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들의 노래》, 장애해방운동가 6인의 생애사 담은 기록
기획 비마이너, 글 홍은전, 그림 훗한나, 도서출판 오월의봄
차별받는 존재가 싸우는 존재가 될 때 세계는 다시 시작된다

책 《전사들의 노래–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기획 비마이너, 글 홍은전, 그림 훗한나, 도서출판 오월의봄, 2만 1,000원) 표지. 사진 오월의봄
책 《전사들의 노래–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기획 비마이너, 글 홍은전, 그림 훗한나, 도서출판 오월의봄, 2만 1,000원) 표지. 사진 오월의봄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전장연 시위가 진행되는 역사를 무정차 통과할 수 있습니다. 퇴거 불응 시 열차 탑승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두고 정치권이 거친 말들을 쏟아낼 때,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며 외쳤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 장애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이들은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다. 시설과 집구석에 밀쳐지고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 그동안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았던 이들, 그럴수록 더욱 극렬한 투쟁으로 차별과 배제에 맞서 싸운 이들. 비마이너가 기획한 《전사들의 노래–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글 홍은전, 그림 훗한나, 도서출판 오월의봄)는 이들이 매일 아침 지하철 승하차 시위에 나서기까지 수십 년에 걸친 생을 기록한 책이다.

“집에만 있을 때는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두려웠어요. 턱이나 계단, 버스, 시설 같은 물리적인 건 하나도 문제가 아니었죠. 그런데 나와보니 시선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내 시선이 바뀌었거든요.” (박길연 인천민들레장애인야학 교장)

차별받고 움츠러들던 장애인이 저항의 주체가 되기까지, 어떤 변화의 계기들이 있었던 걸까. 이 책에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장애해방운동가 여섯 명은 지금도 장애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대표님’들이다. 박길연(인천민들레장애인야학 교장), 박김영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박명애(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이규식(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박경석(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노금호(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 질병과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이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 부당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한다.

“밤마다 울었어요. 나는 낮달 같은 존재였죠. 떠 있는데 아무도 내가 거기 떠 있는지 몰랐어요.”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나가서 살 방법은 없는 걸까?”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이들은 세상의 끝에서 ‘장애인 동지’들을 만났다. 과거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동지들과 힘을 모아 장애인단체를 일궈나갔다. 그러면서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아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도,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갈 수도, 학교에 공부하러 갈 수도 없는 모든 현실이 ‘차별’이라는 사실을. 동지들을 만나 세상으로 나온 이들은 또 다른 동지들을 조직해 싸움의 지평을 넓혀갔다. 그리고 2001년, 장애인들은 마침내 지하철과 버스를 멈춰 세웠다.

2001년 2월 6일, 장애인들이 서울역 지하철 선로를 점거했다. 이 선로 점거를 시작으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진 제공 장애인이동권연대
2001년 2월 6일, 장애인들이 서울역 지하철 선로를 점거했다. 이 선로 점거를 시작으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진 제공 장애인이동권연대

“장애인도 인간이다! 이동권을 보장하라!”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타다 장애인이 떨어져 죽은 다음 달, 장애인들은 지하철 선로를 온몸으로 막으며 저항했다. 그해 여름 광화문 한복판에서는 버스를 에워싸고 서로의 몸과 휠체어를 쇠사슬로 칭칭 감았다. 차별에 맞서 싸우는 장애인을 ‘선량한 시민’들은 참지 못했다. 불법 시위꾼이라고, 집구석에나 있으라고, 소리치며 막말을 쏟아냈다. 저자 홍은전은 장애인을 낙인찍는 세상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웠다. 당장 가야 할 길이 막힌 사람들이 길길이 날뛰며 우리가 법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참 이상한 말이었다. 장애인은 어길 법조차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벼랑 끝인 이들에게 이 사회는 신호를 지키라고 했다.” (‘기록의 말’ 중에서)

지하철과 버스는 ‘불구의 몸’들이 거대한 세상에 맞서 싸우는 저항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곳에서 이동권, 활동지원서비스, 장애등급제 폐지 등 굵직한 투쟁이 이어졌다. 2006년 활동지원서비스 투쟁이 전국으로 확장된 데에는 대구 박명애와 인천 박길연을 중심으로 한 장애계의 끈질긴 저항이 있었고, 장애여성 성폭력 문제가 최초로 공론화된 데에는 장애여성공감을 만든 박김영희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2022년에는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에 이어 장애인의 건강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희귀난치성 질환이 있는 노금호의 문제 제기가 장애인운동에 새로운 싸움을 촉발한 것이다.

비마이너는 그동안 기록되지 않아 존재하지 않은 역사가 되었던 장애인운동을 사회적 기억으로 남기고자 진보적 장애인운동사 3부작을 기획했다. 이 책은 장애해방열사를 기록한 《유언을 만난 세계》(오월의봄, 2021)의 후속작이다. 장애해방열사들의 ‘죽음’에 ‘삶’으로 응답한, 장애해방운동가 여섯 명의 생애사인 셈이다.

전장연이 출근길 승하차 시위로 세상을 바꿔냈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이야기는 앞으로 무엇을 바꿔나갈까. 차별받던 존재가 싸우는 존재로 변화하는 역사가 제대로 이야기된다면, 우리는 혐오와 배제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왜곡되고 오염된 말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몸서리치며 무수히 저항한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 앞에 왔다. 독자들이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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