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와 쪽방주민, 청년 등 국회 본청 앞 기자회견 열어
“국회 예결특위, 공공임대예산 증액안 의결해야” 촉구
국민의힘, 공공임대예산 반대하며 국토위 의결 불참하기도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은 국회 예결특위에 공공임대주택 예산 상정액 전액 통과를 촉구하며 29일 오전 10시,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뒤에서 사람들이 “내놔라 공공임대”가 한 글자씩 적힌 대형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은 국회 예결특위에 공공임대주택 예산 상정액 전액 통과를 촉구하며 29일 오전 10시,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한 손을 앞으로 내미는 ‘내놔라 공공임대 챌린지’ 포즈를 취하며 “내놔라 공공임대”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이뤄지고 있는 국회 본청 계단 앞. 홈리스와 쪽방 주민, 청년, 주거취약계층의 주거복지를 지원하는 활동가들이 “내놔라 공공임대”가 한 글자씩 적힌 커다란 피켓을 번쩍 들어 올렸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여름 반지하 폭우 참사로 공공임대주택을 필요로 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음에도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7천억 원을 삭감한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주거·반빈곤·청년·복지시민사회단체는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아래 농성단)’을 꾸리고,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 복구를 요구하며 지난 10월 17일부터 44일째(29일 기준)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다.

국회 앞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 복구를 요구하며 지난 10월 17일부터 44일째(29일 기준)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다. 사진 강혜민 
국회 앞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 복구를 요구하며 지난 10월 17일부터 44일째(29일 기준)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다. 사진 강혜민 

농성단의 끈질긴 싸움으로 지난 2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아래 국토위)는 전체회의를 통해 정부가 삭감한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을 원상 복구하는 증액안을 의결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아래 예결특위)에 회부했다. 이번 주에 국회 예결특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의 감액안 심사가 끝나면,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비롯한 증액안 심의가 진행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공공임대주택 예산 증액 등에 반대하며 국토위 예결소위와 전체회의 의결에 불참했다. 국회에서는 예산을 증액할 때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의 동의가 필요하기에 여당인 국민의힘과의 합의가 중요하다.

이에 농성단은 국회 예결특위에 공공임대주택 예산 상정액 전액 통과를 촉구하며 29일 오전 10시,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홈리스행동 회원 김종언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홈리스행동 회원 김종언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국회 본청 앞에서 이어진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

이날 기자회견에선 공공임대주택을 애타게 기다리는 집 없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홈리스행동 회원인 김종언 씨는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에서 15년째 살고 있다. 그는 2002년 5월부터 노숙 생활을 했다. 과거 일했던 완구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다가 더는 견딜 수 없어 집을 나온 것이다. 거리 노숙 끝에 영등포 쪽방에서 살다가 2007년 9월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해 현재까지 살고 있다.

자활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일자리 특성상 연속성이 없다. 일이 없을 때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생활하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 빚을 갚는 식으로 삶을 이어 나간다. 그래도 주거가 안정되니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집도 4년 10개월 후엔 나가야 한다.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은 20년까지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4년 후엔 60대가 되는데 그때 스스로 집을 구할 자신이 없다. 여기서 나가게 되면 다시 쪽방, 고시원을 전전하게 될 것”이라면서 “(20년 살고 나가라는 것은) 임대주택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홈리스야학에도 임대주택 신청해놓고 ‘언제 되나’ 목 빼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LH는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나가야 집을 줄 수 있는데 빈집 나온 게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집이 없어 목매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정부가 임대주택예산을 깎는다는 게 말이 되나?”면서 “국회는 삭감한 5조 7천억 원을 원상복구하고 임대주택에서 사는 사람들이 오래오래 그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달라”고 말했다.

정대철 동자동사랑방주민협동회 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손에는 “정부·국민의힘 민생 예산삭감 시도 말라!”고 적힌 피켓이 들려 있다. 사진 강혜민
정대철 동자동사랑방주민협동회 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손에는 “정부·국민의힘 민생 예산삭감 시도 말라!”고 적힌 피켓이 들려 있다. 사진 강혜민

동자동 쪽방에 사는 정대철 동자동사랑방주민협동회 이사는 동자동 쪽방을 둘러싼 재개발 문제를 이야기하며 “공공임대주택 예산 확보와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주택사업은 주거복지를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쪽방 주민들은 월 30만 원에 이르는 월세를 내면서도 40~50년이 넘은 낡은 건물의 1.5평도 안 되는 방에서 제대로 된 취사시설도 없이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며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2월,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공공주택사업 계획이 발표되자 주민들은 크게 환호했다. 그러나 동자동에 토지와 건물을 가진 이들은 공공개발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며 민간개발 추진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건물주 눈치를 보는 바람에,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표류하고 있다.

정 이사는 “도저히 쪽방에 살 수 없는 주민들은 임대주택을 신청하기도 하지만, 영구임대는 물량이 워낙 적어 오래 기다려야 하고, 설령 갈 수 있다고 해도 지금 사는 동자동과 멀리 떨어져 이사를 포기하기도 한다”면서 “어렵게 마음먹고 이사를 결정해도 이사비 지원이나 물품 지원도 예산이 다 소진되어 지원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정 이사는 “안정된 삶을 위해 주거문제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주거복지는 국민 복지의 시작”이라면서 “전국 최대의 쪽방촌인 동자동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사업과 공공임대주택 예산 확보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국회 예결특위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상정액 전액 통과시켜라!”고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국회 예결특위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상정액 전액 통과시켜라!”고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공공임대예산에 ‘정치예산’ 딱지 붙인 국민의힘과 보수언론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들은 민생예산을 ‘정치예산’으로 딱지 붙인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강하게 분노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국민의힘은 국토위에서 통과된 안에 동의할 수 없다며 다시 국토위에서 재논의하라는 몽니를 부리고 있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우리가 힘겹게 싸워 민주당이 목소리 내게 만들어놨더니 이것을 ‘이재명표 예산’이라는 정치적 딱지를 붙여 ‘윤석열표 분양임대 예산과 이재명표 공공임대 예산이 싸우고 있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놨다”면서 “공공임대예산은 정치예산이 아니다. 공공임대주택 600번 대 대기순번을 받고 ‘살아생전 들어갈 수는 있을까’ 기다리는 우리들, 반지하와 고시원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주거취약계층의 예산이다. 이 예산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기자회견 참가자가 “반지하 참사 벌써 잊었나?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7천억 삭감 반대한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기자회견 참가자가 “반지하 참사 벌써 잊었나?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7천억 삭감 반대한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강지헌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은 “삭감한 예산 중 가장 기만적인 예산이 바로 공공임대주택 예산이다. 윤석열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지하 참사 현장에서 주거취약계층의 주거환경 개선을 약속하지 않았나”라면서 “이사비 쥐여 주며 반지하를 금지하는 것이 해법인가. 반지하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어디 가서 살아야 하나.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하고, 이렇게 내몰린 사람들은 옥탑방과 고시원 등 더 열악한 비적정 주거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규탄했다.

국회 국토위 소속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 또한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국토위 논의 결과를 존중해서 국토부와 기재부는 공공임대예산 증액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면서 “국회 예결특위 의원들에게도 특별히 부탁한다. 민생을 생각한다면 공공임대예산을 1순위로 증액 의결해달라”고 호소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국토위 통과한 공공임대 예산 전액 의결!”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국토위 통과한 공공임대 예산 전액 의결!”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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