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7일 264일 차 혜화역 지하철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아침 8시 혜화역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 강혜민
아침 8시 혜화역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 강혜민

혜화역 5-4 앞 승강장. 휠체어 탄 사람들 양옆으로 사람들이 서 있다. 이날은 여섯 명의 휠체어 이용 활동가와 스무 명의 비휠체어 이용 활동가들이 선전전에 참석했다. 그들은 바닥에 그어진 노란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들 양옆으로 날개처럼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사람들이 펼쳐져 서 있다. 경찰은 45명 정도, 지하철 보안관을 비롯한 공사 직원은 스무 명 남짓 나왔다. 일흔 명이 안 되는 숫자지만,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의 두 배는 훌쩍 넘는다. 전날보다 경찰 인원이 많아졌다.

8시 8분, 사회를 맡은 박철균 전장연 활동가가 마이크를 잡는다. 이날 아침 선전전에 온 시민들을 소개하며 말한다. “매일 아침을 뚫고 선전전을 하는데 연대가 혐오보다 강하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말한다. “오늘은 지하철 보안관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초반부터 우리와 내내 함께하고 있는데, 보안관들과 진짜 싸우기 싫습니다. 우리 휠체어 망가뜨리고 끌어내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앞에 있던 지하철 보안관이 이규식이 말하는 동안 내내 지켜본다.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17분,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활동가가 말한다. “이태원참사 분향소 옆에서 신자유연대가 혐오를 쏟아내며 2차 가해를 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은 이를 막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는 원천봉쇄합니다. 유가족을 혐오하고 괴롭힐 자유는 있지만,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고 권리를 요구할 자유는 가로막히고 있는 것입니다.”

8월 24분, ‘읽기의집’에서 장애학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참석한 고병권이 말한다. “10년 전 뉴욕에서 월가 점령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때 본 장면 하나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경찰이 도로로 내려오면 체포할 거라고 했는데도 한 시민이 도로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인도 쪽을 향해 손을 내밀자 그때 다른 사람이 그 손을 잡았습니다. 우리 힘의 정체가 거기 있구나, 그때 깨달았습니다.”

읽기의집, 노들장애학궁리소 등에서 활동하는 고병권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읽기의집, 노들장애학궁리소 등에서 활동하는 고병권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고병권이 그와 함께 장애학 책을 읽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 중 한 사람이 나와 미국 장애인권운동가 쥬디스휴먼의 책을 읽은 이야기를 나눈다. “버스에 올라탈 수 없는데 어떻게 세상에 올라타겠는가.” 50년 전, 미국에서 장애인권운동할 때 외쳤다던 그 구호를 그가 사람들 앞에서 외친다.

8시 27분,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쏟아진다. 사람들이 노란선과 노란선 사이를 바쁘게 채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고개를 숙이고 걷거나 이어폰을 꽂고 걷는다. 노란선 안쪽에는 선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발언하는 사람과 이를 듣는 사람들 사이는 인파로 채워졌다가 비워지기를 반복한다.

8시 35분,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가 말한다. “대선 후보들이, 인수위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약속했다면 우리는 정말 멈췄을 겁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시작한 지하철행동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기획재정부와 정부의 무책임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이 사람들의 승하차를 지원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이 사람들의 승하차를 지원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41분, 지하철 보안관이 그 자리에서 앉았다가 일어나며 다리 스트레칭을 하고 하품을 한다. 보안관들의 가슴에는 이름이 없다. 명패는 모두 가슴팍 깊숙이 숨겨져 있다.

자신을 “장애인운동을 잘 알지도 못하고, 시민단체 활동가도 아니며, 단지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소개한 시민이 말한다. “다른 시민이 불편하니 지하철행동을 그만하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도 돈 때문에 타인에게 삶의 중요한 가치를 내놓으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고병권이 고개를 끄덕인다.

8시 52분, 파주 시민 정윤상은 오늘도 나왔다. 오늘로 세 번째 참여다. 그는 “우리 어머니도 전장연을 지지한다”는 말로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을 준다.

김포에 사는 장세현 씨가 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를 부르기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포에 사는 장세현 씨가 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를 부르기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여기가 서울에서 가장 따뜻한 곳 같습니다.” 그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 김포 사는 장세현도 오늘 세 번째 참석이다. 이곳에 오기 위해 아침 6시에 길을 나섰다. 그는 지난번에 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 노래를 몰라서 따라 부르지 못했다며, 그 노래를 집에서 연습해왔다. 빠바밤빠밤- 노래 시작을 알리는 트럼펫 소리가 승강장을 가득 채우자 이곳의 공기가 1도 정도 올라가는 듯하다.

수십 년 세월을 골방에 갇혀 시설에 처박혀 / 차별과 억압 피눈물 속에 살아온 동지여

자 이제 울타리 깨부수고 세상을 향하여 / 장애인차별철폐투쟁 깃발을 올렸다

아 개 같은 세상의 시계를 멈춰라 / 차별과 착취없는 장애해방 그날을 향해

승강장에 있던 사람들이 ‘팔뚝질’을 하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장세현은 마이크를 잡고 열창한다. “아 개 같은 세상”에서 목소리에 좀더 힘이 들어간다. 그를 바라보는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의 눈은 초승달처럼 귀엽게 휘었다.

장세현이 “2절도 할까요?” 물으며 2절까지 완창한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이 크게 박수치며 환호를 보낸다. 그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투재애앵!”이라고 외친다. 그의 팔이 하늘로 쭈욱 뻗는다.

장세현 씨가 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를 부르자 이형숙 회장이 ‘팔뚝질’을 하며 기분 좋게 웃고 있다. 사진 강혜민
장세현 씨가 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를 부르자 이형숙 회장이 ‘팔뚝질’을 하며 기분 좋게 웃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57분, 이형숙이 말한다. “연대하는 사람들이 매일 이렇게 찾아와서 264일 차까지 숫자가 잘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심한 감기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꼭 받아내야겠다는 듯, 그는 코맹맹이 소리를 밀어내며 사람들에게 두 차례 묻는다. “우리 20일에 오이도역에서 만날 수 있겠죠?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여러분, 우리 오이도역에서 만날 수 있겠죠?” 사람들이 힘있게 “네!”라고 답한다.

전장연은 오는 20일,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22주기를 맞아 오이도역과 서울역 등에서 지하철행동을 할 예정이다. 9시 3분, 264일 차 혜화역 선전전이 끝났다.

이형숙 회장이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형숙 회장이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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