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장차연, 기자회견 열고 달성군청 기습 점거
한사랑마을 장애인 학대 4건 확인… 재발방지대책 촉구
최재훈 달성군수 ‘탈시설 지원 시범사업’ 구두 약속

2010년 6월 5일 개원 당시 한사랑마을 외관. 사진 한사랑마을 누리집

지난해 7월, 대구 달성군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 한사랑마을(사회복지법인 우함복지재단)에서 중증장애인이 사망했다. 당시 시설에서 일하던 사회복지사 전 아무개 씨는 30대 지적장애인 여성인 김 아무개 씨가 다른 장애인의 양말을 벗기려 한다는 이유로 그를 휠체어에 태워 벨트를 채운 뒤 문틈에 고정시켰다. 10분 뒤 김 씨는 휠체어 벨트에 목이 졸려 실신해 쓰러졌고, 두 달 뒤 입원 치료 도중 끝내 숨졌다.

대구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따르면 피해자 김 씨는 해당 시설에서 10년 넘게 거주한 무연고자로, 벨트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무호흡 상태에 빠지는 참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구장차연)는 3일 오전 11시 달성군청 2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사랑마을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에 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달성군에 촉구했다. 이어 군수실이 있는 3층을 기습 점거한 뒤 군수가 면담에 응할 때까지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달성경찰서 앞에서 달성군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 사망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다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누리집
지난 8월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달성경찰서 앞에서 달성군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 사망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다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누리집

- 장애인 학대 반복한 한사랑마을… 확인된 인권침해만 4건

지난해 사망 사건이 있은 뒤, 올해 들어 대구장차연은 한사랑마을 원장과 과장, 우함복지재단 대표, 가해자 전 씨를 달성경찰서에 고발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복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대구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도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장애인복지법이 아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해 가해자 전 씨를 검찰로 넘겼다. 이에 장애인 사망 사건의 원인을 시설의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가해자 개인의 예외적인 일탈에서 찾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재판 중 피해자 김 씨가 사망하면서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상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지난 9월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5형사단독 김옥희 판사는 전 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를 두고 장애계에선 “사람이 죽었는데도 재판부가 솜방망이 판결을 내렸다”고 반발했다.

이곳에서 발생한 학대와 폭력은 사실 오랜 기간 반복되어 온 문제다. 2014년부터 2021년 7월까지 한사랑마을에서 공식적으로 드러난 학대 사건만 총 4건이다. 모든 사건에서 가해자는 시설 종사자이고, 피해자는 한사랑마을에 거주하는 장애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3일 오전 11시 달성군청 2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사랑마을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달성군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3일 오전 11시 달성군청 2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사랑마을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달성군에 촉구했다. 사진 복건우

국가인권위원회는 2014년과 2015년 발생한 두 사건이 장애인복지법을 위반한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시설장에게 가해자 징계를 비롯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권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행 계획 역시 지금껏 나오지 않고 있다.

대구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지난해 사망 사건에 대한 민관합동 실태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2020년 발생한 학대 의심 사례 하나를 추가로 확인했다. 이 사건은 경찰 수사 이후 검찰의 기소로 이어졌지만 지난 1월 100만 원의 벌금형에 그쳤다.

시설 내 학대 행위가 수면 위로 드러났는데도 달성군은 사실상 문제 해결에 손을 놓고 있었다. 2020년과 2021년 발생한 두 사건에 대해 학대신고의무위반으로 과태료 200만 원을 부과한 게 전부다. 서영화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부회장은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행정처분에 그치지 않고 이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달성군청 3층 군수실 앞 로비에 발달장애인 사망 사건을 규탄하고 탈시설 지원 계획을 촉구하는 벽보가 붙어 있다. 사진 복건우
달성군청 3층 군수실 앞 로비에 발달장애인 사망 사건을 규탄하고 탈시설 지원 계획을 촉구하는 벽보가 붙어 있다. 사진 복건우

- 장애계 “지역사회 탈시설 지원 계획 수립하라”

이날 장애계 활동가들은 달성군청 2층 로비에 모여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과 함께 탈시설 지원 계획을 수립하라고 달성군에 촉구했다.

노금호 대구장차연 공동대표는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인권침해가 불거진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달성군에 있는 시설에서 또다시 비슷한 학대 정황이 발견됐다.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시설에서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잘못된 시설 정책을 없애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명애 대구장차연 공동대표 역시 “장애인이 평생을 시설에서 살다가 억울하게 죽음에 내몰리지 않도록 달성군은 구체적인 탈시설 자립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군수와의 면담 자리를 마련하라”고 했다.

노금호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달성군청 2층 로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노금호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달성군청 2층 로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서울 각지에서 대구로 모여든 장애인 활동가들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군수실이 있는 3층 로비를 기습 점거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13명을 비롯한 20여 명의 활동가들은 한 명씩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이어갔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장애인들은 지금도 감옥 같은 시설에 갇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달성군수는 조속히 면담에 응해 재발 방지를 위한 확실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계는 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탈시설 자립지원 계획을 종합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 학대 및 사망 사건은 장애인을 집단적으로 관리하는 시설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대구장차연은 달성군 내 장애인 거주시설에 대한 민관합동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지역사회 탈시설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라는 내용의 요구안을 발표했다.

현재 달성군은 대구시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자립생활주택을 포함한 탈시설 지원 정책이 모두 부재한 상황이다. 자립생활주택은 탈시설을 희망하는 장애인이 일정 기간 거주하며 지역사회를 체험하는 주거 형태를 말한다.

- 달성군수 “탈시설 지원주택 및 24시간 돌봄지원체계 마련하겠다”

대구장차연은 이날 최재훈 달성군수와 면담이 성사될 때까지 무기한 농성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굳게 닫힌 군수실 문 앞에는 ‘장애인 인권침해시설 엄중 조치하라’ ‘중증발달장애인 24시간 공공책임돌봄 실시하라’ 같은 말이 적힌 벽보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장애계는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달성군청 관계자와 면담한 뒤 탈시설 계획을 비롯한 7가지 요구안을 전달했지만, 달성군청은 “검토해보겠다”는 짧은 답변을 내놓았다고 대구장차연은 전했다.

최재훈 달성군수가 군수실 앞에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에게 조건부 면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 복건우
최재훈 달성군수가 군수실 앞에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에게 조건부 면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 복건우

최 군수는 농성이 시작된 지 3시간 만에 군수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 군수는 “탈시설 여부를 결정하려면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벽보를 모두 철수한 뒤 대구지역 대표단만 들어오신다면 대화에 응하겠다”고 조건부로 면담 의사를 밝혔다.

현장에 있던 활동가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형숙 회장은 “7개월 동안 답변을 내놓지 않으셨는데 이렇게 대화에 조건을 붙이는 건 인권침해라는 위급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원론적인 입장”이라 맞받아쳤다.

경찰들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3층 군수실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들의 이동을 막아섰다. 사진 복건우
경찰들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3층 군수실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들의 이동을 막아섰다. 사진 복건우

같은 시각 경찰들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면담이 진행 중인 3층 군수실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들의 이동을 막아섰다. 활동가들은 군수실 문 앞을 휠체어로 막아서며 앞선 장애계의 요구안을 면담에서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1시간가량 면담이 끝난 뒤 대구장차연 공동대표단과 최 군수는 군수실 앞에서 면담 결과를 설명했다. 최 군수는 “관내 시설에 사는 장애인 중 탈시설 의지가 있는 분들을 조사해 탈시설 지원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내년 상반기까지 자립생활주택을 확보하고, 활동지원을 포함한 최중증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주리 다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오늘 면담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군 차원의 확답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며 “이날 약속한 내용이 내년도까지 잘 추진될 수 있도록 군청과 지속적으로 소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면담이 끝난 뒤 정주리 다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이 2층 로비에서 농성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면담이 끝난 뒤 정주리 다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이 2층 로비에서 농성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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