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부터의 기후정의

가스레인지. 사진 픽사베이
가스레인지. 사진 픽사베이

- 잘못된 진단과 무대책

전기·가스요금 인상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다수 전문가는 무차별적인 요금 인상만이 해결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정부 역시 대기업에 대한 특혜 폐지와 선별적인 요금 인상, 에너지 산업 구조의 개혁이라는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인 요금 인상 카드만 만지작거린다. 그 결과는 공공요금 정책이 사회적 정당성과 정치적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다. 정치적 비판을 피하기 위해 엉뚱하게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방만경영을 질타하고, 구조조정 등 자구책 마련을 강요하는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에너지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재벌 대기업과, 집에서 온도 1도를 올릴지 내릴지를 고민하는 일반 시민들의 처지가 ‘소비자’로서 다를 바 없다는 해괴한 사고방식은 신자유주의의 유산이다. 기업이든 국가든 시민이든 모두 경쟁하는 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다르지 않은 주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난 30년 이상 세계를 지배했다. 불평등 악화와 생태계 파괴는 화폐로 모든 것을 평평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과정에서 부수적인 피해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세계를 덮친 에너지 위기와 기후위기의 악화는 시장에서의 공급 경쟁을 통해 가격을 하락시키고 국민경제 전체의 편익을 높일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에너지 정책의 파산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 위기의 기폭제가 되었으나, 가격 폭등과 공급 불안은 전쟁 발발 1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유럽에서 공급 안정과 공적인 관리를 방기하고, 천연가스 사업을 민영화한 후 수익성에 따라 단기주의적으로 운영하는 민간기업에 천연가스의 수급을 맡긴 에너지 정책과 규제의 실패가 에너지 위기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에너지 위기를 부른 시장과 민간기업의 실패에 대해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이 이루어지고, 공적 자금으로 시장과 기업의 실패를 떠안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단기적 처방 후에 시장으로 복귀할 것이 아니라, 요금 폭등과 에너지 전환 실패를 불러온 잘못된 에너지 산업 구조를 바로잡고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때다.

-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를 아십니까?

전기·가스 요금 폭등을 부른 구조의 핵심에는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와 민자발전사가 도사리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도 있지만, 잘못된 제도와 시장 구조가 에너지 가격의 상승 폭을 더 키워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천연가스 직수입은 주로 천연가스 발전소를 소유·운영하는 민자발전사가 자기가 사용할 천연가스에 대해서 직접 수입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가스공사가 전담하던 일을 민영화와 시장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에너지 민간기업에 허용했다. 2005년부터 SK, GS, 포스코 등 민자발전 대기업이 직수입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민자발전사가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저렴할 때는 직수입을 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직수입을 포기하고 가스공사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수익 극대화 전략을 취하는 데 있다. 공기업인 가스공사는 천연가스를 필요로 하는 곳에 얼마든지 공급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그 부담을 대신 지고 있다.

2014년까지 5% 미만에 불과하던 직수입 천연가스의 물량 비중이 2020년에는 22%로 크게 늘었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매우 저렴해져서 직수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 제도하에서는 이럴 때 민자발전사들이 천연가스의 직수입을 늘린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전체 천연가스의 의무공급자인 가스공사의 입장에서 보면, 직수입 물량이 빠져나가면서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계약할 기회를 상실한다. 직수입 대기업이 유리한 상황에서만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을 하기 때문에, 가스공사가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가격이 구조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영 성과나 경쟁의 효과로 민간 대기업이 가스공사보다 천연가스를 더 싸게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가스공사의 수입 가격을 적용받는 발전공기업을 포함한 다른 기업과 일반 시민의 가스요금은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이런 가격은 우리나라 전력시장에서 전력도매가격(SMP, 민자발전사와 한국전력 간 전력거래 정산에 기초가 되는 가격)의 상승에 영향을 주고, 높아진 전력도매가격은 민자발전사의 수입을 증가시킨다. 반면 한국전력의 전력구입비가 상승하여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발생하고, 높아진 전기요금이 다시 다른 기업과 시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멀티탭에 꽂혀 있는 전기 콘센트들. 사진 픽사베이 
멀티탭에 꽂혀 있는 전기 콘센트들. 사진 픽사베이 

- 전기·가스요금 인상의 나선형

그렇다면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비쌀 때는 어떻게 될까? 직수입 대기업은 비싼 가격에 직접 수입하는 것보다 가스공사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것이 유리한 상황에서 특히 가격이 비싼 현물물량(단기수입 천연가스)의 수입을 포기한다. 가스공사가 대신 의무공급자로서 무척 높은 가격에 현물물량을 수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작년 말에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천연가스 현물물량 가격이 장기계약 물량의 가격보다 3배 이상 비쌌다. 가스공사가 공공기관으로서 민간 대기업이 떠넘긴 부담을 지는 것이다. 그 결과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수입가격이 상승하고 높아진 가격이 타기업과 시민에게 전가된다. 정부가 가정용 천연가스 가격의 상승을 억제했기 때문에 작년 연말 기준으로 가스공사의 미수금이 9조 원 가까이 누적되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러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1, 2번의 과정만 다를 뿐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저렴할 때나 비쌀 때나 같은 비용 전가 구조가 형성된다.

∙ 국제 천연가스 가격 저렴할 때 

①직수입사가 계약 체결 → ②가스공사가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할 기회 상실 → ③가스공사의 수입비용 증가 → ④시민과 타기업(공기업 등)의 가스요금 인상 → ⑤전력도매가격(SMP) 인상 → ⑥민자발전사 수익 증가 → ⑦한전비용 증가 → ⑧전기요금 인상 → ⑨시민 부담 증가

∙ 국제 천연가스 가격 높을 때 

①직수입사가 단기계약 물량 수입 포기 → ②가스공사가 매우 비싼 단기계약 물량 수입 → ③가스공사의 수입비용 증가(미수금 증가) → ④시민과 타기업(공기업 등)의 가스요금 인상 → ⑤전력도매가격(SMP) 인상 → ⑥민자발전사 수익 증가 → ⑦한전비용 증가 → ⑧전기요금 인상 → ⑨시민 부담 증가

과거처럼 천연가스 가격이 저렴할 때는 이런 비용 전가와 수익의 사유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지금과 같은 에너지 위기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매우 높을 때 그 과정은 극적으로 나타난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전가하는 구조가 잘못된 천연가스 직수입·전력시장 제도와 대기업 독과점자본의 수익 극대화 전략으로 만들어졌다.

- ‘에너지 원료비’는 통제불가능한 비용이 아니다

따라서 전기·가스 요금 폭등에는 잘못된 제도와 시장 속에서 떠넘겨진 비용이 포함된다. 3대 천연가스 직수입 민자발전사인 SK E&S, GS EPS, 포스코에너지의 2022년 영업이익 합계는 약 2조 3천억 원으로 2020년의 약 6천억 원 대비 4배 정도로 증가했다. 특히 민자발전사와 도시가스사를 운영하는 SK E&S의 영업이익은 2020년 2,412억 원에서 2022년 1조 4,191억 원으로 6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공기업과 국민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자신의 뱃속만 채운 것이다.

전기·가스 요금의 무차별 인상 불가피론을 펴는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주요 근거가 에너지 원료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국제 에너지 가격은 우리나라의 천연가스 수입 구조와 전력시장 제도라는 단계를 거쳐서 공공요금에 반영된다. 만약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민자발전사에 특혜를 주는 왜곡된 전력시장이 없었다면 공공요금 상승 압력은 훨씬 낮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전력의 전력구입비의 계산과 검증,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원료비의 계산과 검증에서 현행 제도로 인해서 추가로 부담하게 된 비용이 얼마인지를 철저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나아가 가스공사의 원료비 부담으로 전가되는 직수입 사업자들의 행태를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지를 필수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현행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하에서는 원료비를 ‘통제불가능한 비용’으로 치부할 수 없다.

지난 3월 29일, 공공운수노조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에너지 공공성 강화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구준모 
지난 3월 29일, 공공운수노조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에너지 공공성 강화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구준모 

- 대안은 있다: 직수입 제도 폐지와 민자발전사 재공영화

제도가 이렇게 작동하기 때문에 발전공기업마저 천연가스 직수입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직수입하면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를 기업이 활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고,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기업에도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직수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국가 전체의 천연가스 수입비용은 증가하고, 직수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기업과 일반 국민의 가스요금은 인상한다.

따라서 최근 직수입 기업에 천연가스 비축의무를 부과하는 등 직수입제도하에서 규제를 부여하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보다 강력한 규제로 직수입 여부를 사후 신고만 하면 되는 신고제에서 사전 허가가 필요한 승인제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직수입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우리나라 전체의 천연가스 수급 안정성을 강화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근본적 방안이다. 잘못된 제도를 유지한 채 중층적 규제로 제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규제 비용을 높이는 것보다, 잘못된 제도 자체를 폐지하여 문제를 근원에서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민자발전사의 초과이윤을 통제하고 한국전력의 전력구입비를 절감하기 위한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는 적용 시기를 상시화하고 상한선을 낮추는 등 강화해서 적용해야 한다. 민자발전사는 추가적인 난립을 막고 재공영화하는 것이 근본적 대안이다. 직수입 제도를 폐지하고 민자발전사를 재공영화하면 에너지 공공요금으로 전가되는 비용이 1년에 수조 원에서 십조 원 이상 절약될 것이다.

- 에너지 전환을 위한 구조 개혁

다수 기업의 공급 경쟁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에너지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신자유주의 에너지 정책이 반대 효과를 내고 실패했다는 사실이 에너지 위기로 다시 한번 분명하게 드러났다. 국제 공급망 교란과 기후위기의 심화, 에너지 비용의 증가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인 현실이 될 것이다. 따라서 수익성에 따라 단기적 판단을 하고, 이윤극대화를 위해 비용을 사회 전체로 떠넘기는 민간기업에 에너지 공급과 전환을 맡겨둘 수 없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석탄발전소가 지금도 강원도 삼척에 건설 중이다. 사업주인 포스코는 사업을 중단할 의사가 없고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사업을 중단시킬 의지가 없었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대규모 장치산업은 한번 건설되면 20~30년 이상 가동되어 탄소 고착 효과가 발생한다. 특히 민간기업은 에너지 전환에 저항하거나 공공의 비용으로 사업권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탄소 고착의 기간과 강도가 더 강하고, 정의로운 전환의 걸림돌이 된다.

천연가스는 석탄발전의 대체재이자 재생에너지 변동성의 보완재로 상당 기간 활용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천연가스 산업을 통해 에너지 전환의 주요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수소 생산 및 관리 기술·역량도 축적될 전망이다. 천연가스의 이러한 복합적 성격을 고려하고, 탄소 고착 및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최소화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천연가스에 대한 공공적 관리가 강화되어야 한다.

가스공사를 통해 천연가스의 안정적인 공급과 함께 에너지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국가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천연가스 직수입제도 중단과 민자발전의 재공영화다. 우리는 전기·가스요금 폭등의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사회적 정당성과 정치적 현실성을 갖춘 대안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지난 4월 27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향후 15년간의 천연가스 정책을 담은 ‘제15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을 확정하면서, 직수입이라는 천연가스 산업의 핵심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무대응으로 무능력과 무책임을 보여주는 것은 현 정부와 허무맹랑한 전문가들이다.

구준모의 아래로부터의 기후정의

기후정의동맹과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진정한 변화는 아래로부터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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