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1일 260일 차 혜화역 지하철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박경석 대표가 토끼 인형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 대표가 토끼 인형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아침 8시, 혜화역(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향) 승강장 5-4 앞. 앰프에서 반주가 흘러나온다. 그 음악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갈색 토끼 인형을 안고 노래를 부른다. 토끼 인형의 배에는 붉은색 하트가 달려 있다. 그 하트 위에는 낡게 헤진 종이가 붙어 있다. 종이에는 “시민 여러분! 2023년 계묘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고 쓰여 있다. 종이에 적힌 글씨는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혜화역 벽면에는 스티커가 빼곡히 붙어 있다. 그 앞에서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며, 박경석 대표는 열차 출입구 쪽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다. 박경석 대표와 활동가들이 사이로 사람들이 계속 지나간다. 

이날 휠체어 이용 활동가로는 박지호, 이규식, 이형숙, 배재현이 참석했으며, 8시 22분경 김명학 노들야학 교장이 왔다. 이규식 대표는 선전전 도중 피곤한 듯 하품을 크게 하고, 이형숙 대표는 졸린 눈을 잠시 그대로 두기도 한다. 박미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바닥에 앉아 핸드폰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현장을 중계한다. 민아영 영상활동가는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 자리를 바꿔가며 영상으로 현장을 기록한다. 

지하철 보안관과 경찰은 이들을 중심으로 양쪽에 서 있다. 이날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 지하철 보안관, 공사 직원, 경찰 기동대(방패 8개) 등을 포함해 총 60명 남짓이 출동했다. 열차를 바라보고 섰을 때, 오른쪽에는 보안관 10명(여성 1명), 초록색 옷을 입은 기동대 7명(방패 4개), 경찰 13명 등이 있었으며, 왼쪽에는 보안관 13명, 공사 직원 6명, 기동대 8명(방패 4개), 경찰 4명 등이 있었다.

혜화역 승강장 바닥에 붙어 있는 노란테이프. 사진 강혜민 
혜화역 승강장 바닥에 붙어 있는 노란테이프. 사진 강혜민 

혜화역 승강장 바닥에는 노란테이프가 붙어 있다. 취재를 위해 선 밖에 서 있으면 보안관이 다가와 “노란선 안으로 들어가세요”라고 지속해서 말한다. 노란테이프는 승강장 5-3, 5-4쪽에 붙어 있는데, 선전전을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의 자리와 지하철 보안관의 자리를 표시해둔 선이다. 

이날 박 대표가 부르는 노래 제목은 ‘출근길 지하철’. 민중가요 ‘녹슬은 해방구’를 개사한 노래다.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특별히 선곡한 노래예요.” 노래 마지막 마디를 따라 부르다가 박자를 놓친다. 노래가 끝나고 박 대표가 발언을 이어 간다. 

“이제 벌써 8시가 됐습니다. 오늘은 260일째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지하철 선전전이 되었습니다. 참 기나긴 투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어디서 많이 보신 분들이 왔네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오셨습니다! 박수~ 와~ (사람들 환호). 오늘 우리 시민분들도 오셨대요. (사람들 환호) 와, ‘진짜 시민분’ 오셨다. (활동가들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당신들은 시민이 아니잖아(사람들 모두 폭소). 아니, 사람들이 (우리를) 갈라서 그런 거예요. 우리는 시민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시민분들도 (연대) 오시고. 언제나 이렇게 같이 해주는 공사 보안관님, 혜화경찰서 정보과님도 많이 오셨어요. 경찰서 경비과 직원들도 왔는데요. 오늘은 인력이 좀 빠졌네요. 이렇게 매일매일 우리는 지하철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기자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제가 설명을 좀 드리고 선전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시가 6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하더라고요. 오세훈 서울시장의 인터뷰가 언론에 보도됐는데요, 아직 저희가 서울시가 제기한 공소장은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빠르게 확인해서 서울시가 어떤 내용으로 공소장을 제기했는지를 언론과 우리 동지들에게 소통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소송이 두 개가 있습니다. 고소·고발한 것은 공안 담당에 가 있고요. 다른 하나는 민사소송인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이 진행됐고 강제조정안이 나와 있는 상태인데요. 공사가 건 손해배상액은 3천만 100원입니다. 이거는 시기가 언제인고 하니, 저희가 2021년 12월 3일부터 출근길에 지하철을 탔잖아요. 그런데 3천만 100원에 대한 손해배상은 그 범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 그러니까 2021년 1월 22일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 20주기 날부터 했던 것부터 해서 일곱 건에 대해 3천만 100원을 때렸어요. 이번 6억짜리는 우리 이형숙 대표님, 이규식 대표님을 필두로 한 그 사건에 6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언론에 나오더라고요. (앞에 있는 이형숙, 이규식을 바라보며) 이형숙 대표님, 이규식 대표님 6억 준비해 해놓으세요. 두 대표님, 집 파세요. (이형숙이 “집이 없어요”라고 답한다). 전동휠체어 파세요(웃음). 아무튼 이렇게 돈으로 하고 있습니다. 

혜화역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1년 넘게 이어진 아침 선전전으로 다들 피곤하다. 이규식 서울장차연 대표(맨 왼쪽)는 하품을 하고,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피곤의 무게를 참지 못하여 눈이 스르륵 감기고 있다. 박미주 서울장차연 활동가는 바닥에 앉아 핸드폰으로 페이스북 생중계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혜화역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1년 넘게 이어진 아침 선전전으로 다들 피곤하다. 이규식 서울장차연 대표(맨 왼쪽)는 하품을 하고,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피곤의 무게를 참지 못하여 눈이 스르륵 감기고 있다. 박미주 서울장차연 활동가는 바닥에 앉아 핸드폰으로 페이스북 생중계를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그리고 ‘삼각지역장이 다쳤다’면서 고소·고발했고, 조선일보에서는 대서특필해서 이렇게 올리더라고요. 그 상황 속에서 다친 것이 있다면 참 안타까운데 그 안타까움이 왜 이렇게 서로가 죽고 죽이는 방식으로 다뤄지는지가 참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저희는 지하철을 타려고 했고, 경찰관과 보안관들이 저희를 막았고 폭력적으로 진압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휠체어에서 세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제가 지금 타고 있는 휠체어는 2014년도에 탔던 건데요, 그때 좋은 걸로 갈았는데 그 휠체어를 그날 보안관들이 짓눌러서 휠체어 프레임이 휘어져 버렸어요. 얼마나 짓눌렀으면 휠체어 프레임이 휘어지겠습니까. 그만큼 저를 짓눌렀고요. 제가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데 팔을 꺾어버렸어요. 다리 마비인 사람의 팔을 꺾어서 저를 꼼짝 못 하게 잡아 눌렀어요. 아직 진단서는 못 뗐는데요. 목과 모든 부분이 다 부었습니다. 그래도 좀 참았죠. 근데 그분들은 딱 병원 가 가지고 딱 하니까, 참 이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입니다. 우리를 고소·고발한대요. 우리도 이제 고소·고발부터 시작해서 다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게 있습니다. 지하철 타다 보면 이런 방송이 있어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불법 시위로 인해서 열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1년 내내 이런 방송을 했습니다. 이 방송을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몇 번을 했는지 국회를 통해서 확인해봤습니다. 일단 국회 질의에 대해서도 거짓말했어요. 공문이 왔는데 새빨간 거짓말을 했더라고요. 횟수도 틀리고 많은 것이 거짓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시위와 관련해서 재난) 문자를 보냈죠. 이 또한 문제가 됩니다. 법적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다 저희는 소송할 예정입니다. 

불법은 누가 결정하는 겁니까. 사법부가 결정하는데 정당한 선전전조차도 불법 시위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낙인찍더라고요. 전장연 회원들 모두 조직해서 전장연에 한 명예훼손, 1인당 백만 원으로 할지 천만 원으로 할지 모르겠지만, 한 천 명 모으면 백억 되나요? 그런데 인지대가 너무 비싸요(웃음).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할 예정입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장애인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차별받지 않는 거,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민과 시민을 갈라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치고, 죽일 듯이 ‘휴전’이라는 말까지 하면서 무력으로 진압하고 무관용과 무정차를 반복하고 있는 태도에 대해서, 정말 이 문제를 서울시장으로써 풀어갈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대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면, 저희는 치사하게 ‘휴전’ 기간에 냉각기를 가지겠다고 합의한 기간에 제소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와 공사는 냉각기 가지고 대화하자고 해놓고 손배 다 때렸습니다. 대화하자고 해놓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을 사자성어로 뭐라 그러는지 아십니까? 후안무치. (천성호 노들야학 교장을 바라보며) 우리 노들야학 교장선생님, 잠깐만 나와서 후안무치가 뭔지 설명해주세요. 우리 동지들에게 힘주는 연대 발언해주세요.” 

천성호 교장이 앞으로 나간다. 노들야학 교사들이 크게 함성을 보낸다. 천성호 교장의 목에는 피켓이 걸려 있다. 그 피켓에는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기획재정부는 한국판 T4 프로그램을 멈추라. 예산 문제로 장애인을 가두지 마십시오. 죽이지 마십시오. 기획재정부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천성호 노들야학 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천성호 노들야학 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천성호가 교장이 말한다.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면 안 되니깐 좀 찾아보겠습니다. 성동격서 같기도 하고… 앞에서 공격하는 척하고서 뒤에서 공격하는 거요. (핸드폰을 보면서) 후안무치. ‘뻔뻔스러워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뜻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님은 작년에 선거할 때 저희가 시장님 따라잡기를 해서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을 드렸어요. 그때 오세훈 시장은 ‘홍홍홍홍’하면서 아무 답을 하지 않았어요.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해 주십시오’ 했더니 ‘알겠습니다’도 아니고 ‘모르겠습니다’도 아니고 아무 말도 안 하고 가시더라고요. 아마 정치인들은 그렇게 후안무치,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돼야지만 정치인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정당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 정치인이 될 수 없어요.

우리는 매일 아침 지하철 선전전을 통해서 계속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요? 이런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같이 대화하고 논의하고 하는 사람이 시장 아닙니까. 도대체 시장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죠. 돈을 100원 줬는데 100원에 만족하지 않고 ‘예산 더 주세요’하는 착하지 않은 약자들은 같이 동행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세훈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이 아니라 ‘자기 말 잘 듣는 노예들’하고만 동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얘기하고 인권을 얘기하는 약자들과는 동행하지 않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후안무치한 행동에 대해서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 투쟁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냈는데, 이제는 법률적 다툼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다시 증명하는 이 방식이 굉장히 불편하고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아요. 저들은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돈으로 우리의 인권을 억제하려고 합니다. 손배소를 통해 6억이 넘는 돈을 우리한테 물려서 더 이상 너희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지하철을 타지 말라고 우리한테 요구하는 것입니다.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진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왠지 아세요. 가진 게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도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 싸워나갈 것입니다. 같이 함께 투쟁합시다. 고맙습니다.”

혜화역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 강혜민 
혜화역 선전전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 강혜민 

박경석 대표가 말한다. “오세훈 시장이 이틀 전에 9개 장애인단체들이랑 간담회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관련한 내용은 어제 저희가 논평을 통해서 밝혔습니다. (▷[논평] 오세훈 서울시장님. 제발 갈라치기, 혐오조장, 무정차를 멈추어 주십시오.) 서울시장이 ‘전장연을 장애계의 대표로서 인정하고 만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무엇을 그렇게 걱정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전장연이 장애인대표라고 한 적도 없는데 자꾸 ‘대표가 아니다’라고 하니 참 민망할 따름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말씀을 드리면 저희는 15개 유형의 장애인단체가 있는 사회복지법인도 아니고요, 사단법인도 아니고요, 전장연은 비영리 민간단체 신청도 못 했습니다. 전장연은 사업자등록증만 있는, 정부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기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라는 것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자기 허락받고 이동권 시위 안 했다면서 전장연이 장애인대표단체가 아니라고 하는 지체장애인협회 회장님, 그분은 우리한테 전에 ‘괴물’이라고 국회에서 이야기하신 적이 있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습니다. 참 유감을 표합니다. (▷관련 기사 : 김광환 지장협 회장 “기형아” 발언… 인권위 진정당해

그리고 또 하나는 박마루 서울시 명예시장님. 이분은 과거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비례의원으로 서울시의원 출신인데 시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더라고요. ‘전장연 시위 지지율을 따져보니 한 50% 넘게 시민들이 반대하더라. 그래서 전장연 시위가 장애인들에게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 잘 모르겠다.’ 장애인들이 이동하고 노동하고 교육받으며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니라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를 향한 지하철 시위를 지지율로 따져서 이야기하셨는데, 지지율을 따질 곳은 윤석열 대통령이죠.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50%도 안 되는데, 아니 40%도 안 되는데, 부정적인 입장이 60%, 70% 이러는데요. 그러면 윤석열 대통령한테도 당신이 집권하는 게 국민의 이익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 할 수 있어야죠. 그렇죠? 왜 전장연에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같은 장애인단체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돼서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시장은 또 그걸 가지고 갈라치기 하더라고요. 자기가 직접 이야기하면 되지 장애인들이 이야기한 걸 가지고 너네는 대표 단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참 비겁하게 이야기합니다. 사자성어 ‘적반하장’으로 할까요. 또 뭐가 있나요.”
 
한 활동가가 “뒤통수침”이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모두 웃는다. 박경석 대표가 “이게 사자성어예요?”라고 묻자 그가 “네 글자잖아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박경석이 말한다. “뒤통수침. 네, 좋은 사자성어네요.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오세훈 시장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형식들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하길래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엊그제 공사 본부장이 와서 어떤 형태로 만나길 원하는지 묻길래 우리가 무슨 조건을 걸겠습니까, 조건을 걸지 말라, 만나는 날짜와 형식 모든 부분에서 서울시가 알아서 빨리 좀 해주십시오라고 전달을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단지 의제만 있습니다. 법원 조정안에 대한 수용 여부, 지하철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들에 대한 사과,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가 2004년도에 이어 2022년까지도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사과. 여기에 대한 입장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의견만 있지 어떠한 조건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빨리 약속을 잡아줄 것을 서울시에 촉구드립니다.

어제까지 있었던 일과 전장연의 공식적인 입장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다 이해하셨죠? (사람들이 ”네“라고 답한다.) 정말 이해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오늘 오랜만에 나온 김유미 노들야학 선생님 잠깐 나와보세요. (김유미 교사가 앞으로 나간다.) 제가 이야기한 것에 대해 이해한 내용들 있으면 요약 발표해 주시고요. 그리고 한마디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유미 노들야학 교사가 『비폭력의 힘』 한 부분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유미 노들야학 교사가 『비폭력의 힘』 한 부분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김유미 교사가 마이크를 잡는다. “네, 아주 곤란하게 아무 생각이 안 나요(웃음). 최근에 지인이 책을 선물해 줬는데 책 제목이 『비폭력의 힘』이라는 책이에요. 대화만 하고 가만히 있는 그런 것이 비폭력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서 뭔가 오는 그런 걸 말하는 건가,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책을 선물했을까, 이 생각을 하면서 책 서문을 읽었는데요. 책의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

비폭력이 반드시 영혼의 평안한 부분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폭력은 분노·울화·공격성의 표명인 경우가 많다 (중략) 다른 한편으로는 신체를 공권력 앞에 노출하고, 이로써 폭력장에 진입하고, 이로써 견고하고 신체화된 정치적 행위주체성을 행사하는 계획적인 실천이다. 물론 고통을 초래할 실천이지만, 자기 자신과 사회적 현실 둘 다를 변혁하기 위한 실천이다. (『비폭력의 힘』, 주디스 버틀러 지음,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36~37쪽)

박경석이 말한다. “시민분들께 함께 하자라고 했더니 진짜 시민분이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한 시민이 참석해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 시민이 참석해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시민1이 말한다. “안녕하세요. 출근을 성북구로 해서 지하철 다니면서 자주 뵀었는데 나오니까 좀 떨리네요. 직접 말을 건네는 게 되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지금 잠깐 일을 쉬는 중이어서 함께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어서 나오게 됐습니다. (일부 언론에선) 자꾸 시민들이 반대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다 같은 시민인데 어떤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이나 당연히 보장돼야 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얘기하고 싶어서 나왔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자주 나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파주에 사는 한 시민이 참석해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파주에 사는 한 시민이 참석해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시민2가 이어서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파주에서 온 정윤상이라고 합니다. 지병이 있어서 이제 나이가 들고 좀 더 병세가 악화가 되면 여러분이 사용하시는 지하철 편의시설을 저도 반드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나오게 됐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나와서 싸우시는 거 보고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는 말씀드리고 싶고요. 제 주변에서도 전장연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들 하고 있으니 응원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호범 노들야학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남호범 노들야학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남호범 노들야학 교사가 말한다. “안녕하세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신입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남호범이라고 합니다. 저는 발언이라기보다는 지하철 행동을 함께하며 떠올랐던 소설의 독후감을 읽어보려 합니다. 잘 알려진 소설이기는 합니다만, SF 작가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 중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소설 제목에도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오멜라스’는 언제나 행복과 즐거움이 넘치는 지상낙원과 같은 곳입니다. 오랜 기간 도시는 아름답고 풍요로웠으며, 시민들은 큰 고통이나 고민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도시의 어느 어둡고 구석진 건물 지하에 굳게 잠긴 벽장, 그 좁고 어두운 벽장 안에 한 아이가 갇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는 분명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평생을 짐승처럼 묶인 채 어둠 속에서 굶주림과 외로움에 고통받으며 살려달라고 소리쳐왔습니다.

놀랍게도 오멜라스의 시민들 역시 누구나 이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도시가 누리는 모든 기쁨과 행복이 반드시 벽장 안에서 고통받는 아이의 존재로 인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알고 있습니다. 즉, 벽장 안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들이 누리는 행복과 즐거움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곧 수많은 시민의 행복을 단 한 명의 행복과 맞바꿀 수 없다고 굳게 믿으며 벽장 안 아이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시민들이 잠시 느꼈을 일말의 죄책감과 연민은 이내 오멜라스의 행복과 즐거움 속에서 쉽게 잊히고 맙니다.

소설은 이처럼 가상의 유토피아적 도시 오멜라스의 행복, 그리그 그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버려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희생과 고통 위에 보장된 현대 사회의 모순적이면서도 본질적인 현실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사회 다수가 누리는 행복과 물질적 풍요가 사회의 한구석에 버려진 채 가난, 고통, 질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혜화역을 지나는 시민들 사이로 선전전을 이어가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강혜민 
혜화역을 지나는 시민들 사이로 선전전을 이어가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강혜민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새삼스럽지만 전체를 핑계 삼아 소수의 삶을 파괴하고 혐오하며 배제하는 일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오랫동안 그리고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비장애인 중심의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의해 수없이 고통받아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차별과 폭력에 대한 투쟁과 저항을 멈추지 않아 온 수많은 장애인의 존엄한 삶이 자리합니다.

다시 결말 부분으로 돌아가 보면, 사실 소설 속 모든 오멜라스의 시민들이 벽장 안 아이의 고통을 마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따금 지하실의 아이를 보고 난 사람 중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며칠간 침묵에 잠겼다가 홀로 오멜라스를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그들이 가는 곳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들 자신은 가려는 곳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끝을 맺고 있습니다.

소설의 결론을 마주하면서 저는 저 자신이 만약 벽장과 마주한 오멜라스의 시민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벽장 안의 아이에게 응답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요. 솔직히 지금까지 비장애인 남성이라는 주류적 위치에서 살아온 그리고 그동안 투쟁과 저항의 경험이 전무한 제가 어떤 거창한 전망이나 궁극적인 해답을 내놓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러한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는 것이야말로 동료 시민으로서 그 책임을 외면하고 방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개인적으로 공사 직원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난 1년이 넘는 동안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 보장을 위한 절실한 목소리와 투쟁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한 목격자가 여러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께 당장 우리의 행동에 함께하자고, 자신의 직무를 져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저는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체제 아래에서, 현재 장애인들의 삶을 단지 ’비용의 문제‘로 계산하는 모습이, 공사 직원분들께도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겨울 서울시가 공사 직원분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안전에 들이밀었던 ‘비용의 문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언젠가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 연대해야 할 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기억해주세요. 우리는 적이 아니라 ‘비용의 문제’를 들이미는 저 부정의한 권력에 함께 맞서고 연대해야 할 관계라는 사실을요. 감사합니다.”

박경석 대표가 말한다. “오늘은 260일 차 선전전인데요. 완전히 문화의 파티 같아요. 공부하는 선전전입니다. 이제 『유언을 만난 세계』 한 부분을 읽으면 우리 시간이 마무리될 것 같아요.”

조희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활동가가 『유언을 만난 세계』의 우동민 열사 부분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조희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활동가가 『유언을 만난 세계』의 우동민 열사 부분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조희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활동가가 말한다. “1월 2일에 장애인도 지하철 함께 타고 이동하고 싶다면서 장애인 권리를 외쳤던 그날, 서울시와 공사가 무정차 폭력으로 장애인 권리를 짓밟은 그날, 그 저녁에 저희는 우동민 열사 추모제도 함께 진행했는데요. 우동민 열사의 부분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그 부분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인권위를 바로 세우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 11월 22일 인권위 11층 배움터에서 현병철 위원장 사퇴 촉구를 외치며 농성에 돌입했다. 12월 2일 밤 9시, 전국에서 모인 200여 명의 장애인 활동가들은 8층부터 12층까지 인권위 전 층을 기습적으로 점거했다. 모든 층의 출입구를 자신의 휠체어로 막아서며 그들은 소리쳤다. “현병철은 사퇴하라” 

이원교 소장은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단순히 예산을 더 받기 위한 그런 투쟁이 아니었어요. 인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명제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인권위는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기관이었어요. 인권위가 망가지는 것은 장애인의 인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권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의미였죠. 우리의 투쟁은 장애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략) 전기가 끊기고 난방이 중단되고 식사 반입이 막히는 중에도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은 점거를 이어 나갔다. 우동민이 폐렴에 걸려 응급실로 실려 나가기 이틀 전이었다. 하루의 농성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 시간, 늘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그가 평소와 달리 길게 말했다.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그렇게 함께 갑시다.”

그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유언으로 남았다. (『유언을 만난 세계』, 홍세미 기록(우동민 열사), 오월의봄, 317쪽~320쪽)

제가 읽은 부분의 소제목이 ‘인권이 가로막힌 곳에서 인권을 찾아서’인데 장애인 인권이 가로막히고 시민권이 가로막힌 이 공간에서, 지금도 투쟁으로 인권을 찾아가는 과정에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동민 열사의 마지막 말처럼 이제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함께 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읽었습니다.”

박경석 대표가 『유언을 만난 세계』를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 대표가 『유언을 만난 세계』를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박경석 대표가 말한다. “지금 몇 시죠? 아홉 시예요. 안전하고 평화로운 260일 차 선전전을 이형숙 대표님이 오셔서 마무리 발언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박경석 대표의 옆에 선다. “오늘 너무나도 힘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여기 오는 것보다 시민 두 분이 오셔서 이렇게 이야기해 주시니 우리가 이 투쟁을 끝까지 해야 한다고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구호 외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장애인에게 권리를! 동정은 집어쳐! 차별은 이제 그만! 혐오는 쓰레기통에!”
 
9시 2분, 260일 차 혜화역 선전전이 마무리됐다. 

이형숙 회장과 박경석 대표가 힘차게 마무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이형숙 회장과 박경석 대표가 힘차게 마무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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