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특집 ①
- 새벽 2시 응급실
새벽 2시, 병원 응급실에 사설이송단의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차에서 내린 것은 정신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었다. 구급차에서 내렸지만, 가족과 당사자 사이에 응급실로 들어갈 것인지를 놓고 실랑이가 이어졌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정신장애 당사자는 가족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응급실로 들어갔다.
겨우 들어간 응급실 대기구역, 가족에 의해 억지로 끌려온 당사자는 자신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이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다. 억압적 상황에 점점 화가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와 이를 말리는 가족들 사이에 감정이 격해지며 점차 고성이 오간다. 주변 응급실 환자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응급실 내 보안요원들이 달려온다. 비좁은 응급실 대기실은 여러 사람이 엉켜 북새통을 이루고, 간신히 쪽잠을 청하던 다른 응급실 환자들이 큰 소리에 깨어 다시 통증을 호소한다. 구석의 누군가는 제발 조용히 좀 하라고 소리친다. 문진을 시행한 담당 간호사에게 지나가던 응급실 의사가 질문을 던진다.
“아이고… 엔피(NP)* 환자예요?”
(*엔피[NP], 신경정신과의 영어 번역인 Neuropsychiatry를 줄인 단어로, 응급실에서 정신과 혹은 정신과 환자를 칭할 때 쓰는 약어.)
간호사가 대답한다. “네, 엔피인 것 같아요.” 응급실 당직 의사는 바쁘게 자리를 뜨며 무심하게 말한다. “피검사 문제없으면 바로 엔피 당직 의사 연락해주세요.”
새벽의 응급실, 우리는 이와 같은 가상의 사례를 흔히 마주할 수 있다. 모두가 바쁜 응급실에서, 정신과적 위기 속 당사자와 가족은 ‘엔피’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신체적 질병을 호소하는 여타 환자들과는 다른 이질적 존재로, 때로는 도통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지 모르겠는 불청객으로 여겨진다.
- 입원 혹은 퇴원의 갈림길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한 것은 정신과 당직의 또한 마찬가지이다. 연락을 받고 자다 깨어 달려온 정신과 당직 의사는, 입원을 거부하는 당사자와 입원을 원하는 가족, 이들을 둘러싼 의료진과 보안요원, 이러한 상황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른 환자들이 뒤엉킨 대혼란의 응급실을 마주한다.
당사자와 가족 사이에 입원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선명히 갈리는 상황. 정신과 당직의는 자신이 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결정은 ‘비자의 입원 조건’을 충족하는지 확인하는 것임을 상기한다. 당사자가 입원을 하지 않는다면 응급실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어차피 간단한 약물 처방과 함께 외래진료를 안내하는 것뿐이기에, ‘입원 여부 결정’이 위기 개입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당직 의사는 전공의 수련 때부터 익히 반복하였던 비자의 입원의 조건을 되뇐다. 정신장애 당사자와 가족이 입원에 대한 의사가 갈리는 경우 정신과 당직의사가 확인하여야 할, 현행법상 ‘비자의 입원’의 요건으로 검토하여야 하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정신건강복지법) 제43조 3항
정신의료기관 등의 장은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진단 결과 정신질환자가 제2항 각호에 모두 해당하여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진단한 경우 그 증상의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2주의 범위에서 기간을 정하여 입원하게 할 수 있다. (…)
1. 정신질환자가 정신의료기관 등에서 입원치료 또는 요양을 받을 만한 정도 또는 성질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2. 정신질환자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어 입원 등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기준이 충족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2호의 ‘자·타해 위험’ 조항이다. 그러나 추상적인 ‘위험’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에는 보다 구체적 기준이 나열되어 있다.
해당 위험 기준을 판단하는 때에는 정신질환자의 질병, 증세, 증상, 기왕력, 행위의 성격 또는 건강이나 안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1. 본인 또는 타인의 건강 또는 안전에 중대하거나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경우
2. 본인 또는 타인의 건강 또는 안전에 중대하거나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개연성이 높다고 인정되는 경우
3. 본인 또는 타인의 건강 또는 안전에 상습적인 위해를 가하는 경우
4. 본인의 건강이나 안전에 중대하거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5. 본인의 건강이나 안전에 중대하거나 급박한 위험의 개연성이 높다고 인정되는 경우
시행규칙에서 나름대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나,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위해를 가할 개연성”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나를 응급실에 강제로 끌고 들어와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하여 타인에게 고성을 지르고 화를 낸다면, 이는 ‘자·타해 위험의 개연성’이 있는 것일까.
- 정신건강복지법의 이분화된 선택지
이러한 ‘새벽 2시의 응급실’의 모습은, 당사자와 가족, 의료진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오직 두 가지뿐이라는 사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현재의 정신건강복지법 상에서 정신과적 위기 상황 속 모든 의사결정은 둘 중 하나를 결정하는 것으로 수렴한다.
1. 입원할 것인가?
2. 아니면 귀가할 것인가.
이러한 이분화된 선택지 앞에서, 당사자의 다양한 삶의 모습도 이분화된 카테고리 속으로 납작하고 단순하게 환원된다. 자·타해 위험이 있다면 입원을, 자·타해 위험이 없다면 귀가를 하게 되는 정신건강복지법의 구조 속에서, 모두의 관심은 정신장애 당사자의 ‘위험 여부’를 판별하는 데에 집중될 뿐이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입체적 삶은 ‘자·타해 위험’이라는 성긴 그물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 버린다.
- 모두가 상처받는 정신건강 위기대응 시스템
결국 위 사례의 정신장애 당사자는 ‘자·타해 위험이 없다’는 소견하에 일부 약제 처방과 함께 귀가를 권유받았다. 그러나 다툼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1) 가족
우선, 가족들은 별다른 조치 없이 귀가하는 병원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정신건강 위기 상황에서의 정신건강 서비스의 제공 방식이 ‘입원 치료’ 외에는 마땅치 않은 한국의 상황 속에서, 가족에게는 당사자의 ‘치료’를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인 ‘입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족들은 당사자의 모습이 ‘얼마나 심각하고’, ‘부적절하며’ ‘입원을 할 만한 것인지’ 의료진에게 호소한다. 당사자 앞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입원 흥정’의 과정은 당사자와 가족 사이의 관계에 심각한 균열을 남기고, 정신장애 당사자의 회복에 필수적인 ‘가족 간 신뢰’라는 자원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2) 정신장애 당사자
비록 귀가가 결정되었다 할지라도, 응급실에서의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당사자의 마음에도 이미 많은 상처가 남게 된다. 자신을 (‘엔피’라는 용어로 상징되는) ‘증상’과 ‘위험의 개연성’으로 환원시켜 바라보는 의료진과, 치료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가둬야만 함을 호소하는 가족의 모습 속에서 당사자는 마음 둘 곳이 없다. 이는 당사자의 정신과적 위기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3) 의료진
의료진 또한 이 상황에 불만이 많다. 과중한 업무 속에서 시간을 내어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려고 해도, 자신이 가진 두 가지 선택지 중에는 가족과 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비자의 입원 과정을 진행하면 당사자의 원망을, 귀가를 선택하면 가족으로부터 원망을 듣는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려 하는 노력이 비난과 원망으로, 때로는 ‘인권 침해’라는 딱지로 돌아오면, 의료진은 점차 무기력해진다.
- 다른 정신과적 위기 대응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당사자의 입체적 삶과 마음이 제도의 성긴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는, 당사자의 삶의 회복이 중심이 되는 정신건강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가족과 의료진이 ‘악역’이 되어야 당사자가 ‘치료’로 진입할 수 있는 오늘날의 제도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앞으로의 8회의 정신건강복지법 특집기사에서는, 이러한 ‘새벽 2시의 응급실’의 모습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그리고 바뀌어야만 하는지 다룰 것이다.
치유 자체가 트라우마가 되지 않는, 보다 인권적 위기 대응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당사자의 정신과적 위기 상황을 “마음이 열리는 때”라 말한다. “마음이 열리는 때”에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서로를 진정으로 마주하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우리는 지난 해 9월 중순 일어난 비극적인 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야만 한다. (다음 기사에서 계속)
필자 소개
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휴직 교사.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야학을 만났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노들야학 바로 앞에 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유기훈님의 기사 앞으로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