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어려움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 끊은 세 모녀
“특단의 조치” 취하겠다던 윤석열 정부
복지부는 ‘발굴’ 프레임 이어가고
기재부는 ‘부자 감세’ 내세워
“가난에 빠지는 경로 자체를 차단해야”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이 계속됨에도, 정부의 상황인식은 ‘발굴 실패’에만 머물러 있다. 게다가 긴축재정 기조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이에 시민사회계가 취약계층의 생존권을 외면하는 정부를 규탄하고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 등 66개 제시민사회노동종교단체들은 29일 오전 10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에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복지 인력과 예산을 확대하라고 촉구했다.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 수석부위원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손에 쥔 피켓에는 “취약계층 생존 보장, 정부가 책임져라!”고 적혀있다. 사진 이슬하

- 여전히 ‘발굴’ 운운하며 본질 비껴가는 정부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한 연립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월세방에서 발견된 A4 용지 9장 분량의 유서에는 ‘평소 지병으로 힘들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숨진 60대 어머니는 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40대 큰딸 역시 희귀질환을 앓고 있었다. 세 모녀는 생전 빚 독촉으로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수원 세 모녀 사건’을 언급했다. 지난 23일 윤 대통령은 출근길 기자단과의 문답에서 “복지정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면서 “중앙정부에서는 이분들을 잘 찾아서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이런 일들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통령으로서 어려운 국민들을 각별히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세 모녀가 복지급여를 신청하지 않은 탓에 ‘발굴’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해당 세 모녀는 생활고에도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 상담을 하거나 복지급여를 신청한 내역이 없다. 사각지대 발굴을 통해 주민등록상 거주지(화성)에 담당 공무원이 방문했으나 해당 가구가 살고 있지 않았고,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실제 거주지 관할 지자체인 수원시도 해당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복지급여 신청·상담 내역이 없어 사회보장시스템 내에 핸드폰 번호 등 연락처도 확보되지 않아 지자체가 추가적인 발굴 절차를 진행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는 “빅데이터 활용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에서 입수하는 위기정보를 9월부터 현행 34종에서 39종으로 확대하고,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제때 필요한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위기징후정보를 수집해 지자체에 알리는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2014년 2월 26일,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던 ‘송파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이 써진 봉투였다.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2014년 2월 26일,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던 ‘송파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이 써진 봉투였다.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 “발굴되더라도 지원받을 제도가 없다”

그러나 이런 ‘발굴’시스템은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지 못했다. 지난 4월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지병으로 숨진 채 발견된 ‘창신동 모자’는 공과금을 체납했지만, 집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제도 대상에 들지 못했다. 2019년 아사한 채 발견된 ‘관악구 모자’는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거주해 정보 수합 대상에서 빠졌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복지 사각지대 온라인 시스템은 이미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고 빈곤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대책도 아니다”라면서 “정부는 재산 기준 등 갖가지 까다로운 조건과 낮은 보장 등으로 다수가 공공서비스 혜택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막아낼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는커녕, 땜질식의 단편적인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발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발굴되더라도 지원받을 제도가 없다. 실거주지와 등록 주소지가 다른 사람이라도, 지원이 필요하다면 제도가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 ‘이사 가실 방법은 없나요?’라고 묻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 활동가는 빈곤을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채무 등으로 인해 연락을 끊거나 주소지를 이전하고 숨어버린다. ‘왜 숨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숨어 있는 사람을 ‘발굴’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면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의 질문은 ‘왜 이들을 발굴하지 못했나’였다. 바로 이 질문이 명백한 우문이었다. 이제는 ‘발굴’이라는 우문을 넘어 ‘가난에 빠지는 경로 자체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고 힘줘 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 ‘작은 정부’ 내세우는 윤석열… “사각지대 해소 못 해”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복지 인력과 예산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라도 재벌과 부자들의 세금을 더욱 확대하고 규제를 강화해야 하며, 나라의 곳간은 가장 고통받는 취약계층에게 전폭적으로 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2022년 세제개편안’에서도 법인세·종부세제 정비 등 ‘부자 감세’ 정책을 예고한 바 있다. 30일 발표될 ‘2023년도 정부예산안’ 역시 이런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부족해진 세수는 공무원 감축 등 긴축재정정책으로 충당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윤 대통령의 이런 계획이 복지 인력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했다.

전호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손에 쥔 피켓에는 “부자 감세, 긴축재정 말고 공무원 복지 인력 확대하라!”고 적혀있다. 사진 이슬하
전호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손에 쥔 피켓에는 “부자 감세, 긴축재정 말고 공무원 복지 인력 확대하라!”고 적혀있다. 사진 이슬하

전호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제도를 이용하려면, 찾아갈 공무원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공무원들이 업무 과중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인력 감축안을 내놓은 것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관련해 ‘찾아가는 복지전담팀’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에 “위기가구를 확인하는 것은 그동안 위기 정보를 확대함으로써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다고 본다”면서 “이번에는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지속해서 점검했는데, 위기가구 당사자가 아무 데도 신고하지 않고 옮겨버린 데 (원인이) 있었다”고 답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사회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먼저 살피는 것이 아니라, 배부르고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면서 “더는 기득권을 옹호하며 서민과 노동자들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복지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국민복지예산, 전면 확대하라!”고 적혀있다. 사진 이슬하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국민복지예산, 전면 확대하라!”고 적혀있다. 사진 이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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