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6일 263일 차 혜화역 지하철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혜화역 승강장(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향) 5-4. 벽면에 있는 혜화역 표지판에는 “서울교통공사. 미승인·불법 부착물 부착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 주변 벽면에는 비용을 이유로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지 않는 기획재정부를 규탄하는 전장연 T4선전물이 있다. 사진 강혜민
혜화역 승강장(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향) 5-4. 벽면에 있는 혜화역 표지판에는 “서울교통공사. 미승인·불법 부착물 부착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 주변 벽면에는 비용을 이유로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지 않는 기획재정부를 규탄하는 전장연 T4선전물이 있다. 사진 강혜민

“21년 외쳤다. 이제 차별 그만해.” 아침 8시 4분,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포개어진 노래가 혜화역 승강장을 가득 채운다. 노래가 끝나고, 박미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활동가가 마이크를 잡는다. 혜화역 선전전 사회를 도맡았던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이날 몸이 아파서 참석하지 못했다.

박미주가 말한다. “지난 1월 2일, 저희는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13시간 넘게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이 있습니다. 그날의 목소리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 호소문을 읽으며 이 시간을 열겠습니다.”

8시 10분,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한다. “지하철행동은 ‘세상에서 목소리가 없다고 여겨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세상,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실천이자 저항입니다. 시민 여러분, 23년 새해는 탐욕스러운 ‘권력 투쟁’에 강요된 각자도생보다 권리를 향한 ‘연결과 관계의 공간’을 내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이날 선전전에는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활동가 15명, 휠체어 이용 활동가 3명(이형숙, 이규식, 배재현)이 참석했다. 경찰은 15명 남짓,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에선 35명 정도가 현장에 나왔다.

조희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아래 전장야협) 활동가가 바닥에 앉아 페이스북 중계를 한다. 삼각대에 꽂아 놓은 핸드폰의 높이가 앉은키보다 높아서 고개를 들고 중계화면을 봐야 한다. 무릎까지 오는 두툼한 검은 롱패딩을 입은 다큐인 박명훈 활동가는 바로 서서 카메라를 들고 있다. 렌즈를 통해 현장을 보느라 바로 선 자세에서 고개를 약간 숙여야 한다.

백현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백현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백현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스프링 노트에 손수 발언문을 적어왔다. 8시 12분, 그가 말한다. “시민 여러분, 전장연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왜 차별받아야 합니까. 우리는 차별받기 싫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꼭 정중하게 사과하십시오. 사람 때리고 다치게 하고 휠체어 부서지게 하는 것에 대해 너무 화가 납니다. 저는 아침마다 지하철 선전전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전장연이 왜 선전전하는지 들어보고 응원해주십시오. 미워하지 마십시오.”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들이 크게 환호를 보낸다.

8시 20분,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이 말한다. “방금 활동가분께서 ‘전장연 미워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셨는데 그 미움은 누가 키웠습니까. 언론이 키웠습니다. 언론은 인권감수성을 높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언론이 스스로 만든 신문윤리실천요강에는 차별과 편견 금지 조항, 사회적 약자 보호 조항이 있습니다. 지금 언론은 자신이 가진 책무를 모르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이 선다. 문이 열린다. 공사 직원이 왼손을 좌우로 움직이며 승강장에 선 시민들에게 이쪽으로 지나가도 된다고 손짓한다. 문이 닫히고 지하철이 떠난다. 김언경의 발언은 계속 이어진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는 강희석 나야장애인인권교육센터 활동가가 서 있다. 사진 강혜민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는 강희석 나야장애인인권교육센터 활동가가 서 있다. 사진 강혜민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하거나 중계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 강혜민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하거나 중계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 강혜민

현장에는 네 대의 카메라가 있다. 전장연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 다큐인 박명훈 활동가, 뭉클 활동가, 그리고 시사발전소 기자. 시사발전소 기자는 유튜브를 통해 현장 생중계를 하고 있다. 8시 31분, 시사발전소 라이브에는 8명이 접속해 있다.

8시 34분, 하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가 말한다. 그는 장애인권리예산 투쟁이 반자본주의 투쟁과 맞닿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8시 37분, 열차가 온다. 문이 열린다. 공사 사람들이 손에 쥔 빨간봉을 천장을 향해 올리며 흔든다. 열차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몇몇 사람은 승강장에 울려 퍼지는 마이크 소리에 몸을 빼꼼 빼서 쳐다본다. 문이 닫힌다. 열차가 떠나간다. 스크린도어 앞에 서 있던 보안관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한다.

한 남성이 자신을 경기도 분당에서 온 시민이라고 소개하며 “여기에 있으면 되는지” 기자에게 묻는다. 기자는 현장에 있던 활동가에게 이를 알린다. 유금문 전장야협 활동가가 시민을 반갑게 맞이하며 그의 목에 피켓을 걸어준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대표가 말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대표가 말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시 41분,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대표가 말한다. “장애인이 많이 듣고 살았던 말 세 가지를 장애여성공감에선 ‘삼마이론’이라고 합니다. 바로 ‘하지 마, 가지 마, 먹지 마’입니다. 하지 마는 행위를 통제하는 말이고, 가지 마는 이동을 통제하는 말, 먹지 마는 욕망을 통제하는 말입니다. 이동하지 말라(가지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인권침해이지만, 자기 의지와 선택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이는 인간 존엄을 탄압하는 행위입니다.”

열차가 오는 알림음이 들린다. 지하철 보안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손목을 보여주며 다른 한 손으로 다른 사람의 손목 두께를 잰다. 지하철이 서고 문이 열린다. 사람들이 열차에서 내리자, 보안관은 뒤늦게 빨간봉을 위로 올려 수신호를 보낸다.

‘분당에서 온 시민’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분당에서 온 시민’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분당에서 온 시민’이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당연히 이동하고 공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장애인도 똑같은 시민인데 왜 이 당연한 것들을 할 수 없습니까!” 목소리의 떨림이 커진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에 그가 몸을 돌리자, 활동가들이 박수와 환호로 응원을 보낸다.

자신을 “연극하는 김은지”라고 소개한 시민이 말한다. “지난주부터 선전전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목구멍으로 뜨거운 게 올라오는데 아직은 그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8시 55분, 유금문이 “아침마다 성경 구절처럼 『유언을 만난 세계』를 낭독하고 있다”고 재치 있게 운을 떼며 박기연 열사 편(박희정 기록) 한 구절을 낭독한다. 이형숙 대표는 눈이 까무룩 하게 감기는 듯하더니, 몸을 고쳐 앉고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다. 중간중간 이형숙은 고개를 두 번씩 끄덕인다. 마치 그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고 화답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가끔씩 눈이 스르륵 감긴다.

투쟁을 외치며 주먹 쥔 손을 높이 들고 있는 활동가. 사진 강혜민
투쟁을 외치며 주먹 쥔 손을 높이 들고 있는 활동가. 사진 강혜민

9시, 이규식 서울장차연 대표가 마무리 발언을 한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행복하게 살려고 태어났지, 싸우려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그때 누군가의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9시 2분,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며 263일 차 혜화역 선전전을 마무리한다. 공사와 경찰 무전기가 여기저기서 바쁘게 울린다. 무전기로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주고받는 대화가 들린다.

9시 8분, 활동가들이 빠지고 경찰과 공사 보안관도 모두 빠진다. 지하철이 온다.

사람들이 263일 차 혜화역 선전전을 마치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사람들이 263일 차 혜화역 선전전을 마치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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