‘엘리베이터 설치율 94%’가 무슨 소용입니까

대표님, 얼마 전부터 장애인 지하철 투쟁에 관심이 높아지셨더군요. 혹시 지방 선거 앞두고 표를 염려해 전략적으로 계획하신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평소에도 관심이 높았다면 왜 진작 해결책을 가지고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지위를 망각하고 SNS에 ‘사실이 아니면 말고’ 식의 의견을 올리는 게 재미있습니까?

사실 저는 안타깝게도 아침 지하철 투쟁에 참여를 못 했습니다. 제가 그 시간에 나가려면 활동지원사가 새벽에 우리 집에 와야 하는데 그 시간에 오는 게 어려워서 참여하고 싶어도 못 하고 있습니다. 영상으로만 보면서 ‘동지들이 경찰 혹은 시민들로부터 폭력을 당하면 어쩌지’라는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고 있습니다. 출근길이 아닌 낮에 지하철 투쟁을 해도 시민들에게 험한 욕설을 들어왔는데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단단한 마음으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설령 투쟁이 아니더라도 아침 일찍 여러 대의 전동휠체어가 지하철을 타는 것만으로 이미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제가 가끔 아침 일찍 출근할 경우, 지하철 탄 시민들은 단 한 칸의 공간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째려보며 다음 열차를 타라는 압박의 신호를 보내옵니다. 마치 이 공간은 네게 내어줄 수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출근길에 지하철 투쟁을 한다니요? 그건 ‘목숨 걸고 지하철을 타겠다’와 같은 다짐입니다. 단순히 불편함을 초래하기 위함이 아니라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지난 21년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장애인권리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절박함에서 시작된 마지막 투쟁 전술이었습니다.

대표님, 지하철 투쟁이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 비문명의 방식이라고 하셨나요? 비장애/남성/고학력/권력 등을 지닌 대표님은 우리가 하는 투쟁이 비문명화된 방식으로 읽히겠지만, 장애인들은 문명화된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어서 무엇이 비문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18년 1월 19일, 사고가 벌어진 현장에서 신길역 리프트 참사 1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사고가 일어난 리프트에는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책임을 촉구하는 종이들이 붙어 있으며, 리프트 발판에는 “살인기계 리프트 철거하라”는 손팻말이 놓여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18년 1월 19일, 사고가 벌어진 현장에서 신길역 리프트 참사 1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사고가 일어난 리프트에는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책임을 촉구하는 종이들이 붙어 있으며, 리프트 발판에는 “살인기계 리프트 철거하라”는 손팻말이 놓여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4%인데 왜 그렇게까지 하나고요? 나머지 6%의 리프트가 우리 집 근처 지하철역에 설치되어 있는데 94%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리프트 탈 때마다 고민합니다. 전동휠체어에서 착용하고 있는 안전띠를 풀고 탈지, 아니면 그냥 탈지 갈등합니다. 추락 시 전동휠체어에 묶은 채 떨어지면 더 다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느 비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혹여 죽거나 떨어질 것을 대비해 덜 다치는 방식을 고민할까요? 문명화된 비장애중심의 사회에서는 꿈에서조차 상상을 못 하겠지만, 비문명의 시대에 사는 저는 20년 동안 똑같은 고민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 탈시설에 대한 언론플레이는 정말 최악이었어요

대표님, 며칠 전에는 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간담회도 하셨다고요? 사실 이 영상은 보기 힘들어서 중간중간 쉬었다 보았습니다. 거주시설 이용자 부모님은 탈시설에 대한 염려로 반대하실 수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몇 년간 극심히 반대하셨고, 어머님은 늘 형제들한테 “내가 죽고 나면 시설에 있을 동생 가끔이라도 찾아가 봐라”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설에 가지 않고 이렇게 장애인에게 비문명인 시대를 바꾸는 활동을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활동지원제도가 있고 장애인도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빨리 마련되었다면 저희 부모님도 그렇게 오랜 시간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거주시설 이용자 부모님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무조건 시설에서 나와 사는 ‘탈-시설’이 아니라 개별 특성에 맞는 서비스와 제도가 지역사회 내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면 그 누구도 탈시설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표님은 이러한 부모님의 마음을 다르게 해석하고 지금까지 탈시설 운동했던 활동가들을 펌하하는 선전으로 매우 바쁘시더군요. 지역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탈시설 장애인의 이야기는 소거하고 실재하지 않은 소문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열심히 언론플레이 하시는 모습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지난 1일 오전 10시 30분, 이준석 대표와 이종성 의원은 국회에서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와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준석 대표. 사진 국민의힘 공식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캡처
지난 1일 오전 10시 30분, 이준석 대표와 이종성 의원은 국회에서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와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준석 대표. 사진 국민의힘 공식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캡처

- 가끔 고학력자들이 부러웠는데 제 편견 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교육권에서 배제당한 경험으로 가끔 고학력자들을 부러워했던 마음이 한 구석에 있었는데 이제 그 마음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선진 문명을 접하여 최고의 대학을 나왔어도 세상을 보는 눈이 한없이 좁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입장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대표님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편견을 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대표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동지들에게 절대 사과할 일이 없다고 하셨나요? 장애인인 저는 늘 일상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사과가 이렇게 무겁고 어려운 말인지 몰랐습니다.

누군가를 혐오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지요. 대표님은 사람들에게 혐오를 위해 용기내도 된다고, 잘나고 똑똑한 나도 그들을 혐오한다고, 혐오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이것만으로 사과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대표님은 아닌가 봅니다. 여성에 이어 장애인에 대한 혐오 선동을 이끄는 대표님이 저는 꼭 연쇄살인마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다음 대상은 누가 될까요? 저는 정말 너무 무섭습니다.

많은 시민이 손피켓을 제작해 장애인 지하철 시위 현장에 연대방문했다. 피켓에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 왜곡, 혐오 이준석 대표 발언 규탄합니다’, ‘대학생들은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 지지합니다’, ‘인수위는 장애인권리예산 반영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많은 시민이 손피켓을 제작해 장애인 지하철 시위 현장에 연대방문했다. 피켓에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 왜곡, 혐오 이준석 대표 발언 규탄합니다’, ‘대학생들은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 지지합니다’, ‘인수위는 장애인권리예산 반영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대표님, 저는 요즈음 대표님이 애정하시는 SNS를 잘 보지 못합니다. 대표님이 올리시는 글과 그 밑에 주렁주렁 달리는 혐오와 욕설 댓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찢겨 도저히 쳐다볼 자신이 없습니다. SNS에 달린 댓글들만 봐도 언제 어디서 나와 동료들이 혐오 범죄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장애가 올 것만 같습니다. 투쟁할 때도 혹여나 나의 피해를 막아주다가 동료들이 더 크게 다치진 않을까 걱정됩니다.

대표님은 사과할 일이 없다고 하셨지만 이미 사과로 끝날 일은 지난 거 같습니다. 약자를 짓밟고 일어서려고 했던 당신의 추악한 행동에 책임지는 일은 사퇴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약자는 숫자가 적어 약자가 되는 게 아니라 차별받아서 약자가 되는 겁니다.

이준석 대표님! 당신은 정말 나쁜 정치인입니다. ‘문명인’이라면 인권 감수성부터 배우시길 바랍니다.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멋진 글은 못 쓰지만,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인권운동이다. 비장애 중심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의 언어로 말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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