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공공임대주택 예산 이례적 대폭 삭감
국토부는 물량 17만 채에서 10만 5천 채로 줄여
공공임대주택 입주 대기자만 14만 명… 턱없이 부족
공공임대농성단 “가난한 사람의 집, 되돌려 놔라” 농성 시작

천막과 지지대를 압수하려는 경찰. 활동가들(오른쪽)이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사진 하민지
천막과 지지대를 압수하려는 경찰. 활동가들(오른쪽)이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사진 하민지

빈곤사회연대 등 반빈곤운동단체들이 17일 오전 10시 30분경, 국회 앞 기습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저지를 위한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아래 공공임대농성단)’을 결성하고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와 의결이 진행될 연말까지, 국회에 공공임대주택 및 주거복지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빈곤철폐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중 기습적으로 농성장 설치를 시도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경찰 수십 명이 뛰어들어 “사람 뜯어내”라고 하며 농성장 설치를 폭력적으로 막아섰다. 경찰은 천막과 지지대를 압수했으나 활동가들이 달려가 되찾아 오는 등 승강이 끝에 농성장이 설치됐다. 농성장이 세워진 지 30분도 안 돼 철거계고장이 붙었다.

지지대를 펼치는 활동가들. 우여곡절 끝에 농성장을 세울 수 있었다. 사진 하민지
지지대를 펼치는 활동가들. 우여곡절 끝에 농성장을 세울 수 있었다. 사진 하민지

이들이 빈곤철폐의 날에 농성을 시작한 건 윤석열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달 2일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을 보면 공공임대주택은 전년 대비 28%, 약 5조 7천억 원이 삭감됐다. 지난 8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주거취약계층인 반지하 거주자들이 사망한 걸 생각하면 공공임대주택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성이 높다.

그럼에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을 감행했다. 국토교통부는 예산을 삭감하며 공공임대주택 목표 물량을 17만 채에서 10만 5천 채로 줄였다. 지난 6월 기준으로 공공임대주택 입주 대기자는 14만 명으로 추산된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6만 5천 채나 줄인 것이다.

농성장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내놔라!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7천억’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농성장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내놔라!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7천억’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이로 인해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의 규탄이 쏟아지고 있다. 김수흥·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정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직무대행에게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이 LH와 협의된 거냐고 물었지만 이 직무대행은 침묵했다. 공공임대농성단은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33년 역사를 부정했다. 주거복지의 근간을 흔드는 잔인한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농성장 앞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하민지
농성장 앞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하민지

이처럼 비판론이 우세하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6일 국정감사에서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예산을 대폭 축소해 놓고 어떻게 늘린다는 걸까.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공공‘분양’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을 ‘공공’이란 이름으로 뒤섞어 수치를 부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공분양주택은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정부가 국민에게 판매하는 집이다. 즉, 공공분양주택은 정부의 수익사업 수단 중 하나다.

실제로 LH는 지난 6월, 국토부에 ‘국공유지에 공공분양주택 건설 특례를 신설해줄 것’을 건의했다. 현행법상 국공유지에는 임대주택 건설만 가능하다.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은 지난 4일 국정감사에서 이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심 의원은 “LH는 주거약자를 위한 공공임대 정책을 축소하고, 공공분양 공급을 통한 수익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며 “서민은 신림동 반지하 참변을 비롯해 ‘지옥고(반지하·옥탑·고시원)’에 시달리는데 이를 개선해야 할 책무가 있는 LH는 집 장사, 땅장사만 한다”고 질타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은 항상 ‘자유’를 강조한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에 가난한 사람들이 주거불안에서 벗어날 자유는 없다. 우리는 윤석열 정부에 빼앗긴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 오늘(17일)부터 농성을 시작한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빼앗았다”라며 “반지하에 사는 주거취약계층은 폭우와 화재로 사망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 얼굴들이 보이지 않는가. 국회를 드나들며 이 농성장을 볼 국회의원에게도 경고한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되돌려 놔라”라고 성토했다.

김혜미 용산정비창개발의공공성강화를위한공대위 위원장도 “폭우, 폭염, 폭설 등 극한 기후재난 시대에 누구나 안전한 집에 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게는 이게 최우선의 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대철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업이사(왼쪽),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오른쪽)가 면담요청서를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정대철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사업이사(왼쪽),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오른쪽)가 면담요청서를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공공임대농성단은 기자회견을 끝내고 여야 정당 대표와 원내대표에 면담요청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매일 오전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국회 정문 앞 1인 시위 등 선전전, 매주 수요일 5시에는 문화제와 강연 등을 하기로 했다. 오는 19일과 20일에는 연달아 기자회견을 연다. 25일에는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정부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는데, 공공임대농성단은 윤 대통령 연설 시간 동안 릴레이 시민 발언을 이어갈 예정이다.

국회 앞에 설치된 농성장. 사진 하민지
국회 앞에 설치된 농성장.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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