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특집 ⑥
중증 정신장애인을 위한 지원주택과 커뮤니티 케어 (1)

* 아래 J씨의 사례는 개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여러 사례들을 조합하고 세부 내용을 각색한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저기요, 저 퇴원해서 혼자 살고 싶어요.”

몇 년 전, 지역의 한 정신과 병동에서 만났던 50대 중반의 여성 J씨는 매번 면담마다 퇴원을 요구하셨다. 그의 담당 의사로 처음 인계받았을 때, 이전 주치의로부터 J씨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던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약 25년 전에 환청과 정신병적 불안이 시작되어 인근 병원에서 조현병을 진단받았고, 그 무렵부터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최근 7~8년 동안은 계속 병원에서 지내오고 있는 분. 만성적 경과로 심한 기능 저하 동반됨.”

또한 의무기록에는 그가 여전히 위협적인 환청에 시달리고 있으며, 때로 그 환청들이 자신을 잡으러 온다는 생각에 불안이 동반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후 며칠 동안 병실에서 J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를 힘들게 하는 ‘목소리들’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J씨에게는 의무기록에 적힌 것처럼 여전히 위협적인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지만, 주변에서 잘 지지해주고 안심할 수 있는 공간 속에서 휴식을 취하면 1~2시간 이내로 괜찮아지는 양상이었다. 또한 J씨는 혼자서 씻는 것과 끼니를 해결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변의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기본적 생활은 해낼 수 있을 정도라 판단되었다. 이에 나는 J씨를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J씨가 그토록 원하는 지역사회로의 자립을 충분히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였다. 이에 의무기록 한켠에 적혀 있는 보호자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연세가 지긋한 J씨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나는 J씨의 어머니에게 최근 J씨의 컨디션을 설명하고, 퇴원하여 집에서 생활해볼 수 있을지 상의하였다. 그러나 J씨의 어머니는 너무나 지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 J를 봐줄 사람이 없어요. 제 나이 80이 될 때까지 혼자서 J 하나 뒷바라지하다가, 지금은 저도 몸이 아파서 지난주까지 병원에서 있다가 나왔어요. J가 꼭 퇴원을 해야 하나요? J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J씨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한동안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발병 후 오랜 시간이 흐르며, 어느덧 J씨는 가족에게마저 ‘문제가 없으면’ 병원에 있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 년간 J씨의 어머니가 부딪혀왔을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지쳐버린 어머니의 모습이 마냥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거의 없던 시기를 J씨와 함께 힘겹게 헤쳐왔을, 그리고 이제는 여든이 넘어 그 자신이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된 어머니에게, 나는 도저히 J씨의 퇴원 후 돌봄을 부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하여 J씨의 자립을 도울 수 있지는 않을까. 어머니와의 전화를 끊고 J씨가 속해있는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많은 지원이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자”는 “보호자가 없으면 자립 지원이 어렵기에” 차라리 그룹홈과 같은 소규모 시설을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센터 직원의 응답이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사실 나 또한 J씨의 퇴원 이후의 자립이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J씨에게 공격적 목소리가 들려와 힘들어질 때 도움을 요청할 인력도, J씨의 요리와 식사를 교육하고 지원할 사람도, J씨가 살 집을 구하고 입주하는 과정에 대한 지원도, J씨가 생활에 익숙해질 때까지 병원 통원을 도울 사람도 없었다.

J씨는 그룹홈과 같이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내는 공간으로 가는 것은 원하지 않았고, 결국 나는 다시 J씨의 입원 생활을 지키는 충실한 문지기의 역할로 돌아왔다. J씨가 매일 같이 퇴원과 자립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대화를 얼버무리고 자리를 비켰다. 몇 개월 뒤, 나는 다른 의사에게 주치의 역할을 인계하고 J씨가 있는 병원을 떠났다.

약 3개월간 J씨를 만나며, 매일 같이 그에게 퇴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살아왔던 병원에서의 나날들 동안, J씨는 병원의 문지기들에게 얼마나 많은 퇴원 이야기를 하였을까.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퇴원을 이야기해야 그의 당연한 삶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이정하 2011년 작, ‘폐차장’, 폐쇄병동에서 그림)
약 3개월간 J씨를 만나며, 매일 같이 그에게 퇴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살아왔던 병원에서의 나날들 동안, J씨는 병원의 문지기들에게 얼마나 많은 퇴원 이야기를 하였을까.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퇴원을 이야기해야 그의 당연한 삶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이정하 2011년 작, ‘폐차장’, 폐쇄병동에서 그림)

- 주거우선(Housing First) 접근법

이후로 J씨에 대한 기억은 그에 대한 죄책감과 뒤섞여 문득문득 나를 찾아왔다. J씨가 퇴원하여 지역사회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무엇이 그를 “퇴원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가?

그러던 와중, J씨처럼 사회에서 분리되어 오랜 기간 병원에서만 지내온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자립하여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중증 정신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제도와 지원 체계 속에서 퇴원 후 지역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는 것이다.

소식을 듣고, 너무나 반가운 감정과 동시에 다양한 궁금증이 함께 떠올랐다. 가장 궁금했던 점은 거주와 일상생활 유지의 부분이었다. 과거 J씨의 퇴원과 지역사회 정착을 알아보며 가장 무력감을 느꼈던 부분 또한 ‘주거’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설령 공공임대주택을 구한다고 할지라도, 집을 계약하는 과정과 그 이후 지속적인 주거 유지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병원이라는 공간 속에만 있던 나로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중증 정신장애인의 탈원화 과정에서 주거의 안정성 확보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지 않는 이유로 정신장애 당사자의 24.1%는 ‘퇴원 후 살 곳이 없기 때문에’, 22.0%는 ‘혼자서 일상생활 유지가 힘들기 때문에’라고 응답했다.1) 사진 픽사베이
중증 정신장애인의 탈원화 과정에서 주거의 안정성 확보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지 않는 이유로 정신장애 당사자의 24.1%는 ‘퇴원 후 살 곳이 없기 때문에’, 22.0%는 ‘혼자서 일상생활 유지가 힘들기 때문에’라고 응답했다.1) 사진 픽사베이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중증 정신장애 당사자분들이 자립하여 생활하고 있는 여러 지역을 방문했다. 놀랍게도 J씨와 비슷한 상황에 있던 여러 중증 정신장애 당사자분들은 자립과 동시에 곧바로 주택을 계약하여 생활하고 계셨다. 이는 J씨의 퇴원 후 생활에 대해 과거 의료진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당시 J씨를 지원하던 의료진 모두는 J씨가 곧바로 독립적 주택에서 거주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에 먼저 시설에서 자립을 준비하시도록 제안했다.

이처럼 전통적 관점에서는 우선 시설화된 주거 형태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증상이 안정적이며 충분히 혼자서 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야만 자립을 향한 다음 단계의 거주 형태로 이행할 수 있었다. 즉, ‘주거에 대한 준비(Housing Ready)’가 되었음을 단계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마지막 단계인 자립생활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 ‘주거준비’ 접근에서는 독립적 주거와 자립이란 “인간의 기본 권리가 아닌, 치료의 방편이자 준비된 자들을 위한 보상”2)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기에 J씨와 같은 많은 중증 정신장애 당사자에게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자립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림1. 전통적 주거준비(Housing Ready) 접근3) 주거준비 접근에 따르면 ‘병원 입원 혹은 노숙’ 다음에는 시설→임시주거의 과정을 거쳐 영구적‧독립적 주거가 가능하다.  
그림1. 전통적 주거준비(Housing Ready) 접근3) 주거준비 접근에 따르면 ‘병원 입원 혹은 노숙’ 다음에는 시설→임시주거의 과정을 거쳐 영구적‧독립적 주거가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탈원화 이후 지역사회에서 삶을 꾸려가는 중증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자립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시설을 경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오히려 퇴원과 함께 안정적 주거를 먼저 확보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훈련을 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었다.

이는 이른바 ‘주거우선(Housing First)’이라 불리는 접근방식으로,4) 주거우선 접근법에서는 증상의 경중이나 기능 수준에 따라 ‘독립적 주거를 할 수 없다’고 단정하지 않고, 먼저 독립적 주거를 제공한 이후에 자립을 위한 개별화된 지원을 제공한다.

여러 연구 결과 ‘주거우선’ 접근이 전통적 ‘주거준비’ 접근보다 지역사회 자립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주거우선 접근법은 주거서비스 제공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왔다.5) 노숙인이나 중증 정신장애 당사자는 자립 준비가 부족하고 치료가 더 필요하기에 바로 독립적 주거를 하기 어렵다는, 그렇기에 시설이나 임시적 주거를 거쳐 준비 여부를 판단하여 자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그림2. 주거우선(Housing First) 접근. 주거우선 접근에서는 패러다임에서는 ‘병원 입원 혹은 노숙’에서 바로 영구적‧독립적 주거로 이행한 후 자립을 위한 개별화된 지원을 제공한다. 
그림2. 주거우선(Housing First) 접근. 주거우선 접근에서는 탈원화와 동시에 안정적인 주거를 선제적으로 제공하며, 이후 자립을 위한 개별화된 서비스를 지원한다.

이러한 ‘주거우선’ 패러다임을 통해, 지역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주거 취약계층에게는 안정적 주거를 먼저 제공하여 지역사회에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지, 준비되었다고 판단된 사람에게만 선별적으로 주거를 제공하는 것은 주거권 침해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지역사회 자립을 앞당기지도 못한다는 점이 밝혀지게 되었다. 즉 주거가 안정되지 않으면 변화가 시작되기 어려우며,6) 따라서 주거의 안정성은 자립의 결과가 아니라 자립의 출발선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거우선 접근을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J씨와 같이 삶 속에서 다양한 서비스 지원이 필요한 당사자에게는 단지 물리적인 ‘집’의 제공만으로는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 기존 대부분의 서비스가 병원이나 시설에 집중되어 있어, 당사자는 자립과 동시에 서비스로부터 소외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은 이러한 병원·시설 중심의 서비스 제공 체계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증상이 너무 심해서’ 혹은 ‘기능이 저하되어서’ 자립하지 못한다며, 자립이 불가능한 원인을 당사자에게서 찾아왔다.7)

그렇다면 중증 정신장애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와 서비스는 어떻게 새롭게 배치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져 왔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주거와 서비스를 새롭게 배치하려는 시도인 ‘지원주택’ 모델과 ‘화성시 정신질환자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고, ‘주거의 사회모델’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보고자 한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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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인권위원회,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거주치료 실태조사」, 2018.

2) 민소영,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주거지원’, 『월간복지동향』 제269호(2021년 3월).

3) Padgett, D.K. & Henwood, B.F. & Tsemberis, S.J., Housing First: Ending Homelessness, Transforming Systems, and Changing Lives,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1장의 Figure 1.1 및 1.2를 참고하여 필자가 각각 [그림 1] 및 [그림 2]로 번역·재구성.

4) 주거우선 접근법은 1990년대 미국에서 정신질환을 동반한 홈리스의 자립 지원 전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관련해서는 Tsemberis, S. & Eisenberg, R.F., "Pathways to Housing: Supported Housing for Street-dwelling Homeless Individuals with Psychiatric Disabilities." Psychiatric Services 51.4, 2000, 487~493쪽 참조.

5) 주거우선 전략의 효과성에 관한 메타분석으로는 Woodhall-Melnik, J.R. & Dunn, J.R., "A Systematic Review of Outcomes Associated with Participation in Housing First Programs." Housing Studies 31.3, 2016, 287~304쪽 참조.

6) 이주연, 「여성 노숙인 지원주택 현장 이야기」, 서종균 외, 『지원주택 사람들』, 마음대로 출판사, 2021, 36쪽 참조.

7) 서종균, 「들어가는 말」, 서종균 외, 『지원주택 사람들』, 마음대로 출판사, 2021, 6쪽 참조.

필자 소개

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휴직 교사.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야학을 만났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노들야학 바로 앞에 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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