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고 거주 85만 6000가구… 수도권에 몰려 있어
지하 집값, 지상 1층의 70% 수준 “자력으로 지상 올라오기 어렵다”
예산 계획 없이 여전히 “실태조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정부

23일 오후 2시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은 지하주거 실태 및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강혜민
23일 오후 2시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은 지하주거 실태 및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강혜민

- 예견된 참사, 지옥고 실태 알고 있는 정부의 ‘대책 없음’

지난 8일 쏟아진 폭우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 3명(40대 발달장애여성, 여성노동자, 10대 여아)이 사망했다. 9일에는 동작구 반지하에 살던 50대 발달장애여성과 화성시 불법 가설건축물 컨테이너에 살던 40대 중국 국적의 이주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는 예견된 참사였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됐으나 그 때마다 정부와 지자체는 땜질식 처방만을 내놨을 뿐, 근본 문제에 대해선 침묵했다. 근본 문제란 비적정 주거를 둘러싼 불평등의 문제였다.

이번에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대책은 근본을 비껴갔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대책 중 하나로 지하주택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앞다퉈 발표했으나 정부는 이미 관련 자료를 갖고 있다. 2005년부터 통계청은 인구주택총조사에 거주층 문항을 추가해 지하, 옥탑 거주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또한 2020년 국토부는 주거실태조사를 통해 전국 지하주택에 거주하는 613가구(서울 363가구)의 자세한 생활실태를 파악한 바 있다.

23일 오후 2시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은 지하주거 실태 및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한국도시연구소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2005~2020)와 국토부의 주거실태조사(2020)를 분석해서 ‘지옥고’(지하, 옥탑, 고시원을 지칭)의 실태를 알리고 지금 당장 정부가 취해야 할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발제를 한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수해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정부는 실태조사를 할 때가 아니라 대책부터 마련할 때”라고 일갈했으나, 국토부 관계자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실태조사”라고 답해 현장과 커다란 온도 차를 보였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지옥고 거주 85만 6000가구… 수도권에 몰려 있어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옥고 거주 가구는 2005년 69만 5000가구에서 2020년 85만 6000가구로 크게 늘었다. 단, 지하에 거주하는 가구는 감소하고, 주택 이외의 거처는 증가했으며, 옥상에 사는 가구 수는 크게 변함이 없다. 지하 가구는 2005년 58만 7000가구에서 2020년엔 32만 7000가구로 줄었으나, 같은 기간에 주택 이외의 거처는 5만 7000가구에서 46만 3000가구로 대폭 늘어났다.

지옥고는 수도권 문제다. 2020년 기준으로 지하에 거주하는 95.9%(31만 3992가구)가 수도권에 산다. 이는 2005년 95.4%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수준이다. 서울에 20만 849가구(61.4%)가 살고 있으며, 경기도에 8만 8936가구(27.2%), 인천에 2만 4207가구(7.4%)가 산다.

지하주택은 대부분 단독주택(64.3%)과 다세대주택(31.7%)에 있다. 건축 연한도 30년 이상된 건물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열 곳 중 네 곳이 1990~1994년(40.4%)에 지어졌으며, 1989년 이전에 지어진 곳도 24.8%에 달한다.

반면, 2010년 이후 건축된 지하 거처 비율은 전국 3.4%, 서울 3.5%로 무척 낮다. 이에 대해 최은영 소장은 “이는 1999년 지하층 의무 설치 규정이 폐지되고 필로티 구조(지상 1층을 기둥으로 세워 개방시킨 구조)로 만드는 건물이 많아지면서 지하를 잘 안 만들기 때문”이라면서 “따라서 건축법 개정으로 지하 주택 신축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서울시 대책(지난 10일 발표)은 이번 재해의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하주택은 지상에 비해 주거비가 낮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면적은 넓다. 쪽방·고시원의 경우, 최저주거기준에 따른 1인 가구 최소 주거면적(14㎡)보다 좁은 데 반해, 지하 거주 가구의 평균 전용면적은 40㎡다. 그래서 고시원 등 다른 취약계층 거처보다 가족 단위 거주가 많다.

지하 거주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0만 4000원으로 전체 가구 월평균 소득의 약 60% 수준이다. 기초생활수급가구도 15.1%에 달한다. 지하에 거주하는 가구들은 월세(53.2%), 전세(22.1%), 자가(19%) 순으로 월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들은 채광, 환기, 방수 등으로 인해 ‘현재 거처에 전반적으로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불만족 비율은 40.2%로 전체 가구 12.8%보다 크게 높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신림동 사고 현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 제20대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신림동 사고 현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 제20대 대통령실 

- 주거품질 보장 안 되니 ‘빈곤 비지니스 자양분’ 되는 주거급여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 소장은 지옥고 문제 해결을 위한 주거복지 강화 방안으로 △주거복지 예산 확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및 취약계층에 대한 배분 강화 △주거급여 보장수준 확대 및 주거품질 연계제도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최 소장은 주거복지 예산 확보를 위해 “종합부동산세 인하를 막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철저히 시행하여 환수된 부담금을 취약계층 주거복지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옥고에 사는 86만 가구가 공공임대주택의 우선 정책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책은 없다. 우리나라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율(총주택 수에서 공공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기준 119만 호로 5.5%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에 공공임대주택 연평균 공급계획을 2025년까지 14만 호 공급하겠다고 했으나, 윤석열 정부는 대선 공약에서 공급계획을 10만 호로 축소했다.

최 소장은 “폭우 참사 이후인 지난 16일 ‘국민 주거 안정 실현 방안’에서 국토부는 향후 5년간 27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한다고 했으나 여기서도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신림동과 상도동 사망자가 주거급여 수급자라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 소장은 “이는 주거급여가 꼭 필요한 사람(주거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있으나 덜 지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면서 비현실적인 낮은 급여와 함께 주거급여 지원이 주거품질로는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비판했다.

올해 기준으로 서울에 사는 주거급여 수급자가 최대 받을 수 있는 돈은 32만 7000원이다. 그러나 이 돈으로는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없다. 게다가 정부는 주거급여 수급자가 쪽방에 살든, 반지하에 살든 신경 쓰지 않는다. 이로 인해 매년 주거급여가 인상되면 쪽방 관리자들은 그만큼 월세를 올려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거급여가 가난한 이들의 주거 상향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빈곤 비지니스의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최 소장은 “주거급여를 현실적으로 인상하고 대상자를 현행 기준중위소득 46%에서 6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면서 주거급여와 주거품질을 연계하는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소장은 “정부가 주거급여를 주면서 주거품질도 보장해야 하는데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 주거급여가 빈곤 비지니스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예산이 필요한데 현재 서울시와 국토부 대책에는 예산 계획이 없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주거복지 예산을 꼭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이강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강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지하 집값, 지상 1층의 70% 수준 “자력으로 지상 올라오기 어렵다”

이강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해서 월세를 전세보증금으로 환산해봤다. 그 결과, 지하주택의 전세보증금은 지상 1층의 70% 수준이었다. 이 변호사는 “주거 면적을 상당히 줄이지 않는 한 지하 거주자들이 자력으로 지상으로 올라가기는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단계적으로 지하 주택을 없애고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한다’는 서울시의 대책에 “큰 방향에는 동의하나 그에 걸맞은 구체적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서울시가 현재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 변호사는 “반지하 거주자들이 지상으로 옮겨 갈 경우, 돈이 없으니 비주택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이때 반지하보다 더 열악한 고시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오히려 거주자가 몰려 가격이 오를 수 있다”면서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짓지 않고서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선미 성북·종로주거복지센터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선미 성북·종로주거복지센터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지하주택 사는 이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물품 지원하며 개선해 나가야

대책 수립에는 장기적 방안과 함께 단기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공공임대주택 확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이지만 지금 당장 실현은 어렵다.

김선미 성북·종로주거복지센터장은 서울시가 ‘10~20년의 유예기간을 두고서 지하주택을 없애겠다’고 한 것에 대해 “이는 20년간은 지하주택에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고 짚으면서 지금 당장 필요한 구체적 대책을 제시했다. 김 센터장은 “지하주거는 습기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제습기 등 습기 제거를 위한 가전제품 지원으로 거주 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주거급여에 난방비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주거급여는 월세만 지원한다. 김 센터장은 “지하에 거주하는 분 중 습기로 장판, 벽지가 썩는 분들이 많다. 이를 교체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데 시공업자분들이 겨울철에 환기만 잘해도 이런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난방비 낼 돈이 없어 대부분 문을 꼭 닫고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보낸다”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로 현상으로 곰팡이가 생긴다. 충분한 환기를 위해서는 충분한 난방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난방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익진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익진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2005년부터 누적된 자료 있는데 여전히 “실태조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정부

현장에선 이렇게 장기적인 대책에서부터 지금 당장 시급히 이뤄져야 할 여러 요구가 쏟아졌지만 정부 관계자는 여전히 “실태조사가 가장 중요하다”며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이익진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과장은 “지원을 위해서는 한정된 재원 안에서 반지하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단 실태조사”라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정확히 진단해야 처방을 할 수 있기에 구체적인 주택공급 물량 계획은 없다”면서 “지하 가구 중 자가도 20%나 되고, 고소득층이 얼마나 되는지, 거주자 특성, 입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실태조사는 가급적 빨리 9월 초라도 착수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주거 재원은 기재부 등과 협의해서 좀 더 확대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은영 소장은 현장의 다급함을 전하며 갑갑함을 표했다. 최 소장은 “정부는 2005년부터 인구주택총조사를 통해 정확한 가구 규모를 알고 있고, 침수되는 지역은 지자체에서 다 파악하고 있다”면서 “물에 빠져 생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이렇게 미루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지금은 실태조사 할 때가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최 소장은 “지하주택 문제는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거기에 산다는 거다. 이들을 지상으로 옮기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산을 투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서 “지하뿐만 아니라 고시원도 있다. 지하에서 물난리 나면 대책 만들고 고시원에서 화재 나면 대책 만드는 분절적 대책이 아니라 취약계층에 대한 종합대책이 지금 제일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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