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불평등한 기후재난의 시대,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 ④
‘삶이 재난’인 동자동‧양동 쪽방 주민들

남대문 쪽방에 사는 고아무개 님은 코로나19 기간 내내 스스로를 잠갔다. 온갖 만성질환에 시달리던 차 코로나19에라도 걸리면 끝장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하는 게 백신보다 안전할 것 같았다. 늦은 새벽 시간을 제외하고는 쪽방 밖에 나오지 않았다. 쪽방 문고리에는 “코로나19, 모든 사람 방문 사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팻말을 걸어 두었다.

다행히 그는 백신을 맞지 않고도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 대신, 욕창을 얻었다. 먹고 사는데 필요한 물건들과 그의 몸을 한데 두기에 한 평 남짓한 쪽방은 너무 좁았다. 그렇게 1년 남짓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그의 등과 엉덩이는 썩어 갔다. 결국 지난여름,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 다섯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의 선택을 두고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꼴’이라며 나무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쪽방이라는 재난적 주거환경이 코로나19 위기를 증폭했다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감염병 위기만이 아니다. 기후위기 역시 쪽방에 인입된 이후로는 거세게 증폭됐다. 동자동과 남대문로5가동(양동재개발지구) 쪽방 주민이자 주민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네 분을 만나 기후위기에 관해 물었다.

지난 4월, 남대문 쪽방에 사는 고아무개 님의 쪽방 문고리에 “코로나19, 모든 사람 방문 사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사진 이동현
지난 4월, 남대문 쪽방에 사는 고아무개 님의 쪽방 문고리에 “코로나19, 모든 사람 방문 사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사진 이동현

- 삶이 재난이니까

기후위기와 쪽방을 연결한 글을 쓴다는 게 가능할 듯하면서도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쪽방 주민들한테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막막했다. “기후위기와 쪽방으로 글을 쓰라는데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침묵이 있을 줄 알았는데 동자동 쪽방에 사는 윤용주 님은 바로 이렇게 답했다. “삶 자체가 재난이니까. 우리 삶 자체가 재난이니까.” 이렇게 운을 뗀 후 그는 기후위기가 증폭한 고단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정화조가 원래는 이렇게 통으로 해서 묻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옛날에 만들었던 곳이라 벽돌로 쌓아서 만든 거예요. 하수구도 옛날 토관(흙을 구워 만든 둥글고 큰 관)이에요. 그러니 비가 와서 그게 넘치니까 지하 1층 벽체를 타고 그 물이 나오는 거예요. 지하 방마다 똥물이 스며드니까 그게 냄새가….”

더위와 폭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임박한 겨울에 만날 재난도 선했다. 대부분 겨울철 쪽방은 낮보다 저렴한 심야시간대의 전력을 이용해 전기패널(바닥에 깐 열선)로 난방을 한다. 그러다 보니 전기가 들어오는 밤 10시부터 아침 5시 30분을 빼고는 냉골이다. 보일러 있는 집도 드물다 보니 겨울 초입이면 주민들은 커피포트를 구하러 다니기 바쁘다. 더운물을 쓰기 위해서다. 여름에는 더워 죽고, 겨울에는 추워 죽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동자동 윤용주 님 이야기한, 전에 살았던 지하층 쪽방 내부. 습기로 쪽방 복도의 벽지와 페인트가 떨어져 나갔다. 사진 이동현
동자동 윤용주 님 이야기한, 전에 살았던 지하층 쪽방 내부. 습기로 쪽방 복도의 벽지와 페인트가 떨어져 나갔다. 사진 이동현
동자동 윤용주 님 이야기한, 전에 살았던 지하층 쪽방 내부. 빗물을 머금은 벽체는 햇빛이 쨍쨍한 맑은 날에도 물을 떨군다. 사진 이동현
동자동 윤용주 님 이야기한, 전에 살았던 지하층 쪽방 내부. 빗물을 머금은 벽체는 햇빛이 쨍쨍한 맑은 날에도 물을 떨군다. 사진 이동현

- 우울과 외로움

기후위기라는 말에 우울, 외로움이 따라붙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욱이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 주민모임의 부위원장을 맡아 늘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백광헌 님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리라고는.

“비가 오면 나갈 데가 없잖아요. 방이 조그마하고 하나니까, 굳이 이 방에만 있어야 한단 말이야. 가만히 방에만 있다가 우산 갖고 나와도 특별히 갈 데가 없잖아요. 어디 오라는 데도 없고 갈 데도 없으니까 할 수 없이 그냥 방에 있는 거예요. 이번 장마철에도 그렇게 며칠 동안 방에만 있었잖아요. 무슨 어떤 교류가 있는 사람 같으면은 언제든지 좀 가서 시간을 보내는데 우리는 뭐 그런 게 없잖아요. 날이 좋아야 이렇게 나와 있다가 사람들 만나면 인사나 하지. 나도 옛날에 처음 여기(동자동) 왔을 때 저 사람이 왜 저렇게 혼자 중얼중얼거릴까 이상하다 그랬어요. 여기 사람들 보면은 웃는 사람이 없어요. 공원에 가 봐도 다 풀 죽어 있고. 그런데 그게 나한테 오더라고요. 원래 저는 웃음이 많았어요. 웃음 많다고 실없다 소리를 들었는데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혼자 좁고 어두운 방에 누우면 이것저것 안 좋은 생각하게 되잖아요.” (백광헌, 동자동 쪽방 주민)

“폭우가 내리면 나가지를 못하고 그러다 보니까 더 이제 방 안에만 있어야 해요. 대부분 또 이렇게 어렵게 사는 분들은 평수가 작잖아요. 작은 평수에서 환기도 안 되고 통풍도 잘 안되는 그런 곳에 있는 게 뭐랄까, 소외감 같은 거, 그런 것도 더 느끼게 되고.” (윤용주, 동자동 쪽방 주민)

겨우 비 때문에 마음들이 아플 수 있다는 건 몰랐다. 내리는 비에 한때 상념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한 평 쪽방에 갇히기에 생기는 우울이라니. 공원에서 만난 이들을 불러들여 어울릴 거실이 있는 집이었다면,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것 말고 창밖 세상을 보고, 화분이라도 매만질 베란다가 있는 집이었다면 깃들 리 없는 우울 아닌가.

(왼쪽) 창신동 쪽방의 모습. 어깨를 비틀어야 올라갈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다. 복도는 좁은데다 아래층 계단 사이엔 난간도 없어 추락 우려가 크다. (오른쪽) 지난겨울 빙판이 된 세면장에서 넘어져 엉덩이뼈가 부러진 남대문로5가 쪽방 주민 박아무개 님의 뒷모습. 사진 이동현
(왼쪽) 창신동 쪽방의 모습. 어깨를 비틀어야 올라갈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다. 복도는 좁은데다 아래층 계단 사이엔 난간도 없어 추락 우려가 크다. (오른쪽) 지난겨울 빙판이 된 세면장에서 넘어져 엉덩이뼈가 부러진 남대문로5가 쪽방 주민 박아무개 님의 뒷모습. 사진 이동현

- 안전을 위협하는 집

유엔의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사회권위원회 일반논평 4)는 거주자의 물리적 안전을 지키는 것을 주거권 구성 요소의 하나로 열거한다. 그러나 우리는 쉼, 재충전을 가능케 하리라 믿었던 집들이 흉기로 돌변하는 일들을 너무나 자주, 반복해서 겪고 있다.

“지금 이 방은 괜찮은데, 요 밑 9-19번지 지하에 살 때 습기가 차서 천정이 주저앉으니까 내가 천정을 이만큼 뜯어냈어요. 뜯어내고 싱크대 쪼가리 같은 걸로 얽어준 거예요. 근데 방에서 이렇게 요리를 하고 그러면 김이 올라갈 거 아니야. 그게 항상 축축한 게 나중에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주저앉아 버린 거지. 누워 있는데 주저앉아서 머리 이마빡도 까지고.” (윤용주, 동자동 쪽방 주민)

“쪽방촌 주민 같은 경우는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또 강풍 불 때 위에서 뭐가 떨어질지 모르니까 그럴 때는 아예 외출을 안 해요. 겁도 나고 머리에 뭐 맞으면 자기만 손해니까. 쓰레기고 뭐고 적재된 게 많으니까 그런 게 막 날아다녀요. 강풍 부는 날, 비 많이 오는 날, 장마 때 태풍 이럴 때가 겁나니까 외출을 못 하죠.” (박종만, 남대문 쪽방 주민)

“내가 옛날에 24번지에 살았는데 거기서 이제 방 안에서 밥해 먹다 이불이 한 이만큼 불에 타 버렸어요. 그래서 그 뒤로는 복도에다 가스레인지 놓고 끓여 먹지. (…) 여기는 너무 취약해 가지고 병 안 걸릴 사람도 병에 더 걸려. 그냥 요만한 방에서 짐 놓고 거기서 새우잠 자고 쭈그리고 자고 그런 사람이 허다해요.” (길순자(가명), 남대문 쪽방 주민)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동자동·양동 쪽방 주민들. 사진 정성철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동자동·양동 쪽방 주민들. 사진 정성철

- 흩어놓지 말고, 여기에, 집다운 집

쪽방 주민들은 폭염, 폭우, 태풍, 혹한, 그리고 고립과 우울 같은 기후위기의 직간접적 피해에 대한 답을 주거환경의 개선에서 찾았다.

그러나 지난 2021년 2월, 국토교통부는 동자동 쪽방 지역에 영구임대주택을 건설해 주민의 재정착을 보장하겠다는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으나 그 이후 아무런 절차도 추진하지 않고 있다. 그사이 열악한 쪽방 건물들은 더욱더 낡아져 주민들의 삶을 위협한다. 민간개발 절차가 진행 중인 남대문로5가동(양동재개발지역)은 주민들의 대응으로 당초 계획에 없던 공공임대주택 건설 계획이 수립됐지만, 호당 면적이 14㎡(약 4평, 최저주거기준 상 최소 면적 기준)에 불과해 ‘도로 쪽방’이라는 원성을 사고 있다. 남대문로5가동 쪽방 주민들은 적정 면적의 임대주택을 보장할 것을,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선언만 있을 뿐 한 걸음도 못 떼는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근본적 해결 방법은 새로운 주택을 짓는 방법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건물주인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는 않고, 바뀌려면 결국은 공공개발만이 바꿀 수 있는 거잖아.” (윤용주, 동자동 쪽방 주민)

“계속 이 동네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이 동네를 못 떠나는 거야. 왜? 환영을 못 받으니까, 딴 데 가면. 그나마 여기는 공동체 아니야. 비슷한 사람 있으니까. 그래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발표한 대로 추진하라는 투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내가 특별하게 엄청나게 저기는(능력은) 없어도 다른 사람들한테 우리 모임(동자동공공주택추진주민모임)에 대해 동기 부여를 분명히 해주고 좋은 쪽으로 얘기해 주고 하며 (우리 주거권을) 어느 정도는 다 지켜주고 싶어요.” (백광헌, 동자동 쪽방 주민)

“언론에서 보면 오세훈 시장님은 공공임대주택 1인 최소 면적을 40㎡(약 12평)로 한다 했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는 21㎡(약 6평)가 최소 기준이라고 했는데 왜 양동 쪽방만 14㎡로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죠?” (박종만, 남대문 쪽방 주민)

“저희가 원하는 거는 좀 크게 임대주택을 지어주십사 하는 거. 왜냐면은요, 독거노인이 많잖아요. 그러면 혼자 고독사하는데 그래도 서너 명 모여 가지고 밥이라도 한 끼 먹고 대화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있어야 된단 말이야. 근데 14㎡는 너무 적다 이거죠.” (길순자(가명), 남대문 쪽방 주민)

열악한 주거가 기후위기를 증폭하고 있기에 주거 질의 획기적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에 몇 집 걸러 한 집에 설치하는 에어컨, 하루 한 끼 주는 식권과 같은 서울시의 대책은 미봉책도 될 수 없다. 여전히 쪽방 주민들은 증폭되고 중첩된 재난 속 삶에서도 멈추지 않고 스스로의 주거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을 기점 삼아 이들의 싸움에 힘을 보태 주실 것을 요청한다.

필자소개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빈민 당사자들이 모이고, 공부하고, 실천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 아직 안 망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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