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국회 앞 농성장 ‘정부 예산안 싫어 대회’ 열려
반빈곤·노동·시민사회계, 정부 예산안 비판하는 릴레이 발언
“쪽방 주민, 장애인, 홈리스 권리보장 예산 확대하라”

25일 오전 9시 국회 앞 농성장에서 반빈곤운동단체와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릴레이 발언에 앞서 피켓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거권 지금 당장’이라 적힌 포스트잇이 모자에 붙어 있다. 사진 복건우
25일 오전 9시 국회 앞 농성장에서 반빈곤운동단체와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릴레이 발언에 앞서 피켓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거권 지금 당장’이라 적힌 포스트잇이 모자에 붙어 있다. 사진 복건우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이 진행 중인 25일 오전 10시, 반빈곤운동단체와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국회 앞 농성장에 모였다. 이곳은 지난 17일 ‘빈곤철폐의 날’을 맞아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을 저지하기 위해 세워진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이다. 윤석열 정부는 반지하 폭우 참사에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을 전년도 대비 28%(약 5조 7천억 원) 삭감한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장애인들은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단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현재 정부가 편성한 장애인 예산안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요구하는 권리예산보다 1조 5천억 원 적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우리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폭우 피해에서 드러났듯이 반지하·쪽방 거주자들의 피해가 많았다”면서도 주거환경을 위한 보증금 무이자 대출 신설, 민간임대주택 이주 지원금만을 나열했다. 장애인 예산과 관련해서도 장애인콜택시 이용자 확대, 저상버스 추가 등 이동권에 초점을 맞춘 선언적 이야기만 할 뿐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예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같은 시각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윤 대통령이 있는 국회 본회의장을 향해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을 비판하는 피켓팅 시위를 벌이고, 내년도 예산안을 규탄하는 릴레이 발언을 진행했다.

국회 앞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정부 예산안이 싫다”고 입을 모았지만, 그 삶의 궤적들은 제각기 달랐다. 누구는 1.5평 쪽방에 살며 그곳에 닿지 않는 최저 주거 기준과 주거권 보장을 외치고, 누구는 감옥 같은 시설 밖에서 살고 싶다며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 보장을 요구했다. 정부 예산안에서 지금껏 조명되지 못한 목소리들이 모여 이날 ‘정부 예산안 싫어 대회’의 문을 열어젖혔다. 비마이너는 이날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을 “반민생, 반복지 예산”이라 비판한 6명의 릴레이 발언을 싣는다. 부족한 내용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덧붙였다.

이날 릴레이 발언 첫 주자로 나선 남경남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는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을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 복건우
이날 릴레이 발언 첫 주자로 나선 남경남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는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을 강하게 비판했다. 사진 복건우

- 남경남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 : 가난을 없애는 정치를 해주십시오

“우리나라는 언제나 가진 자, 이기는 자, 부자의 편에 섰습니다. 부의 불평등과 빈곤 문제는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축소했습니다. 전년 대비 6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삭감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분양전환주택과 전세임대주택을 제외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에 훨씬 못 미치는 5%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 대열에 한참 밑도는 초라한 수치입니다. 정부가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계속해서 늘려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거 예산을 깎아버리면 더 많은 주거 약자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자유’라는 가치를 강조해왔습니다. 그것은 어떤 자유인가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할 수 있는 자유, 주거권을 보장하지 않는 자유는 아닌가요. 정부는 이제라도 복지 공약이 후퇴하는 것을 막고 빈민들을 위한 안전한 집을 만들어주십시오. 가난을 없애는 정치를 해주십시오.”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김호태 씨는 이날 국회를 향해 쪽방 주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확충을 요구했다. 사진 복건우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김호태 씨는 이날 국회를 향해 쪽방 주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확충을 요구했다. 사진 복건우

- 김호태 동자동 쪽방주민 : 쪽방에는 닿지 않는 제도

“집을 하나 얻어서 이사를 가려고 해도 임대료가 너무 비싸요.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집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 임대인이 전세 계약을 맺는 일도 허다합니다. 그런 집주인들은 세입자한테 전세금을 떼먹고, 세입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억눌려 살다가 결국 길거리로 쫓겨납니다. 정부는 이 구조적인 문제를 계속해서 방치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2월 제가 사는 서울역 동자동을 공공임대지구로 개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저희는 개발계획을 조속히 추진하라고 몸이 부서져라 뛰어다니며 거리로 나와 외쳤습니다. 그러나 공공개발 사업은 미뤄지기를 반복해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권을 보장하기는커녕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7천억 원을 도리어 삭감했습니다. 저희한테 대체 왜들 이러십니까. 쪽방 주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해주십시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홈리스가 시설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지역사회 주거중심 예산 확대를 국회에 요구했다. 사진 복건우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홈리스가 시설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지역사회 주거중심 예산 확대를 국회에 요구했다. 사진 복건우

-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 홈리스의 집은 시설이 아니다

“요새 TV를 보면 시설 문제가 많이 등장합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위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고공단식 농성을 했던 3년 전, 다들 기억하시나요. 일주일 전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선감학원 문제를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로 판단했습니다. 해방 이후 이러한 시설 문제들이 하나씩 불거지면서 최근 탈시설 흐름까지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홈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홈리스는 ‘적정한 주거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집이 없는 홈리스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려면 우선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집’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정부는 ‘시설에 들어가지 않는 홈리스가 문제’라며, 선후 관계를 완전히 뒤바꿔버립니다. 시설 중심 정책을 없애고 홈리스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시설 안에서 이들을 통제하고 표준화하려는 것이지요. 그 시설을 유지해 온 결과가 바로 형제복지원, 양지원과 성지원, 꽃동네로 이어져 온 우리나라 시설 수용의 역사입니다.

제가 2018년에 한 생활시설에 계신 분들과 일대일 면접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다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외출·외박을 해도 갈 곳이 없어요.’ ‘휴대폰이 있어도 전화할 사람이 없어요.’ ‘누가 데리고 나가줘야 나갈 수 있어요.’ 자유로운 삶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는 분들께 정부는 ‘시설에 들어가지 않는 너희들이 문제’라고 말하는 게 진정 맞습니까.

지난 6월 거리에서 노숙하다 임대주택을 신청하신 분이 계세요. 대기 번호 630번을 받으셨는데, ‘내가 죽기 전에 들어갈 수 있겠냐’고 무력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한 해에 120개씩만 공급하는 임대주택에 이분이 들어가려면 5년이 넘게 걸립니다. 그런데 올해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5조 7천억 원 삭감되고, 보건복지부 예산안에는 홈리스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립생활 예산 없이 시설 운영 예산만 편성되었습니다. 정부는 시설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지역사회 주거중심 예산을 확대해야 합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로 올라가려던 와중 경찰들에게 가로막혀 릴레이 발언에 참가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국회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로 올라가려던 와중 경찰들에게 가로막혀 릴레이 발언에 참가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국회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 휠체어가 막혀도 권리를 외치겠다

“오늘 릴레이 발언 시간에 맞춰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경찰들이 특별경호구역이라는 이유로 제 휠체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다른 시민들은 다 지나가는데 저만 이곳 엘리베이터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은 것인데요.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막은 인권침해라 생각합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부자들을 두툼하게 지원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처럼 촘촘하게 잘라낸 결과물입니다. 장애인권리예산(이동권‧평생교육‧노동권‧탈시설 예산)은 법으로 정해진 자연 증가분만 증액해 사실상 동결 혹은 삭감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일명 동료지원가 사업)의 경우 실적을 못 낸다며 효율성을 이유로 예산을 삭감해버렸습니다.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저희가 지난해 12월부터 지하철 선전전과 올해 3월부터 삭발 투쟁을 지속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약자를 지원한다고 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회는 우리가 21년간 외쳐 온 장애인권리예산을 두툼하고 촘촘하게 보장해주십시오. 저희는 오늘 대통령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서 예산 심의가 있을 때마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겠습니다. 내일부터 더는 지하철을 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날 국회를 향해 부자 감세가 아닌 민생 복지를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날 국회를 향해 부자 감세가 아닌 민생 복지를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 : 부자 감세 바깥에 있는 민생을 보아라

“저희는 10월 17일 세계 빈곤철폐의 날을 맞아 빈곤을 만드는 구조와 불평등을 계속해서 지적해왔습니다. 지난 여름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이 폭우로 목숨을 잃은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그런데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더 늘리지 않고 오히려 큰 폭으로 줄여버렸습니다. 민생 위기를 전혀 돌아보고 있지 않습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또 어떻습니까. 정부는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화가 가져올 영향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그저 기업의 편을 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쪽에서는 최저임금을 동결하고, 한쪽에서는 종부세를 내립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현행 25%에서 22%까지 더 낮춘다고 합니다. 정부는 부자 감세 기조에서 벗어나 민생을 위한 복지를 펼쳐야 합니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경제적 피해를 겪은 중소상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정부가 돌아봐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사진 복건우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경제적 피해를 겪은 중소상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정부가 돌아봐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사진 복건우

-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 정책과 예산의 주인은 시민이다

“윤석열 정부가 재벌 대기업에게는 감세를, 서민들에게는 고통을 안기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대형 플랫폼 기업의 갑질에 시달리며 광고비와 수수료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중소상인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누적된 자영업자들이 있습니다. 지금껏 지역경제를 지탱해 온 이들에게 정부가 안겨다 준 건 손실보상금도, 임대료 지원도 아닌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입니다. 민생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게 분명합니다.

코로나19를 지나오며 우리는 공공병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의료·보건 인력의 중요성도 확인했습니다.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라는 국민적 요구는 커졌습니다. 그런데도 복지 예산을 들여다보면 의료 공공성 강화는 없고, 의료 영리화 예산은 더 확대되었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취약계층 시민에게 예산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업과 부자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부여서는 안 됩니다. 모든 시민을 위해 정책과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주십시오.”

피켓팅 시위가 끝난 오전 10시, 반빈곤운동단체와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내놔라 공공임대’가 한 글자씩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인 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규탄하는 릴레이 발언을 진행했다. 사진 복건우
피켓팅 시위가 끝난 오전 10시, 반빈곤운동단체와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내놔라 공공임대’가 한 글자씩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인 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규탄하는 릴레이 발언을 진행했다. 사진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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