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각지대, 발굴해야 한다”며 광범위한 정보 수집
까다로운 선정기준으로 ‘발굴’해도 복지 이용 불가능
빈곤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사회구조에 대해 질문해야

지난 24일 보도된 KBS 뉴스. 자막에는 “수원 세 모녀의 비극… 또다시 드러난 ‘사각지대’”라고 쓰여 있다. KBS 영상 캡처.
지난 24일 보도된 KBS 뉴스. 자막에는 “수원 세 모녀의 비극… 또다시 드러난 ‘사각지대’”라고 쓰여 있다. KBS 영상 캡처.

지난 8월 21일 수원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세 모녀가 남긴 유서에는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힘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들 가족의 아버지는 수년 전 사업에 실패하며 가족을 떠나고, 실질적으로 생계를 책임지던 큰아들을 2년 전 루게릭병으로 잃었다. 어머니는 암 투병을, 첫째 딸은 희귀질환을 겪었지만 이들은 채권 추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실제 살고 있는 거주지로 주소를 이전하지 않아 아무런 복지 제도를 이용할 수 없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빈곤층의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많은 이들이 ‘왜 발견하지 못했는가’를 질문한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직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있는 복지제도도 활용하지 못하면’ 안 된다며 적극적인 제도 홍보를 지시하고, 최동익 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아래 사회보장급여법)이 2014년 12월 제정됐다.

이는 두 가지 잘못된 사실에 근거하는데, 송파 세 모녀가 생전에 아무런 복지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믿음과 신청만 했더라면 복지 수급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송파 세 모녀는 복지제도 신청을 시도한 적이 있고, 신청했더라도 탈락하거나 안정적으로 급여를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 ‘발굴’해도 ‘제도’가 없다

잘 찾아서 지원하면 된다는 복지제도에 대한 기술주의적 해법은 사회보장급여법을 통해 광범위한 정보 수집을 가능하게 했다. 보건복지부는 사회보장급여법을 활용해 건강보험료, 수도·광열비, 부채 체납정보를 수집해 각 위기 상황에 대한 종합 점수표에 따라 고위험군을 선정하고, 이들 가구에 복지지원 연결을 시도한다.

참여연대와 최혜영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보건복지부는 온라인시스템을 통해 133만 9909명의 정보를 수집하고, 66만 3874명을 지원대상자로 꼽았다. 이들 중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긴급복지지원제도와 같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공적 사회안전망으로 편입된 경우는 단 7.3%, 4만 8275명에 그쳤다.

‘발굴’이 실패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공공부조의 선정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여전히 남아 있는 부양의무자기준, 낮은 재산기준과 강한 근로능력평가, 복잡한 가구구성기준은 고위험군으로 꼽히는 이들의 가난조차 외면하게끔 만들고 있다. 2014년의 송파 세 모녀도, 2019년 관악구의 탈북 모자와 2022년의 창신동 모자도 모두 복지제도 신청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부는 도움을 구하러 주민센터의 문턱을 넘는 이들의 사정을 듣는 일은 내팽개쳐 둔 채 정보의 개수만 늘려 ‘찾아내겠다’는 호언만 반복하고 있다.

지난 23일 발표된 복지부 보도자료. 복지부는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 체계 전반을 점검한다고 밝혔다.

- 발굴이라는 우문

송파 세 모녀는 임대료나 공과금을 체납하지 않았으니 지금의 발굴 방식에 따르면 결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창신동 모자는 공과금 체납에도 불구하고 집을 갖고 있어 복지제도 대상이 아니었다. 관악구 모자는 체납이 계속됐지만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어 정보수합 대상에서 빠졌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당연히도 ‘재개발 임대아파트도 정보 수합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었다.

발굴이라는 우문에 의해 정부는 사회복지통합전산망에 합하는 정보의 개수만 늘리고 있다. 한 바구니에 담은 부채를 비롯한 민감정보는 언제,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지 모르지만 ‘사각지대 발굴’이라는 대의는 무방비하게 정보만 모으는 것을 비판하기 어렵게 한다. 이를 통해 발굴하더라도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로 지원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나, 몇 개의 체납정보 합이 ‘누구의 빈곤이 더 심각한가’를 밝히는 기제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은 가려진다.

2017년 개정된 사회보장급여법은 본인의 동의 없이 부채나 신용에 관한 개인정보를 보건복지부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법이 개정되던 당시 사회단체들은 ‘문제는 발굴이 아니라 제도’라며 무분별한 개인정보 침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했으나, 성과지표에만 매달린 보건복지부 관료들과 감시의 의무를 저버린 국회는 위험한 개정에 찬성했다.

2019년 발간된 〈유엔(UN)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보고서〉는 광범위한 정보수집을 통한 자동화된 결정구조가 복지제도를 새로운 ‘디지털 디스토피아’로 만들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정부가 오로지 전산망에 잡히는 숫자를 보고 있는 사이, 가난한 이들은 전산망에 보이는 본인의 정보와 실제 생활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까다로운 선정기준에 부합하지 않지만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홀로 싸우고 있다.

지난 8~9일 내린 폭우로 반지하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사망하자, 시민사회단체는 16일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 앞에서 추모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의 모습. 
지난 8~9일 내린 폭우로 반지하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사망하자, 시민사회단체는 16일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 앞에서 추모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의 모습. 

- 환영 없는 복지의 관문 앞에서, 오래된 낙담을 끝내기 위해

이 시도는 대부분 실패한다. 복지제도를 신청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강조는 신청해도 받을 수 있는 복지가 없다는 현실을 가리고, 비극에 빠진 이들이 능동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암시하며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러나 이는 빈곤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불안정노동, 저임금, 경쟁적인 사회제도에서 긴 시간 경험한 좌절과 낙담, 단념은 빈곤이 가져오는 심리적 외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수급자가 되더라도 수급자로 사는 일 또한 어렵다. 복지수급자에 대한 냉랭한 시선, 까다로운 제도 운영 방식은 복지수급자의 자율성과 역능을 침범하고,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사회가 함께해줄 것이라는 사회 전체의 신뢰와 연대 의식을 파괴한다.

질문을 바꾸자.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것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채권추심 때문에 숨어버린 사람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고리의 대출로 꾀어내는 약탈적 금융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장애가 있거나 아픈 이들과 그 가족이 병원비와 돌봄에 압사당하는 사회를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지, 가난에 빠진 이들이 주민센터를 찾았을 때 최소한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빈곤을 발생시키는 사회구조를 전환하기 위한 질문에 나서야 한다.

빈곤철폐를 위한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빈곤층에게 ‘최소한’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역량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 복지제도를 발휘하겠다는 목표의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아니라 빈곤, 그 자체에 맞서야 한다.

*) [보도자료] 참여연대·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복지사각지대 온라인시스템 현황분석(‘16년~’21년) 결과발표, 2022.08.29.

* 필자 소개 _ 김윤영.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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