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차 삭발결의자 빈운경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3월 30일부터 매일 아침 8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삭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근처 지하철역 4호선 삼각지역 1-1 승강장(숙대입구역 방향)에서 진행 중입니다.

비마이너는 삭발 투쟁을 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투쟁결의문을 싣습니다.

빈운경 활동가가 삭발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빈운경 활동가가 삭발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삭발하는 빈운경 활동가. 사진 하민지
삭발하는 빈운경 활동가. 사진 하민지

안녕하세요. 강원도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빈운경입니다.

초등학생이던 90년대 말에는 국가 보장구 지원 사업에 전동휠체어가 없어서 매일 엄마 등에 업힌 채로 버스나 택시를 타고 등하교를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 ‘우리 아이도 비장애인 아이와 같이 교육을 받게 해 달라’고 겨우겨우 고개를 숙이셔서 학교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허리디스크라는 질병을 안고 살게 되셨습니다. 

전장연 선배가 이동권 투쟁을 시작한 지 1년쯤 되던 2002년, 제가 중학생이던 때부터는 전동휠체어 구입비가 지원돼서 전동휠체어로 학교에 다녔습니다. 등하교 중에 전동휠체어 배터리가 다 닳지는 않을까, 항상 전전긍긍하며 다녀야 했습니다. 저상버스가 진작 도입되었다면 그럴 일은 없었겠지요. 이처럼 비장애인 국민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장애인에게는 가족이 희생을 해야만, 비장애인은 하지 않는 걱정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삭발하는 빈운경 활동가. 사진 하민지
삭발하는 빈운경 활동가. 사진 하민지
빈운경 활동가가 삭발을 마치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빈운경 활동가가 삭발을 마치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좋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IMF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될 때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칩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도입된 2009년에는 충분히 우리의 모든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국가적 재정 수준이 아니었습니까. 그로부터 13년이나 지난 지금, 아직도 우리의 기본권은 보장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당연한 권리를 요구해야 하는 겁니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어야 할 이동의 자유와 교육받을 권리와 노동의 권리를 당당히 누리며 지역사회 안에서 진짜 국민으로서 살고 싶다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 국격에 맞는 충분한 요구입니다.

빈운경 활동가는 삭발을 마치고 지하철 투쟁을 진행했다. 사진 하민지
빈운경 활동가는 삭발을 마치고 지하철 투쟁을 진행했다. 사진 하민지
지하철 타기 투쟁 중인 빈운경 활동가. 사진 하민지

혹자는 말합니다. “이 정도면 나라가 장애인들 먹고살 만하게 해 주는 건데 뭐가 불만이냐”고.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가정이나 시설에 가둬 놓고 동정과 시혜 중심의, 그저 목숨 부지할 만큼의 급여만 주고 ‘우리는 할 만큼 하고 있다’는 태도가 문제라는 겁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에게 쥐어지는 동정과 시혜가 아닌, 우리가 직접 우리에게 맞는 이동수단과 교육 방법과 노동 방식을 권리로써 붙잡고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국가는 장애인 관련 예산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항상 미룹니다. 국가에서 계속 그렇게 나중으로 미루다가는 장애인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비효율성을 증폭해 국가와 지역사회에 되돌려주게 될 것입니다. 저희도 더 이상 그러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루빨리 장애인권리예산 편성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이상입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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