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쪽방, 생수통마저 얼어
전기장판으로 버티면서 난방비 착취당하는 주민들
에너지바우처 제도는 있으나 마나
주민들 “주거권 보장이 곧 기후정의”

기자회견장 한 켠에 마련된 ‘동자동 쪽방 사진전 - 난방비 보조로는 풀 수 없는 재난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 전시. 얼어붙은 쪽방 건물 사진 옆에 ‘겨울 한파 속 동파된 화장실 물이 흘러 계단이 얼음으로 덮였다. 주민은 목숨 걸고 계단을 오갔다’라는 설명이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장 한 켠에 마련된 ‘동자동 쪽방 사진전 - 난방비 보조로는 풀 수 없는 재난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 전시. 얼어붙은 쪽방 건물 사진 옆에 ‘겨울 한파 속 동파된 화장실 물이 흘러 계단이 얼음으로 덮였다. 주민은 목숨 걸고 계단을 오갔다’라는 설명이 있다. 사진 하민지

1월 말, 여러 언론에서 꽁꽁 얼어붙은 동자동 쪽방촌 사진을 내보냈다. 일명 ‘얼음 계단’이다. 쪽방촌 건물이 통째로 얼어서 계단과 바닥 전체에 빙판이 깔렸고 난간 곳곳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언론은 ‘르포’, ‘현장’, ‘단독’을 달고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선 현재 동자동 쪽방주민이 얼마나 살기 힘든지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에너지바우처 단가 인상을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에너지바우처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7일 오전 11시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요즘 쪽방건물에 매일 여러 기자가 온다. 언론은 한파 때만 쪽방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보도한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에서 11년 거주한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은 “어떤 사람은 뉴스를 보고 정부가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고 감동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에너지바우처 그거 있어 봐야 소용도 없다. 주민들 얼어 죽기 전에 공공개발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등 시민사회단체는 서울시 용산구 대통령실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난방비 지원 말고 공공개발을 추진하라.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라”라며 정부를 향해 성토했다.

기자회견장 한 켠에 마련된 ‘동자동 쪽방 사진전 - 난방비 보조로는 풀 수 없는 재난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 전시. 난방비가 많이 나와 월세를 인상한다는 안내문이 A4 용지에 아무렇게나 인쇄돼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장 한 켠에 마련된 ‘동자동 쪽방 사진전 - 난방비 보조로는 풀 수 없는 재난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 전시. 난방비가 많이 나와 월세를 인상한다는 안내문이 A4 용지에 아무렇게나 인쇄돼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 추운 쪽방서 전기장판으로 버텼는데 난방비 폭탄이라니

기후위기로 인한 한파, 정부의 도시가스 요금 인상이 맞물리면서 지난해 12월 난방비는 그야말로 폭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도시가스 요금은 2021년 12월보다 36.2%가, 지역난방 요금은 34% 인상됐다. 정부는 2분기에 도시가스 요금 추가 인상을 계획 중이다.

난방비 폭탄은 쪽방촌도 마찬가지였다. 동자동 쪽방주민은 기자회견장 한 켠에 ‘동자동 쪽방 사진전 - 난방비 보조로는 풀 수 없는 재난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사진에는 한파와 높은 난방비로 피해를 겪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

쪽방주민은 도시가스 요금은 물론 전기요금마저 폭탄을 맞았다. 건물이 노후해 난방이 안 될 경우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다 벌어진 일이다. 건물 곳곳에 ‘난방비 부담으로 월세를 인상한다’는 건물주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월세 인상 폭은 3만 원부터 15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얼핏 보면 적게 인상된 것 같아 보인다. 쪽방 월세가 20~30만 원 선인 걸 생각하면 인상 폭은 아주 크다.

이렇듯 난방비 폭탄을 맞았지만 그렇다고 따뜻한 겨울을 난 것도 아니다. 동자동 쪽방에서 20년 넘게 산 김정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교육홍보이사는 “내가 사는 건물은 무허가 건물이다. 처음엔 도시가스가 됐는데 고장 나서 못 쓰고 있다. 건물주에게 고쳐 달라 하니까 나가라 하더라. 전기장판으로 버티고 있다. 방 안은 찬 바람이 부는 지경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수통에 살얼음이 껴 있다”고 말했다.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쪽방주민 “에너지바우처 제도 믿지 마세요”

이런 상황에선 에너지바우처와 같은 난방비 지원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에너지바우처는 여름철에는 전기요금을 감면하고 겨울철에는 난방요금 감면 혹은 연탄, 등유 등 난방연료 구입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쪽방촌을 포함해 전국에서 난방비로 곡소리가 들리자 대통령실은 지난달 26일, 겨울철 에너지바우처 지원 단가를 연간 15만 2천 원에서 30만 4천 원으로 두 배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에너지바우처 지원금액은 1인 가구 기준 여름은 29,600원, 겨울은 248,200원이 됐다.

그러자 정부 기조에 발맞추는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도 움직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에서 3월까지 약 9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한시적으로 기본요금을 감면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기초생활수급 약 30만 가구에 10만 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쪽방주민은 에너지바우처를 지원받을 수 없었다며 분노했다.

“바우처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요. 나는 작년까지 64세였기 때문에 한 번도 못 받았어요. 올해 65세가 돼서 ‘아 나도 이제 받을 수 있겠다’ 싶어서 동사무소(주민센터)에 신청하러 갔더니 ‘영수증 가져와라’, ‘계량기 확인해서 와라’ 이래요. 그리고 장애가 있어야 하고, 임산부여야 하고…”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

에너지바우처 신청 기준. ‘신청대상 : 소득기준과 세대원 특성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세대 소득기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의료급여/주거급여/교육급여 수급자 ※ 주거/교육급여 수급자는 '22년 한시적 지원대상 세대원 특성기준 주민등록표상의 수급자(본인) 또는 세대원이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 노인 : 주민등록기준 1957. 12. 31 이전 출생자 영유아 : 주민등록기준 2016. 01. 01 이후 출생자 장애인 :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등록한 장애인 임산부 : 임신 중이거나 분만 후 6개월 미만인 여성 중증질환자, 희귀질환자, 중증난치질환자 :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에 따른 중증질환「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에 관한 기준」[별표3], 희귀질환[별표4], 중증난치질환[별표4의 2]을 가진 사람 한부모가족 : 「한부모가족지원법」 제4조에 따른 "모" 또는 "부"로서 아동인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 소년소녀가정 :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아동분야 지원대상에 해당하는 사람(「아동복지법」 제3조에 의한 가정위탁보호 아동 포함) 지원 제외 대상 세대원 모두가 보장시설 수급자 세대원 모두가 3개월 이상 장기입원 중인 것이 확인된 수급자 (단,신청기간 내 세대원 중에서 퇴원자가 있을 경우 신청 가능)’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한국에너지공단 홈페이지 캡처
에너지바우처 신청 기준. ‘신청대상 : 소득기준과 세대원 특성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세대 소득기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생계급여/의료급여/주거급여/교육급여 수급자 ※ 주거/교육급여 수급자는 '22년 한시적 지원대상 세대원 특성기준 주민등록표상의 수급자(본인) 또는 세대원이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 노인 : 주민등록기준 1957. 12. 31 이전 출생자 영유아 : 주민등록기준 2016. 01. 01 이후 출생자 장애인 :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등록한 장애인 임산부 : 임신 중이거나 분만 후 6개월 미만인 여성 중증질환자, 희귀질환자, 중증난치질환자 :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에 따른 중증질환「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에 관한 기준」[별표3], 희귀질환[별표4], 중증난치질환[별표4의 2]을 가진 사람 한부모가족 : 「한부모가족지원법」 제4조에 따른 "모" 또는 "부"로서 아동인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 소년소녀가정 :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아동분야 지원대상에 해당하는 사람(「아동복지법」 제3조에 의한 가정위탁보호 아동 포함) 지원 제외 대상 세대원 모두가 보장시설 수급자 세대원 모두가 3개월 이상 장기입원 중인 것이 확인된 수급자 (단,신청기간 내 세대원 중에서 퇴원자가 있을 경우 신청 가능)’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한국에너지공단 홈페이지 캡처

백 부위원장의 말처럼 에너치바우처 지원 대상은 매우 까다롭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수급자 중 수급자 본인이나 세대원이 △1957년 이전에 출생한 노인 △2016년 이후 출생한 영유아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등록한 장애인 △임신 중이거나 분만 후 6개월 이내인 여성 △중증·희귀·중증난치질환자 △한부모가족 △소년소녀가정 등 이 중 하나에 해당해야 한다(2023년 2월 기준).

1인 가구, 무연고자가 많은 쪽방주민은 수급자여도 본인이 장애인이거나 중증·희귀·중증난치질환자, 65세 이상의 노인, 임신 중이거나 분만한 여성이 아니면 에너지바우처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한 백 부위원장의 증언대로 신청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난방비 결제마저 산 넘어 산이다. 한국에너지공단에서는 난방비를 현금이 아니라 바우처카드로 지급한다. 한국전력, 서울도시가스 등 에너지공급사가 요금이 감면된 고지서를 발급하고 나면 그 고지서 내용에 따라 바우처카드로 결제를 완료할 수 있다.

건물주 요청으로 월세와 난방비를 현금으로만 내야 하는 대다수 쪽방주민 입장에서 바우처카드는 무용지물이다. 게다가 건물주는 불시에 난방비 인상을 아무렇게나 통보한다. 쪽방주민은 난방비 지불 영수증은커녕 제대로 된 고지서조차 받아보기 힘들다. 건물주가 내라고 하면 내야 하고 그것도 현금으로 내야 하니, 난방비에 큰돈을 지출했다는 걸 증명할 수단이 없다.

건물주는 건물이 얼어붙어도 난방비를 현금으로 착취하고, 쪽방주민은 한 번도 따뜻하게 지내지 못했지만 난방비 폭탄을 고스란히 감당한다. 이런 구조에서 에너지바우처는 아무 소용이 없다.

“바우처 이거 믿지 마세요. 주지도 않지만 힘들게 관문을 통과해 얻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거 없습니다. 끝까지 투쟁해서 공공개발이 이뤄져야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맨날 뉴스에 우리 사는 거 나오고, 정부는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고 하는데 뭘 도와준다는 건지 한 번도 못 봤어요. 어렵게 사는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닌데, 윤석열 정부는 뭘 도와줬습니까? 쪽방주민들 도와주려면 공공개발을 추진하세요.” (백광헌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부위원장)

이날 가난한 사람들은 기자회견 도중 난방비 정책 반납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 하민지
이날 가난한 사람들은 기자회견 도중 난방비 정책 반납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 하민지

- 차라리 밖이 더 따뜻… 시민사회 “주거권 보장이 기후정의”

난방비 지원이 아니라 공공개발이 답인 이유는 쪽방이라는 건물 자체에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25일, 동자동 쪽방촌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아파트 단지를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해 온도를 비교했다. 아파트 단지 벽면은 9.6도로, 열화상 카메라에서 전반적으로 붉은색을 띠었다. 그러나 동자동 쪽방촌 벽면은 영하 13.2도로, 카메라상 시퍼런 색이었다.

해당 기사에 자문한 김진호 한국에너지공단 녹색건축센터장은 ‘쪽방촌은 얇은 옷을 입고 지퍼마저 연 상태로 보면 된다. 똑같은 양의 난방을 때더라도 열 손실이 아파트 대비 70~80%가 발생한다. 내부 온도를 1도 올리는 데 7%의 난방비가 더 든다”고 지적했다. 쪽방촌 건물은 단열재, 이중창 등의 단열처리가 안 돼 있는 건물인 데다가 건물이 노후해 난방을 때도 에너지 효율이 높지 않다.

즉,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난방비 지원으로는 쪽방주민의 주거환경을 전혀 개선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쪽방주민은 차라리 밖에서 지낸다. 그게 더 따뜻하기 때문이다. 김정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교육홍보이사는 “너무 추워서 자는 게 자는 게 아니다. 밤새 뒤척이다 보면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밖에 나가서 좀 움직이는 게 낫겠다 싶어서 새벽에 밖으로 나가 동네를 청소한다. 스트레스 받고 답답하니까 밖이 낫다”고 토로했다.

서린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린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서린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은 “주거권 보장이 곧 기후정의”라고 강조했다.

“적절한 난방은 생존권입니다. 적정한 가격에 난방을 땔 수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에너지는 기본권이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공공재입니다. 난방비 지원으로는 결코 에너지빈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적정한 주거공간을 제공해야만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쪽방촌 에너지 문제의 근본 방안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공공주택을 쪽방주민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난방을 때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주거공간 마련을 위해 공공개발 지구지정을 지금 당장 추진해야 합니다. 쪽방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서린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

한 기자회견 참가자가 ‘2년을 기다렸다! 쪽방주민 염원하는 공공주택사업 더는 방치 말라! 공공주택사업 환영’이라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한 기자회견 참가자가 ‘2년을 기다렸다! 쪽방주민 염원하는 공공주택사업 더는 방치 말라! 공공주택사업 환영’이라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2020년 2월,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동자동 쪽방촌 공공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공임대주택 1250호를 지어 쪽방주민 등 개발구역 거주자를 재정착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었다. 쪽방주민과 시민사회단체는 정부 계획을 크게 환영했다.

계획대로라면 2020년 말까지 지구지정 고시가 이뤄졌어야 한다. 그러나 개발구역의 토지·건물 소유주가 공공개발을 결사반대하며 민간개발 계획안을 국토부에 여러 차례 제출하고, 국토부가 이를 검토하면서 지구지정 고시는 한없이 미뤄지는 중이다.

동자동사랑방에 따르면 쪽방주민은 지난해 9월, 국토부·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면담했다. 당시 국토부는 ‘(2022년) 9월까지 소유주 측에서 민간개발 계획안을 보완하지 않으면 예정대로 공공개발을 추진할 것’이라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지구지정 고시는 현재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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