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4일 316일 차 혜화역 선전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들은 2021년 12월 6일부터 혜화역 승강장 5-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방면)에서 장애인권리예산·입법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하고 있습니다. 전장연은 지난해 47차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하고, 141일 동안(3월 30일~12월 1일) 177명의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권리예산은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국회에서는 고작 1.1%만 증액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 증액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올해 1월 2일,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하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서울시의 ‘무정차’ 대응으로 지하철에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권리를 무정차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전장연은 매일 아침 8시, 혜화역 승강장에서 시민들에게 권리예산과 입법을 알리는 선전전을 합니다. 비마이너는 꾸준한 매일의 투쟁을 꾸준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어제와 오늘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오전 8시 10분, 승강장에 벚꽃잎 하나가 돌아다닌다. 누군가의 휠체어 바퀴나 발에 묻어 있다가 들어왔나 보다.
8시 11분, 강희석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활동가가 내게 말을 건다. “의자에 사람 앉아 있어요.” 승강장 벽에 붙은 초록색 의자 위를 보니 오세훈 서울시장의 얼굴이 크게 들어간 피켓 여러 개가 놓여 있다.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페이스북 생중계 준비를 한다.
강희석이 볼멘소리를 한다. “(서울교통공사) 웃겨. 시위하지도 않는데 왜 저래.” 공사의 지하철 안내방송 보고 하는 말이다. 나 또한 출근길에 올랐을 때부터 안내방송을 들었다. 방송은 “안내말씀드립니다”로 시작한다. 전장연 시위가 예정돼 있고, 불편을 끼칠 예정이며, 시위가 심해지면 무정차 통과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안내방송이 아니라 경고방송으로 들린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선전전 사회를 보기 위해 안전문 쪽으로 나온다. 언어장애가 있는 이규식이 안내방송하듯이 천천히 말한다. “안내말씀드립니다. 보안관 사람(공사 직원)이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이제부터 또박또박 말하겠습니다.”
8시 13분, 준태 목사가 발언한다. 준태는 장애인 투쟁이 빨리 승리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준태가 발언을 마치고 들어가자, 이규식이 “잠깐만요”라고 하며 준태를 다시 부른다. 토크쇼 진행하듯 이규식과 준태의 대화가 이어진다. 경고방송이 부지런히 대화의 틈을 파고든다.
8시 21분, 준태가 말한다. “장애인이 왜 이렇게 안 보이나 싶어요. 제 생활 공간에서요. 제가 다녔던 학교, 학원에서… 저는 태권도 학원도 다니고 피아노 학원도 다녔는데요, 장애인을 보지 못했어요. 장애인거주시설에 갇혀서 비장애인과 분리돼 있어서 그렇겠죠. 장애인은 당연히 시설에서 나와서 다 함께 어우러지고 부딪히며 살아야 합니다. 그게 당연한 사회예요.”
이규식이 준태에게 질문한다. “목사들이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준태가 답한다. “목사도 돈이 되니까 시설을 운영하는 걸 거예요. 그렇지만 돈을 좇지 말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준태가 발언하는 동안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노들센터) 활동가들이 수다를 떤다.
8시 25분, 준태가 마지막으로 발언한다. “예수는 고난받고 죽은 사람이에요. 예수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죽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계속 연대하겠습니다.” 이규식이 말한다. “아멘. 감사합니다.”
8시 27분, 최상덕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지부장이 발언한다. “어제(3일) 회의에서도 잊지 말고 주기적으로 참석하자고 해서 오게 됐습니다. 내일(5일)도, 모레도, 다른 동지가 참석할 거예요. (선전전에) 여러 번 와서 발언할 소재가 없네요.” 최상덕의 말에 모두가 까르르 웃는다.
최상덕이 발언을 이어간다. “노조 소개를 하겠습니다. 2019년 이전에는 서울대병원에 많은 비정규직 분회가 있었습니다. 이후 노조가 만들어지고 청소노동자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이뤄냈습니다. 국립대병원으로서는 최초였고요, 이후 다른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도 정규직화됐습니다.”
임지영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서울시협의회) 활동가가 이규식 자서전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2023, 후마니타스)’를 뒤적거린다. 낭독 준비를 하려는 모양이다. 최상덕이 계속 말한다. “전에는 노동자들이 ‘내가 비정규직이니까. 하청노동자니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오랜 투쟁 끝에 정규직 전환을 이뤄낸 이후에는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하더라고요. 차별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그게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장애인 노동자만 정규직 전환이 안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또한 투쟁하며 바꿔내려고 합니다.”
8시 35분, 임지영이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를 낭독한다. 이규식이 장애인권 운동을 하면서 철거민, 성소수자, 홈리스 등이 받는 차별도 알게 됐다는 내용이다. 임지영이 이 책을 많이 구매해 달라고 독려한다.
8시 40분, 유진우 노들센터 활동가가 마이크를 잡는다. 그는 옥바라지선교센터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유진우가 말한다.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에 손해배상소송을 걸었습니다. 을지OB베어가 집회해서 영업을 방해했다는 이유였어요. 소송에서 을지OB베어가 졌습니다. 을지OB베어는 만선호프 때문에 쫓겨나고도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모금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인증샷 챌린지 많이 해주세요.”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하는 유진우를 빤히 쳐다본다.
8시 45분, 이형숙 서울시협의회 회장이 말한다. “우리 이규식 대표님 북콘서트 좀 후원해 주세요. 북콘서트도 다 돈이 든다고 하네요. 책도 많이 사주세요.” 이규식이 방긋 웃는다.
이형숙이 계속 말한다. “서울시하고는 7일에 김상한 복지정책실장 면담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면담을 기다리고 있어요. 박경석 대표님, 이런 걸 냉전이라고 하나요?” 박경석이 대답한다. “세계대전.” 모두 깔깔 웃는다. 이형숙이 말한다. “서울시 추가 활동지원서비스 일제조사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활동지원서비스 지원을 더욱 확대해야 합니다. 김상한 실장님, 7일 면담 때 그렇게 답변해 주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곧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입니다. 1박 2일 집중결의대회에 모두 함께합시다.”
8시 48분, 이규식과 이형숙이 대화를 나눈다. 박명훈 다큐인 영상활동가는 계속 촬영 중이다.
이규식: 지하철에 타지 않는데 왜 매일 아침에 시위가 예정돼 있다고 안내방송하는지 궁금하네요.
이형숙: 저도 궁금해요. 지하철 타라고 방송하시는 것 같애. 답변을 좀 주세요, 공사 관계자 여러분.
이규식: 지하철 탈까요? 어떻게 할까요?
이형숙: 타고 싶어 진짜.
이규식: 진짜 타기 싫은데 매일 아침에 똑같은 방송이 나오…
이규식이 말하는 중에 또 방송이 나온다. 선전전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다. “열차운행 상당시간 지연이 예상되며… 무정차 통과하여…” 열차운행을 상당시간 지연시킨 적 없는 사람들이 헛웃음을 내뱉는다. 아무도 발언하지 않는다. 조용한 승강장에 안내방송만 울려 퍼진다. 공사 직원들은 남의 일이라는 듯 핸드폰을 본다.
이규식이 말한다. “내일 아침에도 (잘못된 안내방송이) 똑같이 나오면 (지하철) 타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될까요?” 공사 직원을 향해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정보과 형사가 “(공사에) 전달하겠습니다”라고 대신 답변한다. 이규식이 선언한다. “내일도 안내방송이 타오면 그때는 (지하철) 타도록 하겠습니다.” 활동가들이 환호를 보낸다.
8시 54분, 박경석이 만류한다. “에이, 장애인 여러분.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매일 아침 공사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고 선전해 주잖아요. 7일까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7일 면담에서 우리의 향후 투쟁 방향이 정리될 것입니다. 서울시 협상(이 잘 안되면) 이후에 방송대로 타면 되니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착한 장애인 여러분, 착하게 사셔야죠.” 활동가들이 박경석에게 항의한다.
박경석이 계속 말한다. “을지OB베어, 손해배상금 디따 맞아서 고생하고 있잖아요. 투쟁하는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투쟁합시다. 우리도 4월 18일에 (서울시가 건 손해배상) 소송있는데, 우리는 6억 원이에요. 거기(을지OB베어)는 얼마예요?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 억압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박경석이 마지막으로 발언한다. “함께 투쟁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세상을 바꾼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서로 삶의 증거가 되어주며 살아갑시다. 이규식 대표님 책 많이 파세요. 우리 이만 퇴근하고, 사무실로 출근하러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